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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유선 Apr 20. 2025

카지노 게임수록, 더 멀어지는 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의 카지노 게임은 점점 흐려진다


이 글은 『치유의 카지노 게임』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몸을 타고 흐르는 감정을 따라,

감정과 함께 춤추는 카지노 게임을 따라,

당신이 가진 고유의 회복력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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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면 내가 자꾸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요."

누군가와 카지노 게임지면 그 사람에게 계속 자신을 맞추는 내담자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숨이 막힌다고 했다.

내가 나라는 감각이 느슨한 사람은 관계가 카지노 게임 때, 경계가 사라진다.

웬만하면 맞추고, 웬만하면 참는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와 카지노 게임 때 자신을 지워왔던 것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워야 했던 것을, 몸이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감이 느슨해질수록, 관계는 나를 더 쉽게 삼켜버린다.

몸이 기억하는 사라짐의 패턴,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나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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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감이 만들어지지 못한 아이들

겉보기에 부러울 것 없이 성공적으로 살아온 그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면 제 온몸은 그 사람에게 맞추느라 요란을 떨어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덧붙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생을 잘못 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주변에 맞추며, 맡은 일을 완벽히 수행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능숙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 선택하고, 의견을 내는 순간에는 주춤했다.

"이제는 제 의견을 내야 할 위치인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무언가를 새로 제안하거나 방향을 정해야 할 때, 제가 느끼는 게 맞는지 모르겠고, 확신이 없어요. 누가 그냥 시켜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서 나는 '자기감이 희미한 사람'의 전형을 본다.


그는 엄격한 부모 아래에서 자랐다. 반항해 본 적도 있지만, 번번이 묵살되었고, 결국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살아오면서 특별히 좋은 것도, 특별히 싫은 것도 없었다고 했다.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것을 말하면 돌아오는 건,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여자 쪽 집안이 기운다는 이유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가진 아내와 결혼했을 때, 부모님은 아주 만족해했다.

자신의 느낌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는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집에서는 아내에게 맞추며 살아간다.

가끔은 우울한 것 같기도 한데, 자신이 우울한 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한다. 감정은 있는 것 같은데, 확신이 없다. 그는 자기감정을 신뢰하지 못하다 못해, 자기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바로, 카지노 게임이 끊긴 몸이 만든 생존의 결과다.


자기감이란 무엇일까?

자기감(self-sense)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보다 더 먼저, '나는 지금 어떤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싫은지, 그 느낌을 따라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이 모든 것이 자기감이다. 생각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에 뿌리내린 감정 인식이다.

그런데 이 자기감은, 어린 시절 안정적인 관계 안에서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했을 때 그 마음이 무시당하거나 조롱당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반응을 먼저 살피게 된다.

슬픔이 올라와도 울어도 되나 싶고, 화가 나도 온몸에 힘을 주어 참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카지노 게임은 둔해지고, 감정이 흐르는 길은 막혀버린다. 결국 '내가 나'라는 자기감은 점점 흐려진다.


자기감 상실은 카지노 게임의 상실로 이어진다

자기감이 흐릿해진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느낀다. 다만 그 감정이 자기 몸에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없을 뿐이다.

감정을 표현하면 위험했거나 외면당했던 아이는 그 감정을 감추고 억누르는 방향으로 감정과 카지노 게임의 길을 낸다. 하지만 그 길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기에 너무 좁고, 너무 울퉁불퉁하다.


눈치를 먼저 보고, 자기 카지노 게임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 중에는 ‘과잉 순응’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늘 긴장해 있고, 상대의 표정과 말투에 과도하게 반응한다. '싫다'는 카지노 게임보다, '상대는 지금 기분이 어떤가'를 먼저 살핀다. 그렇게 자신은 점점 흐릿해진다.

카지노 게임이 차단된 사람은 어디까지가 '나'인지 헷갈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싫어도 거절하지 못한 채, 늘 '괜찮은 사람'으로 남는다.


카지노 게임이 끊긴 사람들이 무너질 때

이들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카지노 게임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마비되어 있는 상태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카지노 게임을 통해 감정이 처리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넘쳐흐른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순간, 내가 무너진 것 같아요."

그리고는 점점 더 감정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자기감을 다시 세우는 몸의 루틴

자기감은 머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을 통해 깨어난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카지노 게임들을 알아차리는 연습이다.

'싫다'를 느끼는 훈련. 불쾌한 옷의 감촉, 소음, 분위기, 사람의 말투. 그 모든 카지노 게임에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각해 보는 것.

'거절'을 표현하는 연습. 작은 불편함에도 "지금은 안 돼요"라고 말해보는 것. 습관처럼 짓던 미소 대신, 침묵이나 단호함을 허락해 보는 것.

'요청'을 시도하는 연습.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고, 기대되는 활동을 제안해 보는 것. '나는 이걸 원해요'라고 말하는 경험을 몸에 새겨두는 것.

이 루틴들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몸과 나 사이의 끊어진 선을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다.


카지노 게임이 돌아와야, 자기감도 돌아온다

자기감은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가’를 느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불쾌감, 어색함, 주저함. 그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씩 자기 쪽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거창한 각성이 아니다. 몸의 카지노 게임에 머물러 자신을 만나는 조용하고 뜨거운 재회이다.



자기감을 지우는 생존 전략에는 또 다른 방식도 있다.

너무 잘 맞추는 것만큼이나, 너무 멀어지는 사람들.

감정을 꺼버리고, 카지노 게임을 닫은 채 살아가는 회피 전략 역시,

‘살기 위해 느끼지 않기로 한’ 몸의 선택일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 한다.




자기감을 되찾는 소매틱 심리 워크숍『치유의 카지노 게임』신청 링크: https://healingsense-1.carrd.co/

안유선 작가 소개 링크: https://beacons.ai/ahnyo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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