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이다. 익숙한 공간. 물건들의 익숙한 위치. 고민하지 않아도 움직임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곳. 무엇보다 내가 내린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집에 돌아왔다.
시작은 끝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여행의 끝에는 현실의 시작이 바통을 넘겨받기 위해 손을 뻗고 기다린다. 일주일 넘는 일정이 무색할 만큼 현실감이 너무 빨리 자리를 차지하는 기분이라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든다.
'가만, 그런데 언제가 여행의 끝이고 현실의 시작이지? 정확히 어떤 순간부터 현실감이 올라왔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나에게 여행의 시작과 끝은 모두 비행기 안이다. 이륙을 위해 기내에 탑승하는 시점이 시작이고, 착륙하여 비행기에서 내리는 시점이 끝이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여행의 순간들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비행시간이다. 갈수록 몸이 힘들긴 하지만 장거리 비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어쨌거나 집에는 왔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일정이라 피곤했는지 아이는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부터 낮잠을 자기 무료 카지노 게임했다.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방 안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생각도 모두 완벽한 복귀를 끝마친 기분이다.
평소라면 곧 아이 하원 시간이다. 글을 쓰기 위해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초 집중을 하는 시간이란 소리다. 너무 익숙하게 평소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웃기다.진짜, 습관이란 게무서울 만큼대단하긴 하다.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인지하는 순간 바로 작동하는 걸보니.
현실의 불이 켜지니 자연스레 삶에 대한 궁리가 뒤따른다.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자에겐 언제나 그렇듯 답을 찾기 위한 고민과 누군가의 보이는 삶의 단면으로 인한 부러움이 행성처럼 공전을 시작한다.
현실은 원래 그런 것 같다. 현실감의 무게는 공기보다 가벼워 숨을 쉴때마다 계속 떠오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마음으로 보냈던 여행과는 달리 이러면 이래서 안 될 것 같고 저러면 또 저래서 안될 것 같기만 하다. 마치오래된 식당 테이블의 끈적거림처럼 불편한 마음을 닦아내고 닦아내도 모두 닦이지 않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게 현실이다.
당장 오늘부터 다시 문제 풀이를 시작해 보기 위해 책을 꺼내 들었다. 환상을 걷어내고 내면 여행이야말로 자본의 영향력이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시간이다.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이 감사하지만 아이가 있기에 다음번엔 더 좋은 조건으로 떠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커졌다.
아무리 그래도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바로 현실적인 생각들이 가득 차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지만, 그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한 가지뿐이다.
'자, 다시 무료 카지노 게임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