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테호른 Jan 10. 2022

무료 카지노 게임 사생활까지 지적했던 간 큰 신하



동(銅)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 《자치통감》 권196 중에서


위징이 죽자, 당 태종 이 세민이 몹시 슬퍼하며 무료 카지노 게임들에게 한 말이다. 알다시피, 당 태종은 ‘현무문의 정변’으로 형제들을 죽이고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되었지만, 집권 후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며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군 반열에 올랐다. 그 비결은 사람을 신중히 잘 골라서 쓴 데 있다. 특히 그는 한때 자신에게 칼을 겨누었던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핵심 참모로 기용함으로써 ‘독을 약으로 삼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별 볼 일 없는 젊은 시절을 보낸 위징이 본격적인 벼슬길에 오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적이었던 이세민이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위징은 17년 동안 당 태종을 보좌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직언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를 바로잡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 태종이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질했느냐?”

당시 진왕 이세민의 명망이 날로 높아지자, 위징이 태자 이건성(李建成)에게 “일찌감치 손을 써서 우환을 제거하라”라고 한 일을 따진 것이었다. 하지만 위징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 할 말을 다 했다.

“모시는 사람이 주군을 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태자께서 내 말을 들었다면 오늘 같은 화는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당 태종은 그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용서하고 간의대부로 삼았다.

― 《구당서(舊唐書)》 〈무료 카지노 게임열전〉 중에서


간의대부(諫議大夫)란 왕에게 직언하는 직책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감사원장’이었다. 만일 위징이 다른 신하들처럼 듣기 좋은 말만 했다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제 할 말을 다 했다. 당 태종 역시 위징의 그런 강직함을 거울삼아 자숙(自肅,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삼가서 조심함)했기에 황위를 찬탈한 패륜아에서 명군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위징은 “신하가 간언하면 자신이 위태롭지만, 간언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라고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정치는 물론 경제, 외교, 심지어 무료 카지노 게임 사생활까지 거침없이 지적했다.그렇게 해서 그가 당 태종에게 공식적으로 직언한 횟수만 무려 300여 회가 넘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그 정도니, 밝혀지지 않은 것까지 더하면 그 횟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심지어 황제 앞에서 직접 비난하기도 했다. 황제가 노해도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잘못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충신(忠臣)보다는 양신(良臣)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만인지상의 황제가 항상 듣기 싫은 소리만 일삼는 껄끄러운 신하를 옆에 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당 태종이 대단한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는 위징의 간언을 거울삼아 일을 진행했다. 그 결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역사적 과오를 줄이는 것은 물론 정관의 치 역시 이룰 수 있었다. 이에 당 태종은


그대가 항상 짐이 인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 지금의 짐이 있는 것이다.


라며 위징에게 고마워하곤 했다.


생각건대, 정관의 치는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끊임없이 직언하는 바른 신하와 그런 신하의 충심을 믿고 따른 현명한 무료 카지노 게임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643년 정월 17일, 그런 위징이 죽었다. 그러자 당 태종은 자기를 비추던 거울이 깨졌다며 매우 애통해했다.


나는 내가 가진 세 개의 거울 중 한 개를 잃어버렸다. 세 개의 거울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의관을 보는 거울, 둘째는 패망한 역사를 보며 배우는 정치 거울, 셋째는 그릇됨을 비추는 거울 바로 ‘무료 카지노 게임’이었다.

― 《정관정요》 중에서


하지만 곧 당 태종을 격노하게 한 일이 일어났다. 무료 카지노 게임이 상소문을 사관에게 미리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신에게 간언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오해한 당 태종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장남 숙옥(叔玉)에게 형산공주(衡山公主)를 시집보내겠다는 약속을 파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묘비마저 부숴버렸다. 단 한 번의 오해로 무료 카지노 게임을 ‘역사적 사형’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이 그토록 말렸던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하지만 그 결과는 쓰라린 패배였다. 그제야 무료 카지노 게임의 소중함이 떠오른 당 태종은 “무료 카지노 게임이 살아 있었다면 원정을 말렸을 텐데”라고 탄식하며, 그의 묘비를 다시 세워주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빈자리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당 태종에게 위징은 그저 그런 한 명의 무료 카지노 게임가 아니었다. 위징이 없었다면 그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런 위징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위징은 감히 간언했고, 능히 간언했고, 훌륭하게 간언했다.

― 《신당서(新唐書)》 〈무료 카지노 게임열전〉 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