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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적인 콤플렉스 Apr 14. 2025

카지노 게임

존재가 사라지는 걸까

oo댁, oo엄마, oo이 아빠.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고상한 척 분위기를 잡다 문뜩 모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확한 기억과 조작된 기억이 뒤섞여 망상으로 이어지며 괜스레 '카지노 게임'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내 모친뿐 아니라 우리 세대의 어머님들은 결혼과 동시에 이름을 잃었다. 태어난 곳의 지명을 붙여 새로운 이름 'oo'댁으로 불리는 것이 다반사였다.미스터 션샤인에서 지고지순한 애기씨 사랑을 보여주던 이정은 배우가 했던 역할명도 '함안댁'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 'oo이 엄마'로 또 한 번이 개명을 해야 했다. 모친은 오랜 시간 큰 딸 혹은 큰 아들의 이름을 붙여 'oo이 엄마'였지만, 장성한 자식들이 큰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다시 그 아래 자녀들의 이름을 붙여졌다. 그런 관습에 별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서 철이 들고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 당연한 분위기였으니 이름이 없어진다는 것에 고민을 하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첫 번째 고민은 결혼을 하면서였다. 결혼할 사람에게



나는 평생 카지노 게임 부르고 살고 싶다.

여보, 자기란 카지노 게임보다 이름으로 부르고 불리고 싶다.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불릴 생각이 없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렇게 정해진 우리 집 카지노 게임은 아직도 종익 씨, 주희야에서 변함이 없다. 두 녀석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고 반백 머리가 되어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서로 이름을 부르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지만,집사람은 90%쯤, 나는 60%쯤 대화 중에 높임말을 쓴다. 이 부분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꽤나 잘한 선택이라고 나름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관습적, 법적 장치는 두 사람만의 합의와 실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결혼은 양가 집안이 어른들의 의지와 양가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이름을 부르고 살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큰 녀석이 태어나자 모친께서 집사람에게 '시우 애비 밥 먹으라고 해라.'란 말을 갓방에서 들었다. 그때서야 '나도 카지노 게임이 없어지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모친께



'저는 시우 애비가 아니라 종익이에요.

엄마 아들 종익이.

저 녀석을 차라리 '종익이 아들'이라고 불러야지 왜 저를 시우 애비라고 부르세요.

저는 계속 엄마가 종익아~ 하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약간이 정적, 그리고 모친의 멍한 표정. 오랜 시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오셨던,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한 적절한 카지노 게임을 아들이 싫다고 하니 당황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로 모친은 계속 나를 '종익아!'하고 부르셨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내 부탁은 모친께서 정신이 흐려지시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않으셨다.



우연히 처가에서도 밥때였다. 집사람이 '종익 씨, 밥 먹어요.'라고 부르자 장인어른께서 정색을 하고 혼을 냈다. 그게 올바른 카지노 게임이냐, 언제까지 그리 부를 거냐며 결혼까지 한 딸을 혼을 내셨다. 내심 시댁에 가서도 저리 불렀다간 실례이자 누가 된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시니까. 장인어른께 다시금 나와 집사람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진월 집에도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드렸다. 역시, 약간의 정적과 어색한 분위기. 정해진 것을 따르고 지켜야 한다고 평생을 믿고 살아오신 분이시라 적잖이 당황하셨을 거다. 하지만, 고맙게도 장인어른께서도 이름과 박서방이란 카지노 게임을 섞어서 부르셨지만, 그 뒤로는 시우 애비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다.



내가 유별났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심으로 이름이 없어지는 게 싫었다. 멋진 이름은 아니어도 그 이름 석자로 살면서 친구가 되고 선후배가 되고 직장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결혼하고 자식이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이름이 사라지는 게 싫었다. 일로 인해 생긴 카지노 게임과 관계로 인해 생긴 카지노 게임이야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일상 속에서는 남은 삶도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고, 다른 사람도 이름을 부르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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