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3월이 되면 엄마가 바빠졌다. 집안일도 많아졌고 과수원의 나무들에 거름을 주어야 했고 다른 농사도 준비해야 했다.
동생의 생일은 1월이고 내 생일은 3월에 있다.
동생의 생일은 농한기였기에 잊지 않고 챙길 수 있지만, 내 생일은 바빠지는 때에 있어서,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당일 날 챙겨 준 적이 거의 없었다. 늘 하루나 이틀 뒤, ‘어머! 경이 생일이 지나가버렸네.’ 했다.
그때는 농협에서 보내 준 일력이 있었다. 일력이란 매일 한 장씩 찢어나가는 달력이다. 엄마가 바쁘다 보니 일력을 매일 찢으며 날짜를 체크하지 못카지노 게임. 일력이 며칠씩 쌓였다. 엄마는 몇 장씩 한꺼번에 뜯어냈다.
찢은 일력은 종이가 얇아서 불쏘시개나 화장실에서 쓰기 좋은 종이였다.
불쏘시개나 화장실에 종이가 필요할 때 찢었다. 몇 장의 일력을 찢으며 내 생일이 지났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엄마는 급하게 수수부꾸미를 만들었다.
동생의 생일에 수수쌀을 불려서 방앗간에서 곱게 갈아다 놨던 수수가루를 꺼냈다. 팥을 삶고 수수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한 다음, 숯불을 담은 화로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른 후 익반죽한 수수가루를 둥글게 편 후 삶은 팥을 올려서 반으로 접어서 앞뒤로 구웠다.
수수부꾸미였다.
열 살 때까지 수수떡을 먹으면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자란다고 엄마가 말카지노 게임. 나와 동생은 수수부꾸미를 굽는 엄마 곁에 앉아서 붉은 가루가 노릇하게 구워진 수수부꾸미를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그날이 내 생일인지 전날이 내 생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경칩이 지나면서 봄이 산등성이를 넘어 마을로 굼실굼실 들어서기 시작카지노 게임.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겨우내 저장해 놓았던 감자가 썩기도 하고 마르기도 카지노 게임. 어른들은 상한 감자들을 골라내어 커다란 함지에 담아 개울가로 내갔다. 썩거나 상한 감자를 여러 번 물로 헹구어 흙을 씻어낸 뒤 물을 한가득 담아 두었다.
여러 날이 지나면서 감자는 구린 냄새를 내며 썩어갔다. 개울가에서는 집집이 내다 놓은 썩은 감자의 냄새가 오랫동안 났다. 마을 입구부터 똥내에 가까운 냄새가 진동카지노 게임. 오래 지난 후에 썩은 감자는 녹말이 될 것이었다.
그때는 뭐든 버리지 않았다. 군내 나는 김장김치는 씻어서 다시 무쳐먹었고, 먹을 수 없이 쉰밥은 물로 행궈서 동물에게라도 주었다. 낡은 옷을 기워 입었고 귀퉁이가 떨어진 바가지도 실로 꿰매서 물기 없는 곡식을 퍼 나르는 도구로 썼다. 금이 간 플라스틱 대야도 굵은 바늘을 불에 데워 구멍을 뚫어가며 실로 꿰매서 썼다.
아마도 전쟁 속에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서였을 것이다.
봄이 오면서 마을에는 방물장사들이 들어오기 시작카지노 게임.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아주머니의 보따리에는 각종 실과 바늘, 양말, 버선, 옷핀이나 실핀, 참빗, 얼레빗 등이 잔뜩 들어 있었다.
방물장수는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에 들렀다. 각종 건어물을 들고 들어오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이웃의 소식이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방물장수들을 통해서 알게 됐다. 그 아줌마들은 막차가 끊기거나 어두워져서 다른 동네로 갈 수 없을 때에는 동네의 사랑방이 넉넉한 집에서 자고 가기도 카지노 게임.
동동구루무 장수도 왔다. 동동구루무 장수는 지게에 커다란 통을 짊어지고 왔다.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하며 커다란 북을 치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에서 꽤 떨어진 우리 집까지 동동구루무 장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면 엄마는 다 쓴 크림통을 들고나갔다. 구루무 장수가 밥주걱 같이 생긴 것으로 크림통에 하얀색 구루무를 퍼 담아 주었다. 구루무 값은 돈으로도 받았고 곡식으로도 받아갔다.
그때는 시골 가정에 플라스틱 그릇이 많지 않았다. 플라스틱 장사가 바퀴가 세 개 달린 삼륜차에 각종 플라스틱 그릇을 잔뜩 싣고 왔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그릇은 엄마들의 눈을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카지노 게임.
놋그릇보다 가볍고 다루기에도 편카지노 게임. 바가지도 자연산 바가지를 사용카지노 게임. 잘 깨지고 크기도 다양하지 못했는데 플라스틱바가지는 크기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용하기도 편했고 예쁘기까지 카지노 게임.
엄마들은 쓰던 놋그릇이나 스텐 대야들을 내다 주며 플라스틱 그릇들과 바꾸었다. 더러는 집안에서 오래된 도자기나 질그릇도 받아갔다. 아마도 그 속에는 골동품도 수월찮게 섞어 있었을 것이다.
3월의 교실은 추웠다. 오히려 바깥이 더 따뜻했다. 봄이라고 난로도 떼어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봄볕이 들어오는 복도의 카지노 게임 전깃줄에 앉은 제비처럼 나란히 서서 햇볕을 쬐였다. 햇볕이 드는 카지노 게임 앉은 아이는 따뜻한 나머지 수업시간에 꾸벅거리며 졸기 일쑤였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나는 제일 걱정이 화장실이었다. 그때의 화장실은 화장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변소’라고 카지노 게임.
학교 변소는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으로, 가정의 재래식 변소보다 깊었다. 시멘트벽 구조에 빛바랜 파란색이나 초록색 나무문이 달려있었다. 천정은 높았다.
헐렁하게 달린 나무문은 바람 부는 날이면 열렸다 닫혔다하며 더그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녹슨 경첩 소리와 맞물려나는 그 소리는 기괴하기까지 카지노 게임.
학교 가기 전부터 금자가 말카지노 게임. 학교 변소에는 귀신이 산다고, 혼자 변소에 가면 변기 밑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파란 손으로 닦아줄까? 빨간 손으로 닦아줄까?”
나는 학교 가기 전부터 학교변소에는 절대로 가지 않으리라 결심카지노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