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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Mar 11. 2025

새빨갛고 싱그러운 카지노 게임

지난 주말에는 아이랑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남양주에 있는 유기농 카지노 게임농장에 다녀왔다. 부모님이랑 같이 다녀오자는 건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나는 아이 체험 농장인데, 에이, 뭐가 재미있으시겠어,라고 생각했다. 조카들 때문에 이런 데 많이 다녀보셨을걸?


오후 2시, 예약한 시간이 되자 백이면 백, 아이를 앞세운 부모들이 옹기종기 비닐하우스 안으로 모여들어 농부 아저씨 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었다. 카지노 게임는 매우 예민한 아이이기 때문에 손으로 집었다 놓으면 그 온도로 인해 쉽게 무른다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500그램 들이 카지노 게임통을 들고 바로 옆 비닐하우스로 갔다. 밭고랑이 깊이 파여서 카지노 게임들이 아이들이 따기 좋은 위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제 막 수분해서 열매가 되기 시작한 파란 카지노 게임들 사이에, 정말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빨간 카지노 게임가 그림같이 매달려 있곤 했다. 에덴동산의 금단의 과일이 한국 카지노 게임라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텐데. 그 향하며 맛하며..


유기농이라니, 농약도 없겠다, 어머니는 거리낌없이 카지노 게임를 한 개 따다 맛보시고는, 이야, 맛있다! 하신다. 가만히 보니 아이는 정작 가만 가만히 카지노 게임를 천천히 따고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다 따갈세라, 그새 부지런하고도 꼼꼼하게 카지노 게임상자를 꽉꽉 채우고 계셨다. 중간중간 어디에 올라갈지 용도를 잘 알겠는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시고, 매우 신이나고 분주하신 느낌이었다.


다들 빨간 카지노 게임가 잘 익어 향내를 풀풀 풍기는 카지노 게임상자들을 한아름씩 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왔다.


다시 되돌아온 비닐하우스에서는 카지노 게임잼 만들기 체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큰 웍에 깨끗하게 잘 닦인 카지노 게임들이 소복이 쌓여있었고, 유기농 마스코바도 설탕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카지노 게임를 으깨면서 센 불에 천천히 계속 저어 꾸덕하게 만들면 되는, 생각보다 간단한 체험이었다. 우리는 따온 카지노 게임를 씻어 먹으면서 돌아가며 주걱을 저었다. 녹은 설탕 때문에 빛깔이 훨씬 더 진한 빨강이 되었고 미끈하게 빛나는 광택 덕분에 더욱 맛있어 보였다.


그때 농부 아주머니가 노랗게 잘 구운 토스트빵을 나눠주고 다니셔서, 빵에 갓 만든 카지노 게임잼을 듬뿍 발라 다들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때마침 잔뜩 찌푸리던 하늘에 비가 후두둑 내리면서 비닐에 튕기는 소리가 가득찼다. 운치있는 카지노 게임잼 시식 체험이었다.


아이는 사람이 많으면 무조건 좋은데, 어머니 아버지도 뜻밖에도 매우 흥미로워 하시면서, 아이 아니면 이런데 올 일이 없다면서, 처음이시라면서, 기꺼워하셨다.


그때, 그 순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카지노 게임의 신호가 짜릿짜릿 뇌로 전달되고 있었다. 진즉에 이런 데 더 많이 모시고 다닐 걸,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8년 동안, 어머니 아버지는 은퇴 후 여행의 황금기를 지나셨다. 이제는 무릎이 아파서 어디 모시고 다니기도 쉽잖게 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들 노곤해서 깜빡 졸 그 시간에, 혼자 깨어 운전하며 마음 속이 감사로 가득 차올랐다. 그래도 여직 두 분 다 건강하신 것, 지금이나마 이렇게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것, 귀여운 손주가 나와서 노년에 자라는 거 보는 즐거움을 드릴 수 있던 것, 그 모든 것이 하나하나 절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참 다행스럽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두 분이 다 일찍 돌아가셔서 허전한 사람도 있고, 구존하시더라도 여기저기 많이 편찮으셨더라면, 혹 아이가 없었다면, 오늘의 카지노 게임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경북 봉화의 고즈넉하고 오래된 한옥집에 숙박한 적이 있었다. 조금 덥기는 했지만 대청마루에 앉아서 부채 부치면서 한가롭게 이런 저런 별거 아닌 이야기하던 시간은 나만 좋았던 게 아니라 부모님께도 의미있는 시간이셨나보다.


그러니, 모시고 다니느라 욕볼 것은 없다. 나는 나대로 아버지이기만 한 게 아니라 '아들'로서 또 사랑받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에 힘을 얻으니 말이다. 그럴 때면 잠시라도 아이의 양육자 정체성을 내려놓고, 시원하고 탁 트인 바람 쐬고 오듯이,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 안온할 수가 없다.


모쪼록 두 분 모두 항상 건강하셔서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밀리는 길을 천천히 운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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