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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Jul 21. 2022

무료 카지노 게임의 비애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는 이름보다 성씨가 더 많아서 실제적인 이름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오바마, 케네디, 트럼프, 부시 등 미국 대통령들의 성을 보더라도 이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독특하다.


사실 우리나라도 성씨가 많다.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시스템 상에 등록되어 있는 성씨가 6,000개가량 된다고 하니 예상을 초월한다.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들이 본래의 성씨에 가까운 발음으로 성씨를 만들어 등록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제외하면 실제 우리나라 성씨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다.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박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씨가 많지 않으니 우리는 이름으로 구분되어야 하는 운명인데, 그 운명마저도 이렇게 욕될 수가 있을까. 두 글자밖에 되지 않는 이름에 하필 돌림자라는 것을 넣어 굳이 한 핏줄임을 표방한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돌림자 때문에 멋진 이름을 만들 선택의 여지가 확 줄어든다. 비극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내 이름이 싫다. 내 이름은 '송덕근'이다. 어감은 둘째치고 도무지 발음하기조차 쉽지 않다. 어쩌다가 경상도 사람이 발음하기 힘들다는 ‘ㅓ’와 ‘ㅡ’를 동시에 넣었단 말인가.간혹 이름을 불러주면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게 받아 적는다. 손덕근, 송득근, 송덕건, 송득건...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오류는 이것이다. ‘홍득권!’ 경악했다.


어떻게 이름을 짓게 되었냐고 아버지께 여쭤본 적이 있다.할아버지께서 돈을 내고 작명소에서 받은 이름이라 했다. 어떻게 그 이름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까. 돈을 허투루 쓴 걸 보면할아버지는 돈이 많았던 걸까.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당위를 느끼곤 했다.


온라인 작명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이름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일단 어감이 좋고 받침이 없으며 연음이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가급적 된소리가 없는 자음을 쓰면 부드러움을 겸비할 수 있다. 또 영어식으로 성을 뒤로 돌려 발음할 때도 고려해야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친구의 이름이 ‘박운희’였다. 여성적인 느낌이 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발음이었다. 그가 죽도록 듣기 싫어했던 별명은 ‘빠구리’였다. 박운희가 19금의 별명으로 불리게 될지 그의 부모님은 상상이나 하셨을까.


요즘은 개명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은행 계좌를 비롯해 사회생활에 엮인 각종 내 개인정보를 수정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은 꼬박 한 달 이상이 걸린다. 나는 그런 수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실제로 내 형은 ‘홍근’이라는 우중충한 이름을 버리고 ‘윤우’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거듭났다.


족보를 꺼내놓고 '근'자 돌림인 사촌, 팔촌의 이름을 나열해 보면 대략 이렇다. 인근, 양근, 철근, 우근, 복근, 춘근, 봉근, 부근, 태근, 홍근, 창근, 명근, 종근.... 처참하다. 정말이지 '근'자 돌림은 저주에 가깝다. 이 이름들을 혼자 발음해 보며 나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근자 돌림으로는 아무래도 멋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둘째, 그래도 내 이름이 개중에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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