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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카지노 게임 축구장이라니

축구가 너무 좋아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마흔의 끝자락! 결국 나는 집을 나와 근처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얻었다. 고등학생인 아들의 하루 종일 이어지는 줌수업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 재택근무하는 남편, 거기에 나까지 이 세 사람이 한 집에서 각자 노트북과 컴퓨터, 태블릿 PC를 꽤 차고 있는 일상이 이어진 지 약 두서너 달이 지나던 날이었다.


마침 대학가 근처에 살고 있었던 차였는데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오피스텔의 월세가 평상시의 절반 이하 수준이었다. 그래! 이제는 나가야겠어! 를 외치며 집 앞 오피스텔을 계약하고 그날로 책상과 노트북, 수많은 책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선후배들과 함께 작업실을 얻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세네 명이 함께 사용했던 터라 작업실의 개념보다는 사무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혼자다!

내심 결혼 20년 만에 가출을 감행하는 여인네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그 카지노 게임을 꾸며 나갔다.

남들은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이 쌓여만 갔던 시기! 나는 운 좋게도 월세 2,30만 원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나만의 카지노 게임을 창출하며 신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카지노 게임

그 무렵 나는 그 어떤 시기보다 수많은 글을 쓰고 책을 읽었고 공부를 했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카지노 게임에서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를 삼등분해서 '갓생'을 살다가 보니 나의 부족함이 보였다. 그래서 이 시기 나는 또 하나의 일을 저질렀다. 바로 대학원에까지 진학을 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만 같다.


아무튼 코로나의 시작점에서 잠시 활력을 잃었던 나는 작업실 덕분에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역시 '집 나가면 고생'할 수도 있지만 집을 나가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이런 자유와 해방의 기간을 그리 길지 않았다. 코로나가 끝나자 다시 오피스텔의 월세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 되었고, 대학원 수업도 전면 오프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나는 학교에 가야만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더 이상 오피스텔 작업실은 나만의 카지노 게임이 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오피스텔 작업실을 정리하고 나는 학교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4학기가 되자 쏟아지는 과제와 논문의 압박은 나의 발길을 저절로 '도서관'으로 향하게 했다. 나에게 언제나 친숙했고 내가 숨어들기에 항상 적절했던 도서관은 읽어도 읽어도 잊어버리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카지노 게임 같았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이토록 어려울 줄은 꿈도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숨통이 조여들 때쯤 '축구장'이라는 제3의 카지노 게임을 만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도시사회학자인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그의 책 <The Great Good Place에서 집(가정)을 제1의 카지노 게임, 회사(직장)를 '제2의 카지노 게임'으로 명명했다. 그는 제1, 2 카지노 게임 외에 '현대사회가 갖는 고독감이나 소외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3의 카지노 게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삶의 첫 번째 카지노 게임인 집과 가정, 삶의 두 번째 카지노 게임인 일터에 이어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삶의 세 번째 카지노 게임, 즉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카지노 게임이 제3의 카지노 게임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제3의 카지노 게임은 집과 회사 외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교류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카지노 게임은 단순히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플랫폼의 성격을 띤다.

제3의 카지노 게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중립적인 곳 : 집도 아니고 회사도 아닌 중립적인 장소

2. 접근성 :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물리적 심리적 장벽이 없는 곳

3. 사회적 교류 :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카지노 게임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는 곳

4. 비공식성 : 제3의 카지노 게임에서는 소유나 책임, 부담을 내려놓고 여유롭고 비공식적인 분위기인 곳


카페나 공원, 서점, 강변 등 자신만의 카지노 게임을 만들고 여기서 다양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면 그곳은 자연스럽게 제3의 카지노 게임이 된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축구장이 나에게는 그런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운동에 '운'자도 모르던 내가 이곳에 이토록 많은 애정과 사랑을 쏟는 이유가 어쩌면 나에게 축구장이 제3의 카지노 게임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의 엄마도 아니다. 심지어 최근까지 나와 운동을 하는 이들은 나의 직업이나 하는 일조차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축구인'이라는 이름으로 교류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제3의 카지노 게임으로 축구장을 명명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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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새로운 여성축구팀의 팀원이 되었다. (길고 긴 우여곡절은 다음 편에 전하겠다) 아직 신생팀이라 고정된 축구장이 없이 이곳저곳 축구장에 드나들고 있다. 이전까지는 고정된 축구장에서 훈련해서 대한민국 서울에 이렇게 많은 축구장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새로운 축구장을 갈 때마다 조금 설렌다. 이 구장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잔디의 상태는 어떨까,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올까 등등의 생각을 하는 것도 참 재미있다.


제3의 카지노 게임인 '축구장'은 이렇게 나에게 5번째 특징인 '호기심'까지 만들어주고 있다.


이윤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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