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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y 03. 2025

백수에게 걸려오는 무료 카지노 게임 특

261 걸음

더 이상 070으로 걸려오는 무료 카지노 게임는 받지 않는 편이다.

추가적으로 010으로 시작하더라도 스팸으로 분류되는 전화는 당연히 거절한다.

설령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어 의혹을 품은 채 받은 무료 카지노 게임일 경우, 초반 멘트에 따라선 바로 끊는 편이다.


"고객님⎯."


끊었다.


"고. 성. 프. 리. 맨님 되실까요?"


이번엔 좀 아리송하네. 조금만 더 들어볼까.


"바쁘실 텐데 용건만 빠르게 하나 전달드려도 괜찮을까요?"


또 끊었다.

예전엔 상대의 말을 끊는 게 괜히 미안해서, "저, 제가 지금 바빠서 그런데요. 죄송하지만 다음에 통화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죄송해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기 시작하자 나는 조금 막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바로 탁- 하고 끊는다는 게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하지만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다음부턴 익숙해져서 상대의 목소리톤과 첫마디만 듣고 바로바로 끊는 스킬을 습득하기에 이르렀다.


솔직히 회사를 관두고 나서부터는 사적인 대화로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극히 드문데, 오히려 스팸 전화라도 오는 게 다행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굳이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무료 카지노 게임 끊기의 달인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죄책감이 그리 길게 유지되진 않아서 다행이다)

왠지 무료 카지노 게임를 끊고 나면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굳이 상대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혹은 그녀가 하루 종일 무료 카지노 게임를 걸면서 받을 수모(?)를 생각하니 짠한 게 아닌가.


'만약 내가 상담원으로 일을 했다면 걸려오는 스팸 전화에도 공손히 응대할 수 있었으려나?'


일은 일이고 사는 사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내가 거는 건 괜찮아도 남이 내게 거는 건 어림도 없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죄책감을 느끼는 건 '가짜 죄책감'이 분명해.

사회적인 가면. 사람 좋아 보이고 선량해 보이는 느낌을 챙기고 싶은 자기만족.

그뿐이다.


사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어느 날인가 무료 카지노 게임를 받으면서 쩔쩔 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저, 저기... 제가요... 지금 많이 바쁜.. 아, 네에. 얼마나 더 걸릴까요? 아, 진짜 바쁘긴 한데..."

"뭐 해? 안 끊음?"

"아니. 저..."


대신 끊어줬다.


!!!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대신 끊어줬잖아. 계속 받을 생각이었어?"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갑자기 확 끊으면 기분이 나빠질 텐데. 아 모르겠다. 아이 몰라!"


나한테는 그토록 맺고 끊음이 확실하더니 일면식도 없는 상담원한텐 왜 이리 쩔쩔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을 닮아 있었다.


"오빠는 이런 무료 카지노 게임 걸려오면 그냥 끊어? 지금처럼?"

"응."

"아... 나도 끊고 싶긴 한데 왠지 바로 끊기가 좀 미안해서. 아니지. 생각해 보면 이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아니잖아 그치?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무료 카지노 게임했대?"

"그거야 개인정보가 다 팔렸으니까 그렇겠지 뭐. 나도 당신이랑 비슷했어. 그런데 한번 그냥 끊기 시작하다 보니까 이젠 잘 끊게 된 것뿐이야. 어차피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고, 나쁜 소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해."


나의 개인레슨 덕에 이제는 아내도 칼같이 스팸전화를 잘 끊을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나보다도 손속은 훨씬 빨라서 마치 무림고수 같은 풍모를 풍긴다.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제가 상담원 여러분을 미워하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단지 TPO(Time, Place, Occasion)가 맞지 않았달까요."


-백수면서 Time 만큼은 여유롭지 않아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백수의 시간은 일반인의 시간보다 몇 배는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싶다)


그런데 이건 정말이다. 뭘 그렇게 바쁘게 안 하는 거 같은데도 시간을 볼 때마다 [아침-점심-저녁-어느새 침대] 루틴이다. 그러니까 T가 충분하지 않다.


애석한 점은, 앞으로도 계속 TPO가 잘 맞지는 않을 거 같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용건을 다 듣기도 전에 무료 카지노 게임를 끊는 내 행동을 너무 밉게 보지 않으셨으면 한다.

솔직히 상담사분도 스팸 전화받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실 거잖아요.


사실 이게 다 아침부터 스팸 전화를 받아버리는 바람에 시작된 글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자랑하던 바로 끊기를 바로 써먹지도 못했다.

왠지 오랜만에 스팸 전화를 받으니까 바로 끊지도 못하고, 하필이면 "죄송하지만."을 붙여버렸다.


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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