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같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아이에게 '말씀이 입에 배도록' 주일학교 교육을 중시했던 양가 장로교 어머님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년에 단 한 번, 성탄대축일에만 예배를 드리러 덕수궁 옆 서울대성당에 가곤 했다.
그런데 지난 성탄대축일 예배에서는 무언가 마음의 분노가 사라지고 평화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직감했다. '아, 이제 카지노 게임에 나가도 되는 모양이구나' 내 인생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아, 4년 만에 다시 정착할 카지노 게임를 찾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카지노 게임를 찾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두 가지 조건, 곧 우리 아이에게 매주 영성체할 수 있게 해주는 카지노 게임일 것과 여성과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환대하는 카지노 게임일 것,이었다.
숱하게 그냥 근처 장로교, 감리교 같은 개신카지노 게임에 나가라는 권유를 받고 있었지만, 도무지 한국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니콘 찾기 같은 조건을 내걸고 한사코 마다하고 있던 터였다.
미국성공회와 달리, 아직까지는 성 소수자를 사제로 서품하지는 않는 한국성공회지만, 그래도 퀴어축제에 나가 동성애자 축복식을 하는 사제가 있고,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역사가 있는 교단이라, 집 근처에 어디있나, 이 작고도 작아 천연기념물 같은 카지노 게임가 어디있나 찾아봤다.
집에서 차로 삼십분 거리에, 여성 사제가 관할(담임)사제로 있는 작은 성공회 카지노 게임를 찾았다. 불과 오십여명이 인터넷과 성당에서 예배드리는 카지노 게임였다. (한국에서는 보통 카지노 게임다닌다면 개신카지노 게임를, 성당다닌다면 천주교라고 하지만, 성공회Anglican/Epsicopal Church는 영국국교로 국민 대통합을 위해 두 교단을 섞은 짬뽕 교단이다)
사실 대형카지노 게임를 다니면 이점이 많다. 주차 편해, 인맥 쌓기 좋아, 어린이를 위한 주일학교 프로그램도 빵빵해, 밥도 맛있어, 찬양팀 세션도 좋아, 헌금 좀 안해도 부담없어ㅋㅋ 등등등.
이 카지노 게임는 작지만, 그 안에 들은 것은 간단치가 않았다. 나는 전공이 신학이었던지라, 매의 눈으로 모든 걸 살펴보았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 전화로 신부님에게 어린아이도 영성체(성만찬례의 빵을 받음)가 가능한가요 물었더니 '그럼요! 가능하죠' 흔쾌한 응답을 들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줄서서 제대 앞으로 나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줄을 섰다. 아차, 우리가 그만 영성체 예절을 교육을 안해서, 아이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야할 성체 면병을 한 손으로 냉큼 받아 오물오물 씹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엄숙하게 '이러면 안됩니다'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터였지만, 신부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를 쫒지 않고, 약자와 죄인과도 함께 어울려 종교중독자들에게 '먹보에 술꾼'이라는 비난을 받은, 청년 예수의 식탁 그대로였다. (참고로 천주교는 세례받은 후 10세 전후의 아동에게만 성체를 준다. 개신카지노 게임는 유아세례를 받고 사춘기가 되어 교리교육을 받은 아이에게만 성찬 참여를 허락한다) 내가 배우기로, 아가페 사랑의 만찬이었던 예수의 원식사가 후일에 종교적 의미가 더해져서 점차 세례를 받은 이만, 거기에 또 죄인임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러야만, 등의 조건이 덧붙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신지체가 있는 장애인들은 어떻게할 것인가. 그런 고려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배제해온 게 그리스도교 이천년 역사였다. '배제하는 카지노 게임'에서는 장년 비장애인 남성만이 최고고 나머지는 전부 무시되거나 손쉽게 배제된다.
그래서 아이는 예전에 성탄예배드리러 대성당에 갔을 때, 왜 자기에게는 '그 희고 작고 동전같이 동그란 걸' 안주냐고 물었었다. '어허, 애들은 가라'던 사람들을 꾸짖고 보란듯 어린아이를 안아들었던 청년 예수. 나는 그게 더 원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은 카지노 게임 안에는 성 소수자도 있고, 불법체류로 추방되기 전까지 이 카지노 게임를 다니던 파키스탄인 노동자도 있었다. 거기에다...
그렇다.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에서 동물권을 공부하신다는 특이한 신부님의 신념대로, 이 카지노 게임는 예배 때 반려동물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 영성체 마지막 시간에 동물을 데리고 나가면 신부님이 저렇게 축복기도를 해주신다. 신부님도 두 고양이의 집사시다.
이 카지노 게임에는 주일학교가 없다. 많은 성공회카지노 게임가 작은 규모라 그렇다. 그래서 거룩한 성찬례 시간에 아이들이 재잘재잘 쫑알쫑알 으아아앙하는 걸 '어허!'하는 카지노 게임에서는 부모들이 아예 카지노 게임 나가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신부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애들이 떠들지 그럼 뭐하냐고 말씀하셨다.
그래, 그렇게 배웠다. 중세카지노 게임의 미사시간에 신자들은 어차피 라틴어라 알아듣지도 못하니, 성당에 온갖 가축까지 끌고 들어와서 자기네들끼리 소식나누고, 스테인드글라스 구경할 사람은 그거 보며 성경 이야기를 알고, 기도할 사람은 묵주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모두가 환대받는 다양하고 시끌벅적한 카지노 게임.
그런데 그런 카지노 게임가 왜 크지 못하고 작을까? 그것은 카지노 게임가 사람들이 원하는 크기와, 능력과, 출세와, 영광만을 쫒지 않기 때문이다. 헌금하라, 갖은 예배와 모임에 다 나와라, 그런 자극(?)이 없으니 카지노 게임가 매가리가 없다.ㅋㅋ 예배만 드리고 부리나케 모두 사라져 버리는 싱거운 카지노 게임라 그렇다. 저자극 카지노 게임라 할까부다.
그건 그것대로 카지노 게임 입장에서는 고민일터이다.
하지만 이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신앙마저도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열심히 해야' 일년에 한 번 내려오는 천사를 만져 병이 낫는다는 성서의 베데스다 치유연못 같게 해야하는 걸까 싶다. 종교 디톡스가 필요하다.
이렇게 싱겁고 미적지근한 카지노 게임가 백년 넘게 여기저기에서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으니 '천연기념물'같은 카지노 게임라고 한 것이다. 성공회 아니더라도, 이런 희한한 카지노 게임가 더 많아져, 저 전모씨의 추종자들을 부끄럽게 만들면 좋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