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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Jan 03. 2022

조조 최고의 책사, 카지노 게임이 건국을 반대한 이유



왕좌지재(王佐之才). ‘왕을 도울 만한 재능’이라는 뜻으로, ‘왕을 보좌하여 큰 공을 세울 능력을 지녔거나, 한 사람을 왕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가리킨다.조조를 도와 삼국 중 가장 강한 나라를 만들어 훗날 통일 제국 진(秦)의 토대가 된 위나라의 초석을 닦는 데 큰 공을 세운 순욱(荀彧)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줄여서 ‘왕재(王才)’라고도 한다. 이는 남양의 명사로 이름 높던 하옹(何顒)이 어린 카지노 게임을 만난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옹이 카지노 게임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왕을 보필할 만한 재주를 가졌구나(王佐才也).”

― 《삼국지》 권10 〈위서〉 ‘카지노 게임전(荀彧傳)’ 중에서


하옹의 자는 백구(伯求)로 사람을 감별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예컨대, 조조를 기이하게 여겨 “장차 한나라가 망하면 천하를 편안히 할 자는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순욱은 비범한 인물로 천하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주군의 인물됨을 평가해서 그릇이 작으면 과감히 버리고 다른 길을 모색했다. 실제로 그는 고향이 병란에 휩싸일 것을 알고 가족과 함께 기주(冀州)를 장악한 원소에게 갔지만, 그가 큰일을 이룰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즉시 그를 떠나 조조에게 귀의했다. 그러자 조조는 “자방을 얻었다”라며 매우 기뻐했고, 그는 그런 조조를 20여 년 동안 보좌하며 위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지노 게임은 뛰어난 지략과 담력을 겸비한 전략가였다. 《삼국지》 3대 대전으로 꼽히는 관도대전(官渡大戰)을 승리로 이끌어 다른 군벌을 압도하며 역사를 바꾼 것도 바로 그였다.알다시피, 관도대전은 조조가 원소의 대군을 격파하면서 다른 군벌을 압도한 시작점이 된 전투다. 그러니 조조에게 있어 관도대전의 승리를 이끈 순욱의 존재는 책사 이상이었다. 그만큼 그를 믿고 의지했다.


서기 200년, 조조와 원소는 칼끝을 서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하는 운명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그해 10월, 관도에서 마주했다. 하지만 곧 지구전에 들어갔다.


먼저 고민에 빠진 이는 조조였다. 원소의 군대는 정예병만 10만여 명에 가까웠지만, 그의 군사는 고작 4만여 명뿐인 데다가 식량마저 바닥났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조조는 결국 후방에 있던 순욱에게 ‘이만, 돌아가겠노라’라며 편지를 보냈다.


군량은 점점 떨어지고, 군사들 역시 지쳐가고 있소. 더욱이 사방이 적에 둘러싸여 수개월째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처지니, 이만 허도로 철수하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떤가 하오?

― 《삼국지》 권1 〈위서〉 ‘카지노 게임전’ 중에서

하지만 카지노 게임은 단호하게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장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계략, 도량, 무력, 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공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원소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원소는 독단적이고, 부하를 믿지 않으니, 곧 그의 군대에 내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분발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삼국지》 권10 〈위서〉 ‘카지노 게임전’ 중에서


전쟁의 승패는 장수의 의지에 좌우되는 만큼 더욱 강한 의지를 다지라는 말이었다. 이에 다시 분발한 조조는 원소의 모사 허유(許攸)가 배신한 틈을 노려 원소의 군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격파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조조는 당대 최강자 원소를 꺾고 마침내 중원과 북방의 실질적인 맹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당연히 조조는 순욱의 공을 잊지 않았다.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만세정후(萬歳亭侯)에 봉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 안양공주를 그의 장남 순운(荀惲)과 결혼시키기까지 했다. 그만큼 조조에게 순욱은 사돈을 맺어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인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달랐다. 조조가 황제가 되어 천하를 직접 다스리려고 한 반면, 순욱은 한 황실의 부흥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순욱은 조조를 같은 목표를 지닌 동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서기 212년, 동소(董昭)가 순욱을 찾았다. 동소는 문서 위조의 달인으로 권모술수에 능했다. 조조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한 것도 그였다. 그는 순욱에게 조조를 구석(九錫, 천자가 공이 큰 신하나 황족에게 준 9가지 특전)을 누릴 수 있는 위 왕으로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순욱은 이에 반대한 것은 물론 조조가 막내 조식(曹植)을 후계자로 선정하려고 했을 때도 적장자 원칙을 내세우며 조비(曹丕)에게로 원만한 승계를 주장했다. 그런 순욱이 조조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어느 날, 조조는 순욱에게 음식을 내렸다. 그런데 찬합이 모두 비어 있었다. 순욱이 그 뜻을 모를 리 없었다. 한마디로 “그대는 내게 빈 그릇과도 같은 존재이니, 그대가 알아서 해결하라”라는 것이었다. 조조의 마음을 안 순욱은 결국 자살로써 삶을 마감했다. 그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 《삼국지》 권10 〈위서〉 ‘카지노 게임전’ 중에서


카지노 게임은 조조의 건국을 반대한 한나라의 마지막 충신이었다. 그런 그의 높은 지조와 충성심은 동시대 사람은 물론 후대 사람으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마의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책에서 전하는 오랜 일들을 나는 눈앞에서 직접 보고, 들었다.
백수십 년 동안 순령군(荀令君, 카지노 게임)보다 뛰어난 이는 절대 없었다.


수많은 역사가가 순욱을 조조의 최고 책사로 꼽는다. 곽가(郭嘉)나 사마의는 실리만 채웠을 뿐 명분을 살리지 못하였지만, 순욱은 명분과 실리 둘 다 취했을 뿐만 아니라 조조가 패업을 이루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카지노 게임은 비록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고 우러러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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