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론산바몬드 Jul 21. 2022

무료 카지노 게임와 눈썹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교직에 처음 입문하던 무렵엔 차가 없었다. 부산에서 무료 카지노 게임를 타고 시외무료 카지노 게임 정류장까지 갔다가, 시외무료 카지노 게임를 타고 양산에 내려 또 1㎞ 가량을 걸어가야 하는 곳에 발령받은 고등학교가 있었다. 출근길 혼잡한 교통길에 갇히는 게 싫어 나는 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당시 우리 집은 소위 ’달동네‘에 있었는데, 산 정상이 산 아래쪽보다 더 가까웠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도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새벽 5시 45분쯤 집을 나서 부지런히 걸으면 6시를 조금 넘겨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51번 무료 카지노 게임를 탈 수 있었다. 보통 첫 무료 카지노 게임가 5시경에 출발하니까 내가 타는 무료 카지노 게임는 두 번째 무료 카지노 게임 정도는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다. 한때 아침형 인간이 건강하고 더 성공한다는 따위의 유언비어가 난무했던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칸트, 에디슨, 나풀레옹, 헤밍웨이 등 많은 위인들이 아침형 인간이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또는 종달새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은 신체 각성도가 높은 시간이 언제인가에 따른 단순 구분일 뿐 실제로 아침형 인간이 잠을 적게 자는 것도 아니며 아침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오바마나 처칠, 다윈, 모차르트, 데카르트 등은 저녁형 인간이면서도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아무튼 매일 그 시각에 무료 카지노 게임를 탄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토요일도 출근을 하던 때니 더더욱 그랬다. 나보다도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 먹이느라 꼬박 새벽에 일어나셨을 어머니의 노고는 지금 생각해도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이른 아침 무료 카지노 게임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해 거의 서너 명의 승객만이 있었는데, 유독 맨 뒷좌석 창가에 고정적으로 앉는 이가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그 여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심하게 졸았다. 간혹 무료 카지노 게임가 요동칠 때마다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면 그녀가 졸다가 차창에 머리를 박는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잠이 깬 그녀는 실눈을 뜨고 흘리던 침을 닦으며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다. 부산대학교를 조금 지난 지점이 무료 카지노 게임의 종착역인 걸 감안할 때 옷소매로 침을 닦는 저 지저분한 여자는 분명 부산대학교 학생일 터였다. 연신 창문에 머리를 박으면서 조는 걸 보면서 차라리 집에서 더 잠을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저 상태로는 도서관을 가더라도 엎어져 잠만 잘 텐데 하고 혼자 생각했다. 미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 뒤로도 2년여 동안 매일 아침마다 그녀는 줄곧 그 더러운 모습 그대로 차창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여전히 침을 흘렸다.

(이 더러운 여자는 다른 글에 중요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나중에 변호사가 되었다.)


7시를 조금 넘겨 교무실에 들어서면 늘 아무도 없었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고 세면을 끝내고도 조금 시간을 죽여야 선생님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고등학교였지만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아침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없어 제법 여유가 있었다. 당연히 선생님들도 느지막이 출근하고 칼퇴근을 했다. 때는 바야흐로 1999년이었다. 그때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소위 ’이해찬 1세대‘라 불렸다. 이해찬 씨가 교육부 장관이 되면서 대폭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과 모의고사 등을 폐지하면서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특히 새로운 대입제도를 마련하여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대학 전형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여파로 당시 고등학교 1학년들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오후 3시 반에 인문계 고등학생이 하교하는 일은 단군 이래 처음이지 않았을까. 아마도 노스트라무스의 예언을 1999년 지구 멸망으로 해석한 전 지구적인 위기감도 한몫했지 싶다. 다행히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정부의 발표만을 믿고 공부를 등한시했던 이해찬 1세대만이 멸망했다. 언론에서 연일 학력저하를 이슈화하고 이해찬의 개혁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면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은 어느덧 고3이 되어 있었고, ’역사상 최고의 꼴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덕분에 고1 담당 교사들도 모처럼 해빙기를 만끽했다. 그 느슨한 분위기는 바짝 군기가 들어있어야 하는 신규교사마저도 무장해제를 시켰다. 학생들은 수업을 등한시했고 입직 전 가졌던 망연한 교직에의 동경도 낙엽이 되어 발에 밟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 세면장에서 면도를 하며 거울을 바라보는데 문득 공허감이랄까 허무 비슷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왼쪽 무료 카지노 게임을 밀었다. 바로 후회가 밀려왔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얼른 교무실 한편에 있는 구급함에서 반창고로 거즈를 붙였다. 누가 물어보면 생채기가 크게 났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날 난 두 가지 사실을 몰랐다. 첫째, 하필이면 그날이 졸업앨범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교직원들도 독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벌써 예고된 것이었는데 왜 그걸 간과했을까. 할 수 없이 그냥 찍었다. 내가 몰랐던 두 번째 사실은 꼭 그날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에 찍어도 되었고 심지어 가지고 있는 증명사진으로 대신해도 무방했다. 신입이라 그걸 몰랐다. 나중에 졸업앨범에 나온 내 모습은 참으로 민망했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건드리지 않겠노라 맹세했고 지금껏 그 맹세를 잘 지키고 있다. 살아가며 어떤 감정에 휘말려도 무료 카지노 게임은 깎지 말자. 무료 카지노 게임은 죄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