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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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n 11. 2024

초 여름 같은 6월의 카지노 게임

"아빠 우리 카지노 게임 가면 마시멜로도 먹고, 어~, 물놀이도 하고 그러자."


요 근래 아이는 계속 카지노 게임 이야기를 꺼냈다. '얘가 대체 '카지노 게임'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들었지?' 생각해 보니 최근 즐겨 본 외국 유튜브 채널에서 카지노 게임 가는 장면이 나왔던 게 떠올랐다. 'Blippi'라는 채널인데 국내에는 더빙본으로 서비스가 되는 채널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적인 콘텐츠를 다루고 있는데 한 번은 텐트를 치고 불멍을 하며 비스킷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는 '스모어'를 만들어 먹는 장면을 보았다.


그 이후로 아이는 계속 카지노 게임 이야기와 함께 마시멜로를 먹자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작년에 친한 친구네랑 같이 놀러 갔던 경주에서 처음으로 마시멜로를 구워 먹긴 했었다. 어려운 건 아니니 아이에게 꼭 그러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떠나는 날. 주말 사이 장염으로 힘이 없었던 아이는 마치 카지노 게임만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자가회복을 한 것처럼 쌩쌩해 보였다. 물론 그 속은 알 길이 없지만. 하도 배 아프면 카지노 게임 못 간다고 엄포를 놔서 그런가, 아이는 다 낳다고 먼저 말했다. 그러면서 카지노 게임에 갈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얼굴로 이야기했다. 거기에 더해 안전시트도 잘 앉을 수 있고, 경찰 아저씨를 보면 안전시트에 잘 앉아있다고 자랑할 거라고 했다. 귀여운 녀석.


사실 아이는 안전시트에 앉는걸 정말 싫어한다. 어떻게든 내려와 앉으려고 온갖 투정을 부린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안전시트에서 내려 안아줬더니 이젠 대놓고 앉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안전시트에까지 잘 앉아 갈 수 있다고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카지노 게임에 가고 싶긴 했나 보다.


정확히는 텐트를 치는 카지노 게임은 아니고 카라반 숙소를 예약한 것이다. 마치 키즈 풀빌라처럼 숙소에 프라이빗 수영장이 딸려 있는 숙소다. 물론 공용 수영장도 있고 놀이 시설도 갖춰져 있어서 아이랑 함께 보내기엔 꽤 괜찮아 보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유난히 더운 날이어서 당장 수영장부터 갔다. 4살 아이랑 함께 하는 물놀이는 뭐 그냥 아빠의 무한 퍼포먼스 시간일 뿐이다. 튜브에 태워 이리저리 흐느적흐느적 왔다 갔다 하다가 튜브를 높이 들었다 물 위로 '풍덩' 던지기도 하고.


이제 키가 좀 커서 그런지 공용 수영장에서는 튜브 없이도 발이 땅에 닿았다. 이런 순간이면 매년 아이의 성장이 느껴진다. 매일 봐서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이는 이렇게 쑥쑥 크고 있었다.


공용 수영장에서 한참 놀고 들어와 프라이빗 수영장에서 또 한참을 놀고 나서 바비큐를 했다. 이미 7시가 넘어버린 저녁.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는데 숯에 불을 붙이고 나니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역시 해가 넘어가는 건 순간이다.


오랜만에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는 평소 보다 더 맛깔났다. 1박 2일 일정이라 간소하게만 챙겨 와서 딱 고기랑 김치, 샐러드와 쌈채소, 버섯과 소시지만 두고 먹었는데도 푸짐한 한 상차림을 먹는 기분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또 카지노 게임이라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아이가 그렇게 기다렸던 마시멜로 타임이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우, 6월 중순에 불멍은 좀 아니지 않나?' 분명 오늘 낮 기온을 떠올리면 미친 짓이다. 그러나 숙소가 있는 가평은 그래도 산자락을 끼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밤공기가 제법 선선하다. 그 덕에 오히려 불멍 할 맛이 났다.


마시멜로는 꼬챙이 대신 나무젓가락에 꽂아 요리조리 굴려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었다. 한 2개 먹고 나니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아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이는 4개 먹었나?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 봉지의 2/3는 그대로 남아버렸다. 마침 맞은편 카라반에 아저씨 3명이 불멍 중이었다. 고구마를 가지고 왔는데 포일이 없어서 구워 먹지 못하고 있길래 마시멜로를 다 드렸다. 그랬더니 아저씨 한 분이 추억의 쫀드기를 건네주셨다. 불량식품이 오가는 아름다운 초 여름 같은 6월의 밤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에게 카지노 게임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궁금해진다. 분명한 건 장작불을 펴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은 것 하나는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 엄마랑 물놀이를 한 것도. '다음번엔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진짜 카지노 게임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더 큰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언젠간 함께 떠나보는 날이 오겠지 뭐. 그땐 아이가 지금보다 더 컸겠지? 그때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우린 불멍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궁금해서라도 꼭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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