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기 전에 남을 만나려 하면
"엄마, 이것 내가 만들었어!"
초등학생딸아이는 요즘 시리즈물로 책을 발행 중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루라는 제목의 책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책이라고 해봤자 스케치북을 뜯어서 풀칠을 한 종이 묶음이지만, 그 위에 쓰인 글에는 나름 등장인물도 있고 서사도 있다. 대신 한쪽은 이야기책이었다가 한쪽은 그림책이었다가, 한쪽은 말풍선이 가득한 만화책으로 변화가 무쌍하다. 이야기를 끊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1권, 2권, 3권... 마지막 페이지에 기재된 <이어서, <다음 화에계속이라는 문구 때문에 탐독을 멈출 수가 없다.친구들이 다음 화를 기다리고 있다며 김작가는 오늘도창작 활동에 매진한다.
"엄마, 아까 속상한 일이 있었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책을 만들다가부루퉁한 얼굴로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내용을 들어보니다른 친구가 자신의 책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름으로만 바꿨을 뿐 <○○의 하루라는 제목의 형식이 똑같고, 심지어 이번 화에서 야심 차게 설정한 구성인 카톡 대화 형식도 똑같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왜 자기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냐고 물었더니 '내 마음이야'라고 했다며, 그런 친구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 여파로 딸아이는 창작 활동에 대한 의욕마저 시들해진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달리 책을 만드는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 참에 딸에게 저작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개해주기로 했다. 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는 저작권법이 있었다. 한국저작권워원회에서 운영하는 저작권 e-배움터(유튜브 채널 저작권 TV)에서는 표절과 저작권 침해를 구분하여 설명해 주었는데, 저작권법에서는 표절이란 용어 대신 저작권 침해라는용어를 쓴다고 했다. 표절이라는 용어는 법률적인 용어가 아닌윤리적인 개념에 해당한다고.저작권 침해는 의거성과실질적 유사성으로 판단하는데,나부터가 생소한 단어에어려운 개념이었다. 아이에게 설명하기위해서는예시를 들어야 했다.
"의거성이 있다는 건 정아가 만든 책이 네가 만든 책에 의거해서 만들어졌다는 뜻이야. 이때 나중에만들어진 저작물이 기존 저작물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있었는지가 중요해. 이점에 비추어본다면, 정아를 비롯한 친구들 사이에서 네가 만든 책이 인기가 있었으니 먼저 만들어진 너의 책을 정아가 참고했다고 볼 수 있겠지."
아이의 표정이 진지했다. 법에 대해 이야기했을뿐인데 마치 내가 판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는 건, 음...기존저작물을 참고카지노 게임 사이트 변경해서 새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기존에 만들어진 저작물과유사한 경우새로운 창작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야. 실제로 새로운 창작성을 더하지 않은 정도라면 복제로 보아야 한다는 법원의 판례가 있어."
"판례가 뭐야?"
"너와 비슷한 사건으로 소송된 사례에 대해 법원에서 먼저 판결한 적이 있다는 거야.이런 판례를 참고했을 때, 정아가 만든 책이 네가 만든 책에 비해 전혀 새롭지 않다면 복제 행위라고도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건 친구들이 더 잘 알아보지 않을까? 친구들이 너의 책을 먼저 접했으니까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정작 친구들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은미와 정아 모두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친구들로 설정한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책을 읽는 친구들은 그 주인공에 따라 감정을 이입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화두였던 것이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는모두가 주인공일 순 없지. 친구들이너의 새로운 책을 기대하는 것도,너의 이야기만큼이나 정아의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어쩌면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독자로서 어떤 작가의 책을 읽을 때,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한,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인물에게 이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하물며 아이들은 본인이주인공이거나 좋아하는 친구들의 이름이나오는책에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은미는 시선을 허공에 던지며 친구들의 마음을 천천히 헤아려보고 있었다.
"정아도 주인공이 되고 싶었을 거야. 책 속의 등장인물도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로 만들고 싶었나 봐. 그래도 똑같이 따라한 건 좀 너무했다, 그렇지?"
불현듯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아들이 좋아하는 나이키 로고와 짝퉁 로고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동생이좋아하는 나이키 로고알지?어때?물론 어떤 것들은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정도로 유사하기도 해. 이런것들로부터내 창작물을 보호하려면 저작권을 먼저 등록해야 해. 이런 상표는 특허청에 등록카지노 게임 사이트,글이나 영상 같은 콘텐츠 창작물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해서 보호받을 수 있어."
사실 아이가 만든 책은 저작권을 등록할 수 없었다. 오타 투성이에 낙서 같은 그림, 삐뚤빼뚤 글씨까지... 책을 좋아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책을 만들었다니 기특한 마음이 들면서도, 자꾸만 틀린 철자가 거슬려 몰입이 방해되었다. 아직은 어디에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 수준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창작활동에 진심이었다. 진심이 있었기에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진짜가 있으니까가짜가 있는 거야. 멋지고 예쁜 사람을 보면 따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싶은 마음이드는 거야. 정아가 따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싶었을 만큼너의 생각이 멋졌던 거야.엄마가 봐도 너의 책은 정말 멋졌거든."
아이의 표정이 느른해지더니아이가함빡 웃었다.마음이 녹은 자리에 무엇이 심겼다.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에 인정이 더해지니 힘이 생긴 모양이다. 무엇인가를 창작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그것을 세상에내놓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내 안에서 나온 것, 내 안에서 끄집어낸 것에는 수줍어하는 내가 있다.
'너는 특별하단다.'
아이들도어른들도 특별하다. 각자가 지닌 고유함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똑같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일란성쌍둥이마저도 생각은 다르다. 다만 내면을 표현해 내는 외면의 방식은 모두가 다를 수 없다. 형식과 양식은 끊임없이 재가공될 뿐이다.다만재가공하는과정에서 창조성이 더해져야 한다는 말은 각자가 지닌 고유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자 당부이다.
책을 읽다가 멋진 표현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하다가 그 문장을 곱씹어본다. 어디선가 멈추었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다. 이 표현 방식이 좋다고 여긴 나의 생각, 감동한 나의 마음이 있다. 그것을 매개로 나의 생각과 마음에 집중해 본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글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을 반드시 제대로 거쳐야 한다. 콘텐츠 생산자는 소비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만,나를 만나기 전에 남을 만나려 하면 표절이 되어버린다.나만의 고유성에서 비롯된 창조성을 더하지 않으면 저작권을 침해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같은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 일정이 같은 은미와 정아의 하루 일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쓰는 책과 정아가 쓰는 책은 달라야 한다. 하루 동안 은미와 정아가 보고 느낀 것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담아내는 그릇이 똑같으면 그 안에 있는 고유성마저 훼손된다. 누군가는 들여다보기도 전에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니 중요한 건 그릇에 담긴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이야기가 새로운 반죽이 되어 그릇을넓혀갈 수도 있다. 내가 이 글에 나를 담아낸 것처럼.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루는 계속된다. 나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