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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Mar 26. 2025

호주 멜번, 나도 이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다.

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괜찮은 어른으로 나이 드는 일은 오히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연령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아마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이지리스(Ageless)(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임경선/p23)


96년 대학 새내기 때 처음으로 가본 해외여행이 호주 멜번, 작은 고모댁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첫 여름방학이었고, 호주는 까마귀가 까악대는 으스스한 겨울이었다. 수능영어는 한 문제 틀렸지만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는 대학 신입생은 시드니에서 멜번으로 환승하는 방법을 몰라 쩔쩔맸다. 작은 고모 댁에 머무는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인생 첫 뽀글이 파마를 했고, 나처럼 영어 비기너인 다른 나라 사람과 영화도 봤고, 배가 많이 나온 상태의 임산부가 기차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목격했다. 인생 첫 남자친구와 떨어져 있는 한 달 동안 작은 고모 댁과 어학원을 기차로 왕복하며 윤종신의 환생을 무한 반복 들으며 그리움을 달랬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작은 고모는 호주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지 10년 차가 되었지만, 아무것도 없이 낯선 나라인 호주 멜번에 정착하는 삶이 고단하셨다는 건 그때의 고모 나이를 관통한 후에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아이와 1년 살기를 온 지 두 달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해에 호주 멜번으로 이민 가신 후 거의 40년간 간호사로 살고 계시는 작은 고모에게 연락이 왔다. 뉴질랜드와 호주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아이 방학 때 호주에 놀러 오라고 하셨다. 이런저런 아빠 형제들의 가족사로 작은고모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지 오래되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부활절 연휴가 끼어있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호주 멜번까지 항공권이 꽤 비쌌다. 한국을 한 번 다녀와도 되는 금액이었다. 고모가 호주에 오라고 했을 때도 가을, 겨울은 피하고 싶었고, 혈육이지만 연락을 주고받은 지 몇 년이 지났는지도 몰랐기에 더 망설여졌다. 남반구의 여름이 시작되는 12월에 가겠다고 했는데, 며칠 후 작은고모가 크라이스트처치에 오겠다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방문 일정으로 고모가 오시기 전 일상이 두 배는 분주해졌다. 특히, 고모가 호주로 돌아가시는 날까지를 계산해 독서모임 리딩메시지, 블로그 포스팅 예약발행을 완료했다.

크라이스트처치 공항 검색대에서 나오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포옹을 하자 각자의 삶이 포개져 코끝이 찡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작년에 둘째 아들 혼사까지 치른 후 암 수술을 하셨다. 얼마 전 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마치셨다. 병원으로 복귀하기 전 2주일의 휴가가 남았는데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인 뉴질랜드에 조카가 와 있기에 바로 크라이스트처치행을 결정하셨다고 했다. 외식보다는 집밥을 대접하고 싶어 된장찌개와 간장 닭요리를 준비했다. 뉴질랜드에 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오시기 전에 여쭤봤는데 온천을 말씀하셨다. 다행히 2시간 거리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이, 내가 만족할만한 핸머 스프링이라는 곳이 있었다. 일요일에는 아카로아라는 연어가 유명한 곳에서 코스요리를 먹으며 감동했다.

고모, 아이와 함께 다니는 여행은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감사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대화였다. 고모가 호주를 가신 순간부터 약 40년의 세월 동안 고모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걸 알았고, 이를 바로 잡을 수 있어 감사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호주에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고 물어보셨다.

“날씨는 으스스했고, 까마귀는 까악거렸고, 고모와 고모부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고, Joos는 예민했죠.” 고모는 괜히 30년 전의 나에게 미안해하셨다. 내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고모가 아셨으면 했다. 호주는 여름이 쨍하고, 고모는 이제 고모부에게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법을 알고 계시며, Joos는 멋진 청년으로 자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40년 전 호주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부터 간호사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다듬어오신 고모의 인생 역정과 철학을 알게 되는 시간이 좋았다. 누군가를 그냥 아는 것과 삶을 들여다보는 건 다르다는 걸 고모를 통해,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도, 어떤 삶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작은카지노 게임 사이트 크라이스트처치에 계신 6박 7일 동안 많은 걸 받았다. 매끼를 사주셨고, 야채와 과일, 고기로 냉장고를 꽉 채워주셨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과자도 잔뜩 사주셨고, 김치 네 포기, 섞박지 한 통을 담가주셨다. 아침마다 토마토를 갈아 마시라며 도깨비방망이도 사주시고, 집안이 삭막하다며 정화용 식물 화분을 사서 분갈이까지 해주셨다. 고모는 일주일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나에게 주셨다. 소공녀가 된 느낌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소공녀를 읽으며, 어딘가에 있을 나의 부자 친척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40대 후반에 나에게도 이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다는 걸 타지에서 경험했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건 값비싸고, 화려한 물건이 아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은 서로의 삶 속에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스며드는 것이다.


호주에 돌아가신 고모는 매일 내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아이의 간식, 점심 도시락을 봐주시고, 아이와 여행 중 찍은 사진에 관심을 보여주신다. 고모는 호주에 돌아가셔서 아이가 고모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날 선물 받고 싶다고 했던 부메랑을 구매해 사진 찍어서 보내주셨다. 이번 주말에 보내주기로 하셨다.


“나에게도 이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다!” 답 문자를 보냈다.

“ㅋㅋ 미안.. 그 동안 존재감 없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여서”


30년 전, 첫 해외여행이자 그레이였던 호주가 환하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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