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소설 <해리포터에 빠져들었던 순간.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모습이 있다면, '오늘은 4편을 읽어야지'하고 4편의 4권을 들고 방으로 향하던 밤, 그 다음 날은 '오늘은 5편을 읽어야지'하고 5편의 5권을 들고 방으로 향하던 밤 따위 같은 것들이다. 시작은 아마 다른 책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심심했던 나는 책장에 꽂혀 있는 어느 책을 빼서 읽어보곤 했고, 그 날은 해리포터를 꺼냈을 것이겠지.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을 뒤흔드는 마법이 시작된 셈이다.
해리포터에 빠지다 못해 미쳤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해리포터에 아예 무관심한 시기가 있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친구 모임에 따라 갔던 나는 마찬가지로 다른 어머니를 따라 온,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와 함께 길을 걸었다. 그 친구는 그나마 성정이 비슷한 내게 한 시도 쉬지 않고 <해리포터가 얼마나 재밌는지를 떠들어댔다. 여러 책을 읽었던 나도 질려버릴 정도였다. 당시 나는 해리포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더랬다. 그랬기에 그 친구가 몇 시간에 걸쳐 했던 모든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날이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 내 손으로 꺼내든 책에 난 빠져 버렸다.
마법같은 시간이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머지 시리즈는 학교 도서관에서 읽었다. 몇 번이나 읽었을까. 가장 많이 읽었던 5편 <불사조 기사단은 못해도 50번은 더 읽었지 않을까. 한참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나는 다음에 있는 해리포터 팬 카페에 가입했고(뒤져보니 2006년 2월, 중1이 되던 해였다), 그곳에서 '내가 예상하는 7편'이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는 7편이 공개되기 전이었다. 매일 그곳을 들락날락하며 수많은 분석 글을 읽었고, 썼다. 닉네임도 바꿨다. 해리가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추측 글을 본 뒤 그 내용에 따라 바꾼 것이었다.
<해리포터에 콘텐츠가 얼마나 있냐고 하겠지만, 사실 한도 끝도 없었다. 가상으로 내용을 상상해서 기사 형태의 글을 적어 보기도 하고,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들의 레시피를 상상하기도 하고, 당시엔 화제였던 R.A.B의 정체를 추측하는 데에도 한 세월이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그러면 힌트가 될 만한 단서를 찾기 위해 다시 책을 뒤지고, 그러다 또 책을 한 권 읽고, 그러다 또 글을 쓰고, 그러다 또 막혀 책을 뒤지고 하다 보면 하루는 금방이었다. 그렇게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을까 학교에서 하루 종일 두근두근하다 집에 와서 달린 댓글에 또 한참 긴 글을 적기도 했다.
그 글의 수준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열심'이라는 건 중요했다. 토론 게시판에 매일 들락날락거리며 모든 글에 댓글을 달고, 며칠에 한 번씩 긴 글을 적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누가봐도 나는 이 카페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처음엔 토론게시판의 '지기'(관리자) 역할을 하게 됐다. 토론 게시판에 나오는 글들을 관리하고, 토론 게시판 내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신나서 몇 개 월간 게시판 관리를 했을 즈음, 공로(?)를 인정받아 정식 운영진이 될 수 있었다. 카페의 온/오프라인 이벤트 전체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중 2때였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전체 회원의 정팅(온라인 채팅)을 주관하고, 정기적인 운영진 회의에 참여하고, 전체 게시판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회원수 10만 명, 출판사 지정 '공식' 팬 카페의 이벤트를 담당하게 되었다니, 그것도 내가 미쳐있는 <해리포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는 곳이라니. 마법같은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운영진 자격으로 해리포터 영화가 국내에 개봉할 때 며칠 전 먼저 시사회에 초대되기도 했고, 통편집되었지만 <스펀지의 촬영에 잠시 참여하기도 했다(요새는 흔해졌지만, 당시엔 생소했던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먹어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3이 되던 해까지, 나는 팬카페 운영진을 했다.
그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다. 딱딱한 카페 규칙을 두고 어떻게 바꿔야할지 회의하고, 게시판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방안을 고민하고, 정팅을 주관하며 모르는 사람들과 채팅을 나누며 새벽을 넘어 방이 닫힐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오프라인 정모를 기획해서 카페와 식사 자리를 어디 갈지를 짜고, 모였을 때 할만한 해리포터 문제를 만들고, 정모 준비 회의를 하는 일들. 정모를 위해 갔던 대학로, 명동. 민들레영토와 돈가스 집. 노래방. 당시에 엄청나게 어른 같았던, 대학생이거나 직장인이었던 다른 회원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리는 일. 그 모든 일들은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저 '시간 낭비' 혹은 '어린 날의 치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물론, 내겐 그렇지 않았다. 그 사소한 경험은 나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는 구르고 굴러 더 큰 변화가 됐고, 그게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엔 열심히 하던 게임 <카오스의 웹사이트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다. <해리포터 팬 카페와 마찬가지로, 나는 흔히들 하는 친목 게시물은 거의 올리지 않고 매일 토론 게시판에 살았다. 사람들과 어떤 친교도 나누지 않던 내게, 게임 원작자는 메일을 보냈다. 온라인 버전을 만드는 CBT에 테스터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고3으로 넘어가던, 활동을 시작한지 1년이 됐을 때였다.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열렸던 그 자리에서 나는 앞으로 나올 게임을 먼저 체험했고, 의견을 적었고, 론칭한 게임에서는 VIP라는 칭호가 달려 있었다.
그 경험들이 내게 준 건 일종의 '무엇이든 하면 무언가 세상이 열린다'는 거였다. 해리포터 책을 읽으며 나는 시사회에 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게임 토론 글을 쓰면서 CBT에 가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 세계에 나를 던졌을 뿐이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파고 들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고, 또 글을 적고, 등교 후 집에 돌아와 다시 또 댓글을 달고, 또 생각했을 뿐이다. 글 하나에 몇 시간이 걸리는 날도 있었고, 흥분해서 글을 적고는 부끄러워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그 작은 일들이 모이고 모여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고, '무언가 하면, 계속 하면, 인정받을 날이 온다'라는 증명이 됐다.
내가 글과 친해진 건 그 덕이었기도 하다. 내 예상과 생각을 주장카지노 게임 글을 매일 매일 수십 문장을 썼던 경험들은 오롯이 내게 남아 조금 더 쉽게 글을 적어나갈 수 있게 카지노 게임 체력이 됐을 것이다. 어떤 자신감도 얻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내가 좋아한 것에 대한 일종의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성과를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니지만, 하나 같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마법같은 시간들이었으니까. 이런 나도 무언가를 계속 하면 무언가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줄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건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인정해줄 만한 일을 해야 했다면 토론 글하나에 며칠을 매달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이후에도 나는 무언가를 계속 파게 됐다. 의도한 건 아니다. 그저 궁금해지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일이 습관이 됐을 뿐이다. 군수 행정병으로 일하던 군대 시절, 보급계통에서 필수로 사용카지노 게임 DMIS라는 프로그램을 쓰며 국방부 인트라넷에 글을 올렸다. 이런 점이 불편하니 이렇게 바꾸면 더 편리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2개월이 지나 우수 제안으로 꼽혀 상품권이 왔다. 3만원 정도였다. DMIS에는 내가 제안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었다. 3만원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이 체계를 공부하고 익혀왔던 게 헛되지 않았다는 게 좋았다. 1년 9개월을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런 보급병이 아니라, 간부 수준의 보급병이 되고 싶었던 내 군생활의 증명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업무를 마치고도 퇴근하지 않고 인트라넷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장교들이 군수품 개선제안을 하는 게시판도 있었고, 진지하게 군 체계를 토론하는 곳도 있었다. 그 글들을 읽었고, 인트라넷으로 연결된 수많은 부대들을 찾았다. 몇 사단은 어디에 있구나. 몇 사단은 어떻구나. 이곳은 훈련을 이렇게 했구나. GOP사단은 뭐가 있고 각자 어디에 있구나. 이후 누군가가 어느 사단을 나왔다고 하면 나는 '그거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몇 사단 옆에 있는. 별명은 000'이고 라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곤 했다. 자기 친구가 몇 사단으로 갔다는 후임에게 '그거 어디에 있는 거야. 625때 뭘 했대'라고 던지는 내게 사람들은 간첩이냐고, 그런 걸 왜 조사하고 있냐고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발 디딘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전역하고 레스토랑 알바를 했을 때, 그 세계는 너무나 새로웠다. 나는 매일 아침 식당에 재료를 배달카지노 게임 회사가 있다는 것도, 그 일을 카지노 게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주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홀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거지는 어떻게 카지노 게임지. 그 새로운 세계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백 사이드로 들어온 난, 업무 적응 기간을 마치고는 그 공간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비효율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일카지노 게임 건 나였고, 매니저님은 '너 편할 대로 바꿔도 좋아'라고 했다. 업무 시간 짬짬이, 오늘은 와인잔을 이곳으로 보내야지. 오늘은 찬장을 바꿔야지. 그렇게 백사이드를 바꾸어 놓았다. 주말에 백사이드를 오랜만에 들어온 다른 직원 분은 '어느새 아예 배치가 바뀌었네'라고 하고는 '훨씬 편해졌다'라고 한 마디를 던졌다.
그 작은 변화들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라고 묻는다면, 결국 그 덕질의 경험들이다. '이 다음 내용은 어떻게 될까?', '이 게임의 현재 밸런스 문제는 무엇일까?', '스네이프는 악인인가?', '군 보급 체계는 왜 이렇게 구성되어 있을까?'질문을 던지는 게 익숙해졌던 카지노 게임 내가 가는 모든 곳에 질문을 던졌다.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와인잔들은 왜 여기에 보관되어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고 와인잔이 있으면 더 좋은 곳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홀에 있을 땐 이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주로 누구인지를 생각했고, 그들이 찾는 니즈가 주로 무엇인지도 생각했다. 그 모든 일들은 그저 자연스러웠다.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참 하던 시절도 비슷했다. 굳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그 커뮤니티들을 모두 탐색했다. 역사를 찾았다. 어떤 연관성이 보였다. 열린 곳은 왜 열려 있는지, 닫힌 곳은 왜 닫혀 있는지. 그 사이트는 왜 망했거나 분열했는지. 그곳의 시작은 어떠했고 어떻게 변화해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사람들은 왜 커뮤니티를 하고, 그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그것을 아는 건 세상 쓸모 없는 지식이었을지 모른다. 국내 주요 커뮤니티들의 이름과 특징, 역사를 꿰고 있는 일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살다보면 한 두번 씩은 쓰일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쓰이지 않아도 별 상관 없는 일이기도 했다.
20대 미디어에 발을 디딘건 20살이었다. 고등학생 때 기자를 꿈꾸며 고등학생 기자단을 하던 내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흔히들 '뉴미디어'라고 부르는 세계였다. SNS가 자리를 잡고, 버즈피드가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하고,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혁신 보고서'가 나오면서 수많은 미디어가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하던 때였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뉴미디어'가 생겨났다. 우리의 '경쟁사'라고 할만한 곳들은 각자의 컨셉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 글들을 찾아 읽고, 운영카지노 게임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아 팔로우했다. 하나의 팔로우를 하면 다른 세계로의 연결은 쉬웠다. 또 팔로우하고, 또 찾고, 또 팔로우하면 수많은 사람들과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미디어가 어느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무슨 말을 했더라.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더라. 대전에는 이런 곳이 새로 생겼더라. 레거시 미디어는 각자 이런 채널들을 파서 시도하고 있더라. 수많은 세상이 또 다시 열렸다. 그곳에서 나는 신나서 헤엄을 쳤다. 알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이런 저런 생각들을 글로 쓰고 말로 떠들고 다녔다. 토론회를 열어 연사로 참여한다거나, 구성원들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댄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기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뉴미디어에 미친 사람이라곤 할 수 있겠다. 그건 뉴미디어가 다음 세상의 미디어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함께하고 있는 곳이 '뉴미디어'로 분류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곳이 더 잘되기를 바랐고, 그를 위해 이 세계를 알고 싶었던게 전부다.
인턴 기자를 마치고 잠시 여행 스타트업에서 알바를 했다. 내게 처음 맡겨진 건 러시아 여행 정보를 정리카지노 게임 일이었다. 어떤 도시를 다룰지,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내가 정하면 됐다. 도서관에 가서 러시아 가이드북을 모두 빌렸다. 쌓아놓고 어떤 내용들이 다른지를 찾았다. 갈리는 게 있다면 검색을 했다. 검색해도 몇 개 나오지도 않는 작은 도시들의 여행기를 다 읽었다. 최소한 나중에 이 정보를 볼 사람들이 '러시아 여행 정보가 아주 탄탄한데'라고 생각하길 바랐다. 비슷한 경험은 전에도 있었다. 재택으로 여행 정보를 정리카지노 게임 알바였다. 스페인이 주제였는데, 프라도 미술관과 같은 미술관/박물관을 소개카지노 게임 글을 적는 게 주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책들을 빌려 읽었다. 세상에 많은 가이드북이 Ctrl+C, Ctrl+V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엔 틀린 내용도 있었다. 나는 한 끗이 다른 소개 글을 적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고야'의 미술 작품들을 알 수 있었다.
23년엔 일본을 2주일 간 여행했다. 모든게 신기했다. 대중 교통 체계. 식당의 문화. 나고야라는 말의 어원. 운전 문화. 신호등의 모습. 호텔의 디테일. 눈 돌리는 대로 새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일본을 여행할 일이 생겼고, 그 이야기들을 썼다. 그냥 쓰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더 찾았다. 보는 사람이 조금 더 정확한 정보를, 편하게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글들을 브런치에 옮겼다. 덕분에 에어로케이에서 주관하는 시티 에디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건 작은 일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시선을 주는 일. 질문을 던지는 일. 답을 찾는 일. 쓰는 일. 그보다 앞서, 해리포터 책을 읽은 일. 해리포터라는 세계를 좋아하게 된 일.
내가 지금까지 한 일들이 대단한 일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세상에 덕후는 많고, 내가 가진 지식은 보잘 것 없다. 어쩌다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해리포터 세계관에 대해 헷갈려 할 때 지나가다 글을 적는 일 정도가 요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그건 표면적으로 내 삶의 그 어떤 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나는 디지털 광고 일을 하고 있고, 그 전에는 기자를 꿈꿨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초등학생 때의 경험이, 내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일이라는 걸.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일에서 시작한 그 작은 변화가 구르고 굴러서 그 이전의 나를 지금의 나로 변화시켜버렸다는 걸. 그리고 그 변화는 충분히 유의미한 일이라고 믿을 뿐이다.
세상엔 '효율'이 넘쳐난다. 쉽게 돈을 버는 법, 더 좋은 타이틀을 가지는 법, 권력을 가지는 법, 시간을 줄여서 쓰는 법, 나를 바꾸는 법. 그 '효율'과 '덕질'은 꽤 반대에 있다. 해리포터를 그렇게 좋아해서, 운영진이 되어서, 네 삶에 어떤 부분이 혁신적으로 바뀌었느냐, 혹은 큰 돈을 벌었느냐, 혹은 엄청난 성취를 가졌느냐라고 묻는다면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쉽지 않은 건, 아주 작은 한 끗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걸 난 배웠기 때문이다. 그 작은 일은 새로운 세게로 나를 인도해왔고, 그 경험은 모두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덕질에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저 좋았을 뿐이다. 그 세상이. 그것으로 삶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가져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뿐이다. 다만 그래도 굳이 '그래서 그게 뭐가 도움이 됩니까'라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물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다'고는 답할 수 있겠다. 그 변화가 좋은 쪽일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변한다는 점이다. 그 변화가 어떤 마법을 불러올지, 어떤 세계로 자신을 인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관 없다. 그저 그 길을 걷다보니 문 앞에 당도했을 뿐이니까. 어느새 갈라진 다른 길에서 '그 문을 열어서 뭐하게!'라고 외쳐봐야 부질 없는 일이다. 길 끝에 가고 싶은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 길에 끝은 없음을 알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게 남긴 변화는 뭘까.라고 생각해본다면. 글이 익숙한 사람이 됐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됐고. 답을 찾는 사람이 됐고. 파고드는 사람이 됐다. 조금은 독특한 사람이 됐다. 쿡 찌르면 무언가를 기계처럼 말카지노 게임 사람이 됐다. 무한도전 서울 구경 특집에서 노홍철이 타는 버스 번호가 472란 걸 아는 사람이 됐다. 그 뿐이다. 대단한 사람이 되진 않았지만, '내'가 됐다. 무언가를 좋아카지노 게임 나. 그 취향과 경험들이 모여서 열심히 빚은 나라는 총체가 됐다.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