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에게 학습을 억지로 시키는 경우 아이가 너무 질려서 오히려 다시는 하기 싫어카지노 게임 경험이 있는가? 혹은 부모가 자녀의 배움의 의사나 관심사와 상관없이 단지 사회적으로 트렌드이고 누구나 다 카지노 게임 거니까 시켜서 했던 경험이 있는가? 자녀의 취향 고려나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학원을 보내는 바람에 나도 나 자신에게 무엇을 좋아카지노 게임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묻지 않고, 스스로를 탐색할 여유도 없이, 시키니까 그냥 했던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배웠을 때 다행히 나와 잘 맞으면 행운이지만 대체로 그렇게 배운 것은 오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 좋은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고, 심하면 다시는 보기도 싫은 혐오 대상이 된다.
내가 초등학생 이었던 20년 전만 해도 남자아이는 무조건 태권도, 여자는 피아노, 영어 수학은 기본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교육 트렌드는 관심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영어는 기본이고, 코딩 열풍이나 김연아 열풍이 미디어의 잦은 노출과 함께 교육 트렌드로 왔다 갔다, 열풍이 일었다 식었다 하는 것 같다. 교육이 상업과 비즈니스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고, 절대 간과해서도 안 된다.
내 경우, 그래도 수학을 잘 한다고 칭찬을 받았었는데, 중학생 때 질문을 했다가 선생님이 당황하셨는지 "너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니?"라고 하는 바람에 교실 전체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 후로는 수학 시간에 질문을 잘 못했고, 재미있어 했던 수학에 대한 흥미도 함께 사라져갔다. 반대로 영어는 싫어했는데, 중학생 때 만난 유쾌한 영어 선생님 덕분에 영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이처럼 학습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사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사람과의 관계나, 어떻게 노출이 되는지에 대한 학습 환경도 어릴수록 중요한 부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남편의 경우, 어머니가 초등학생 때 바이올린을 억지로 시켜서 평생 바이올린은 보기도 싫어한다. 나의 경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영어 학습지와 피아노 학원을 보내셨지만 둘 다 내가 배우고 싶은 의지와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흐지부지 끝냈다. 자녀가 스스로 학습 동기를 찾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배우려고 할 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자연스럽게 한 발짝 뒤에서 티 나지 않게 이끌어주는 것이 배움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이 새벽에 나 뭐하고 있지?" 하면서도 비몽사몽 상태에서 새벽 4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내 관심사에 대한 충분한 의지와 동기가 습관처럼 배움의 현장에 내 몸을 가져다 놓는다. 과정은 힘들지만 재미있고, 결과물은 보람 있고 나름의 의미와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한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글로벌화될 것이고, 삶에서 더 많은 가능성과 선택권을 갖기 위해 영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단어 공부와 문법 공부를 힘들게 열심히 오랜 세월 동안 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영어라고 하면 큰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해야만 하는 공부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 울렁증이나 거부감이 생기는 이유가 영어를 공부로 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공부로 대할 때는 전략적으로 짧게 치고 빠지고, 사실은 영어로 즐길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영어라는 언어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많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영어를 노출시켜준다면 그 이유는 삶에서 더 많은 가능성과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 일 것이다. 영미권 국가에 가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과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소통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어딜 가도 자신 있게 원하는 커리어를 쟁취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조율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요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공부로 느끼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영어를 선택한 이유는 진심으로 재미와 성장을 느껴서였고, 영어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영어를 노출시켜 준다면 모국어를 배우듯이 재미있고, 즐겁게 그리고 꾸준히 아이가 즐길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선에서 영어 노출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영어를 싫어하거나 거부감이 없게 할 수만 있다면 일단 성공이다. 그렇다면 강요나 강제는 절대 없어야 한다.
나의 경우 영어는 디즈니 만화를 좋아했고, 너무 어려워서 싫어했던 일어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지브리 만화가 큰 역할을 했다. 나는 영어관련 각종 업무와 특히 번역과 관련된 일을 했었고, 남편은 일어, 한국어의 전문 통,번역 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언어적으로 훈련이 많이 되어있다. 현재 5세 딸 아이는 엄마와는 영어로 된 동요를 듣고 같이 불러보고, 아빠와 함께 일어로 된 동요를 함께 즐겨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고 따라 부르게 되었다. 좋아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아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것 위주로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주었고,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부모가 함께 했고 함께 즐겼다는 것이다. 영어 동요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면서 좋아하게 되었고, 이는 아이가 한국어 동요를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모국어를 배우듯이 자연스러운 노출을 시켜주었고,아이의 관심사와 연결된 콘텐츠에 대한 흡수력은 대단했다.어쩌면 아이는 콘텐츠 자체보다 부모와 웃고 노래부르고 함께한 그 시간 자체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딸 아이는 동물, 곤충, 바닷속 친구들을 좋아해서 이런 호기심과 춤, 노래, 만화 등 좋아하는 관심사와 연결을 해주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선에서 만화 영상은 30분 이하로, 최대 1시간 정도, 최대한 짧은 시간만 노출을 해주었고, 대부분은 최대한 밖에 나가서 직접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보여주고, 직접 곤충채집을 하러 산에 가고, 대부분 자연이나 해변이나 계곡과 숲속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과 탐험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딸 아이는 지금 영어, 일어, 한국어의 차이를 안다. 대부분 동요, 짧은 만화의 대사 같은 것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외워서 따라 하며 익힌 것들이다.
24개월 전에는 최대한 미디어에 절대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36개월 부터는 한국 동요를 보고 듣고 춤추며 따라하고, 한국어를 어느정도 하면서 부터 5세가 되어서야 일어는 아빠를 통해 영어는 엄마와 함께 즐기며 따라 불렀다.학습을 위해 의도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다.우리 가족의 관심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도 접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이 함께 즐기는 놀이와 취미같은 것이 되었다. 아이는 동요가 듣고 싶을 때 스스로 무엇을 듣고 싶은지 말한다. 그때 그때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사에 따라서 영어 동요를 고를 때도, 일어 동요를 고를 때도, 한국 동요를 고를 때도 있다. 그럼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아이는 동요 안에 있는 단어와 문장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우리가 공부할 때, 읽기 - 쓰기 - 듣기 - 말하기의 순서로 한다.이것은 초등생 이후 공부로 접할 때의 방식이다. 공부나 일로 접한다면 이 방식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모국어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면, 듣기 - 따라하기, 말하기 - 읽기 - 쓰기의 순서로 언어를 습득한다. 초등생 전이라면, 사실 나는 고등학생 전까지도 이 방법이 공부나 시험으로 언어를 접카지노 게임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를 습득카지노 게임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방법대로 했기 때문에 모국어처럼 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처럼 접근카지노 게임 것은 고등학생 이상의 학생들이나 성인들이 빠른 성과나 점수를 내기 위한 필요에 의해 접근카지노 게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성인들의 학습법을 어린아이들에게 하다 보니 오히려 영어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처음 영어를 접하게 할 때 알파벳, 파닉스, 그 다음 책 읽기로 연결시킨다. 유아 뇌 발달 측면에서도 단계적으로 학습에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인데, 읽기 쓰기 영역은 초등생 이하의 유아들에게 이성과 논리 영역에 뇌 발달이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읽기 쓰기를 배우게 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며, 엄마도 아이도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하는 소아발달전문의들을 많이 접했다.
각 나이대 별로 영어 학습법은 달라야 한다. 특히 영유아 초등, 중등, 고등, 성인의 학습법과 목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혹은 영어를 습득하는 목표에 따라 영어 학습법은 달라야 한다.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지금 어떤 단계이고, 어떤 학습 상황에 놓여 있는지가 중요하며 이를 기준으로 어떤 학습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는 아이가 커서 초등생 이상이 되어도 선생님처럼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문화를 즐기고 콘텐츠를 공유하고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모국어처럼 가정에서 대화를 통해 듣고 말하는 것부터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습득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요즘에는 저렴한 비용으로도 앱을 통해 영미권 원어민 선생님과 화상 통화로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이 생겨 초등생 후로부터는 이런 방식으로 듣기와 말하기를 외국인 선생님과 재밌게 대화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내가 영어를 하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면 매일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하지만 자녀의 교육과 성장에 있어 영어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많다. 자아존중감, 회복탄력성, 정서적 안정, 정체성 확립, 사회성, 좋은 관계 형성을 위한 의사소통 능력, 공감과 배려, 행복과 건강 등 자존감과 인성을 기르는 부분이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서적 안정이 있고 자존감이 단단한 아이는 부모가 무언가를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원카지노 게임 것을 찾아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갈 것이다.
언어적 측면에서 봤을 때도 다양한 언어를 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력, 문해력, 논리력, 사고력, 어휘력, 창의력이 중요하다. 모국어로 깊이 있는 독서와 글쓰기가 먼저 되어야 다른 언어를 배웠을 때도 깊이 있는 언어력을 가질 수 있다. 초등학생 때 부터 독서 후 글쓰기를 같이 해보고 토론을 같이 해보는 것도 언어적 측면뿐만 아니라 인성과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오은영 정신과전문의도 부모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수 없다면 오히려 애매한 영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애매한 언어를 가르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서, 초등생 전에는 일단 모국어를 안정적으로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경우 남편이 일본을 모국어처럼, 나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우리 두 부부 모두 한글을 모국어로 쓰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의지와 관심사에 맞춰서 시도를 한 것이다. )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의 동기와 의지에 의해서 배우기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성인이 된 지금 내가 배우고 싶은 의지와 동기가 생겨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어공부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특히 공부는 내가 원해서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되어있다. 스스로 해야하는 동기가 충만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게 되어있다.
EBS 한 다큐에서 한 실험이 생각난다. 동일한 두 종류의 시험을 한국과 북유럽 7세 유치원 아이들에게 주었다. 여러 유치원에서 시도했으나 결과는 놀랍게도 일치했다. 알파벳과 단어를 외워서 맞추는 것은 한국 유치원 생들이 잘 했다. 하지만 사진 6개의 순서를 섞어서 맞는 순서대로 배열을 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유럽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잘 했다. 한국 아이들은 대부분 순서를 맞추는 논리가 부족했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창의력에서도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한국아이들은 알파벳과 단어를 잘 알았지만, 유럽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알파벳과 단어는 몰라도 자신의 논리와 창의성으로 나름의 스토리텔링과 의미 부여를 열심히 하려고 한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의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살다 보면 깊은 이해력, 문해력, 의사소통 능력, 사회성, 협력, 문제해결능력이 중요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에 따라 깨닫는 관점과 책을 이해하는 통찰의 깊이가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통역을 영어로 interpretation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해석'이라는 뜻이다. 통역을 '해석'이라고 하는 이유는 실제로 통역자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Text가 있으면 Text로만 받아들이는 사람과, text의 context를 이해하는 사람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text의 context를 이해하지 못하면 text에 오류가 날 수 밖에 없다. Text의 배경의 이해, 맥락의 이해, 깊이 있는 연구와 공부에 의해 같은 내용도 통역의 수준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이유도 문해력, 이해력, 사고력, 어휘력 등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국어를 깊이 있게 다룰줄 알아야 다른 언어의 깊이있는 습득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한국 사람이라면 일단 모국어인 한글을 잘 하는 것이 먼저다.
최고의 적은 부모의 '비교'와 '불안'이다. 정말 아이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인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은 내 마음속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인가? 부모들이여, 진심으로 불안의 원인을 분석해 보시길 바란다. 아이에게 부모의 불안을 투여해서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해서는 안 된다. 부모 스스로 불안을 해결해야하는 문제일 수 있다.
아이를 믿고 아이를 관찰하며 아이가 좋아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다양한 환경의 노출을 제공해 주되, 어떤 것에 더욱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지의 선택권은 자녀의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 아닐까? 내가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는, 내가 부모로서 언제든 아이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침해하고, 조금이라도 강요와 강제의 교육을 할 때에, 아이가 내가 직접 쓴 글들을 근거로 나를 비판해 주고 나를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교와 불안이 나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할 때, 이 글을 보며 다시 근본인 내면의 힘을 기르는 교육에 집중을 할 것이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인 나를 내면의 힘이 단단하게 교육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