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카지노 게임
술은 공짜 술이, 참외는 서리한 참외 맛이 제일
“ 이놈 줄기는 밟지 말고 참외만 따 먹어라”
참외를 서리하러 갔다가 발각이 돼 이웃집 아저씨가 하시던 말씀이다. 높은 카지노 게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무리 자세를 낮춰 접근해도 아저씨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는 없다. 굳이 우리 참외밭을 놓아두고 남의 집 참외밭을 기웃거리는 심리가 이상하다 여겨지겠지만 술은 공짜 술이, 참외는 서리한 참외 맛이 제일이다.
날씨가 더워지고 매미소리 요란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카지노 게임이다.
고양이나 사람이나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이 동물의 본능인지 나 또한 어릴 적에는 높은 곳을 좋아해 방안 다락방은 물론이고 집 옥상도 내 차지였다. 그러다 여름이 되면 밭 한가운데 세워진 카지노 게임은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밭은 집에서 1,5㎞정도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군인이시던 아버지가 부대 근처에 밭을 마련해 대원들을 주말이나 일요일 밭으로 데리고 나와 대민 봉사를 핑계로 쉬었다 가게 할 요량으로 장만한 밭이었다. 당연히 그 밭에는 보리나 콩 대신 포도나 자두 등 과수나무들이 많이 심어졌고 그 나무들 사이로는 봄에는 상추와 쑥갓, 여름철에는 수박과 참외 등이 많이 심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형제가 없어 외롭게 자란 나는 참외와 수박이 익어간다는 기대도 컸으나 그보다는 군인 형들이 많이 나와 신나게 함께 놀 수 있었던 점에서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문제는 평일이었다. 주말에는 군인 형들과 함께 밭 규모에 비해 크게 만들어진 카지노 게임에서 놀다가 졸리면 어울려 잠을 잘 수 있었지만 평일에는 텅텅 빈 카지노 게임이 싫어 애써 무관심 한 척 지냈다. 학교를 파하고 아버지가 퇴근해 오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가 문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약간의 용돈을 주며 카지노 게임에 가서 지키기를 원했으나 나는 친구들이 없는 카지노 게임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동네 만화방에 들려 신간만화책을 자전거 뒷자리에 가득 싣고 오셨다. 만화방 주인과는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우리 집에 1주일을 먼저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만화가게 주인 입장에서도 독점인 까닭에 1주일 정도 신간이 늦게 들어온 셈 치면 된다고 여겨서 인지 아니면 친분 때문이었는지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대여를 먼저 해 줬다.
나는 만화책이 카지노 게임에 비치되자 가방을 던져놓고 카지노 게임으로 줄행랑을 쳤다. 며칠 뒤부터 소문이 나자 동네 친구들도 카지노 게임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책에다 사방 천지에 수박과 참외 등 먹을 것이었으니 마다할 친구들이 없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웃동네에까지 퍼졌다.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 어느 토요일 3명의 여자 아이들이 카지노 게임으로 놀러 왔다. 문제는 그 3명의 여학생들 중에는 한 학년이 어린, 내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아이가 끼어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들을 칙사 대접했다. 옆집 동생을 시켜서는 오늘은 다른 친구들이 못 올라오도록 조치도 취했다.
나는 그날 그 넓은 참외, 수박밭을 헤매며 도회지에서 전학을 온 하얀 피부의 그 여학생에게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총동원해 설명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 뒤로도 그 여학생은 가끔씩 혼자서도 카지노 게임을 찾았고 나는 그때마다 큰 수박을 따 함께 나눠 먹기도 하고 밀린 숙제도 같이 하며 그 여름을 보냈다.
지금은 내가 사는 시골에서도 카지노 게임을 구경할 수 없다. 참외와 수박은 노지보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길러지고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카지노 게임은 자취를 감추었다.
카지노 게임이 사라진 것과 함께 카지노 게임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도 사라졌다. 그 옛날 카지노 게임과 서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카지노 게임을 아무리 높이 잘 지어 놓아도 서리꾼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카지노 게임을 지키는 어른들도 웬만해서는 못 본척했다. 한 집에서 한철에 수박과 참외 농사를 지으면 다른 한집에서는 또 다른 한철에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들을 심어 반대로 서리를 하며 장난을 치니 오십 보 백보, 피장파장이었다.
수년 전부터 집 근처 들에도 재배하는 작물이 확 바뀌었다. 보리나 감자 고구마 대신 부추와 시금치 등으로 바뀌었고 온 들판이 비닐하우스로 덮여 하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수박과 참외를 서리하는 재미도, 낭만도 사라졌다.
비닐하우스 재배는 우리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바로 ‘참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마라’ 말이 그것이다. 노지 참외밭이 없어지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방을 돌아보는 재미, 밤에는 모기장을 치고 시원 바람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리던 시간, 비바람이 치면 비를 가리느라 흠뻑 옻이 젓던 광경, 해가 뜨기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심정, 모두 카지노 게임이 가져다준 추억이다.
내일은 마음속의 카지노 게임이라도 한 채 지어야겠다.
* 이 글은 2016년 7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