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화목하지 않은 이혼 가정에서 자라난 터라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형태의, 이른바 '정상 가족'을 꾸리는 데 대한 열망이 없었다. 퍽 음울한 유소년기를 보내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한 불신과 중압감을 모두 가지게 됐기에 오히려 격렬하게 거부하는 쪽에 가까웠다. 엄마처럼 자녀들에게 헌신할 자신은 없었고, 결국 아빠처럼 자녀에게 결핍을 안겨 주는 무책임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배우자가 생긴다고 해 봤자 수십 년 동안 남남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정에 열심을 다할 거라는 기대도 되지않았다. 그러니 언젠가 엄마라는 큰 산이 저물고 세상에 홀로 남겨질 때를 대비해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양친 중 한쪽의 장례라는 인생의 빅 이벤트를, 그것도 내 또래보다 훨씬 일찍 경험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내 생각과 달리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며 누군가와 서로 의지를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손님 한 명 한 명이 무척 소중하고 고마웠다. 낯설고 어색한 장소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찾아와 밥 한 그릇씩을 비우고 간 친구들이라든가, 부친상은 처음이라 무얼 챙겨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수면양말이니 비타민이니 발바닥 패치 같은 것들을 한 짐 가득 챙겨 온 친구들이라든가, 일할 사람이 부족할 것 같다며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손님맞이를 돕고 집에 돌아간 친구라든가, 손님이 가장 적을 시간에 찾아와 맥주를 몇 캔씩이나 비우고 떠난 선후배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식장이 무척 썰렁했을 것이다.
특히나 사귄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가족들과 안면도 트지 않았던 남자친구가 한달음에 달려와 사흘 내내 곁을 지켜 주지 않았더라면, 입관식과 화장이 다 끝나고 나서 더 크게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을 뒤늦게야 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화장터에서 돌아와 녹초가 된 내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남자친구는 "그게 반려라는 거잖아"라고 여러 번 확언하듯이 되뇌었고, 충격과 허탈감과 밑도 끝도 없는 슬픔이 덕분에 많이 희석되었다. 그렇게 '받는'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동시에 스스로가 이해타산적으로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나의 불행에만 눈이 멀어서 수십 년을 내가 제일 가여운 줄 알고 살았고 내 것만 챙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겁도 났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서 그만두었다. 다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약한 사람이고, 누군가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 위에서 내가 타인에게 기대고, 타인이 내게 기대는 방법을 처음 배우며 힘겹게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빠와의 관계를 단절하다시피 하고 살아왔는데, 아빠는 먼 곳으로 떠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다시 생각할 계기를 남겼다. 아빠의 유산이라면 유산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