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미 빛나고 있었다
by 유쾌한 은선씨 작가
일요일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기 무섭게 나의 잔소리가 뒤따른다.
"얘들아, 수업 시작한다. 어서 앉아. 교재는 다 챙겼어? 연필은? 아유, 몽당연필은 안된다니까. 찬아, 안경은?"
느긋해야 할 일요일 아침이 성미 급한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로 우렁차다.
"카지노 게임, 배고파요"
"그러게 누가 밤늦게까지 축구 보라고 했어? 너희가 그거 보느라 늦게 일어났잖아. 카지노 게임가 밥 먹으라고 몇 번을 깨웠어. 이제 시간 없어. 선생님 기다리시잖아. 어서 자리에 앉아"
악필인 첫째 아들의 글씨 교정을 위해 겨울 방학 동안 줌 수업을 끊었다. 곧 만나게 될 선생님께서 5학년인 아이의 글자를 보고 이것은 상형문자 인가, 갑골문자 인가로 고민을 하시게 둘 수는 없어 내린 카지노 게임의 한숨 어린 결정이었다.
'이번 기회에 깡그리 뜯어고쳐야지'
그렇게 일요일 오전의 글씨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주말 아침 난리통을 겪고 난 뒤 깨달았다. 이놈의 아들들은 지키고 있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세 똑바로 하고 앉아"
아무리 순둥이 아들들이라 해도 아들 둘이 함께 있을 때의 시너지는 공자님이 와도 안 놀고는 못 배길 에너지다. 그러니 오늘은 마음 단단히 먹고 아이들 책상 뒤 바닥에 딱 버티고 앉아 너희들은 수업을 듣거라 어미는 책을 읽을 테니 모드로 감시 아닌 감시를 한다. 아이들은 카지노 게임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수업을 듣는다.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꼼짝 않고 수업을 들은 아들들이 대견했다. 배가 고프다 했으니 무슨 맛있는 음식을 해줄까. 뒤통수도 예뻐 쓰다듬는다. 쓰다듬는 손 앞으로 아이의 안경이 삐뚤어져 있다.
"찬아, 안경 삐뚤어졌네"
아이의 안경을 고쳐주려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응? 찬아? 안경이... 왜 이래?"
안경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본다. 거침없이 통과되는 내 손가락이 아이의 눈을 찌른다.
"아얏"
"이거 뭐야! 이게 왜 이래! 왜 안경알이 없어?"
황당함에 다시 한번 손가락을 안경 사이로 왕복해 보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이놈의 자식이, 네가 무슨 연예인이야? 왜 알이 없어?"
빽하고 고함이 뒤따른다. 그런데 어라? 왜.. 얼굴이 웃기지? 가짜 안경을 낀 연예인들은 죄다 잘생겼던데... 쟤는 왜 웃기지?
맙소사. 왼쪽 알만 없다. 오른쪽은 있다. 없으려면 다 없던지. 이건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다시 봐도 맹구가 따로 없다. 웃기긴 웃긴데 웃긴 그 얼굴이 더 화가 난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 아이의 안경을 뺏듯이 벗겨 내가 써보는데.
"으윽"
어지러움에 당장 내던져버렸다. 한쪽 알만 있는 안경은 10초도 쓰고 있기가 어려웠다. 화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이성을 잠식한다. 이렇게 어지러운데 수업을 들었다고? 이 무뎌터진 바보 멍청이.
"너 안경이 왜 이렇게 됐어?"
"놀다가 빠졌어요"
고개를 푹 숙이며 들릴 듯 말 듯 쪼그라든 목소리로 대답한다.
"놀다가 빠졌으면 카지노 게임한테 이야기를 해야지. 아무리 카지노 게임한테 혼나는 게 무서워도 이 상태로 수업을 듣는 게 말이나 되니? 너 정신이 있어? 없어? 너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어지러운데 끼고 한 시간을 버텼니. 넌 고통을 모르는 아이야? 그런 거야? 내가 그런 아이를 낳았니? 참 어이가 없다."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은 안 되라고 머릿속에 적색 경고가 울리지만 입에서는 못된 말이 시차 없이 쏟아져 나온다.
"흑으흑. 죄송해요... 카지노 게임한테 혼날까 봐 그랬어요."
"카지노 게임는 정말 네가 이해가 안 된다 안돼. 어떻게 이게 안 불편할 수가 있어? 한 시간 동안 헛 짓 했네. 헛 짓 했어. 카지노 게임 지금 너무 화 나서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장 니 방에 들어가"
"죄송해요. 흐으윽"
아이의 방문이 아니라 내 방문이 쾅 하고 닫힌다. 아이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짓을 내가 하고 있다. 답답함에 한 숨을 어디까지 쉬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별일 아니야. 별일 아니야.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몇 번을 되뇌어 보아도 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무리 카지노 게임가 무서워도 어떻게 저걸 참을 수가 있냐고. 저게 고통스럽지가 않아? 불편하지 않아? 무뎌도 무뎌도 어떻게 저렇게 무딜 수가 있을까.'
옷을 앞 뒤로 거꾸로 입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아이. 난방이 빵빵하게 틀어진 실내에서도 롱패딩을 입는 아이. 팬티 두 장을 입고도 화장실 가서 당황하지 않는 이 아이는. 오감 상실 고구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답함은 기어이 며칠 전 아이가 받은 통지표를 천장에 투사시킨다.
'온순하고 차분한 성품으로.....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강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강하며... 용서하는 마음이 강하며...
이 무뎌터진 자식은 자기를 괴롭힌 친구도 용서해 주었다. 아이에 대한 답답함과 나에 대한 짜증이 엉켜 만든 물방울이 침대에 걸터앉은 발등 위로 툭 떨어진다. 콧물을 훌쩍 마시며 다른 발로 쓱 닦아내 버린다. 안경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늘 그랬다. 뭐든 다 괜찮다는 이 아이는, 멀미 나는 안경까지 괜찮다는 이 아이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는 얼마나 더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 할까. 하나 둘 씩 쌓아두었던 돌덩이가 오늘은 기어이 내려앉고야 말았다.
똑똑.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화 풀렸어요?"
"카지노 게임?"
아이가 어른이다. 오늘도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다. 내가 무엇이라고. 그토록 화를 내고 돌아선 카지노 게임에게 여전히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먼저 불러준다. 카지노 게임가 잘못했다. 카지노 게임가 모자랐다. 그깟 안경이 뭐라고, 그놈의 수업이 뭐길래, 있는 그대로의 반짝이는 너를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까. 반짝이고 있는 너를 별이라고 이름 붙여주면 되는 것을 카지노 게임가 너를 믿지 못해 고구마다, 거북이다 엄한 이름을 갖다 붙였나.
"응. 잠시만. 카지노 게임 나갈게"
빨개진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고 언제 그 난리통을 치렀냐는 듯 문을 열고 나간다.
"찬아, 카지노 게임가 미안해."
모든 카지노 게임들은 아이가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하게만 커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건강하게 커 갈수록 이왕이면 키도 좀 훤칠 하니 운동도 잘하고, 더 이왕이면 가만 내버려 두었더니 SKY 가더라는 엄친아, 엄친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카지노 게임들이 아이를 일요일 아침부터 수업에 밀어 넣지는 않을 텐데. 나는 왜 잘 들리지도 않을 뱃속 꼬물이에게 영어동화책을 읽어 댔으며 문법책, 개념책까지 뒤져가며 아이를 카지노 게임표라는 핑계로 내 손안에 두려 했을까. 내 집착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시작을 알아야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 공부에 집착하는 이유.
결핍이 많았던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지 않았을까.
가난했던 유년 시절, 떡볶이 가게에 삼삼오오 모여 입 안 그득 떡볶이를 오물거리며 학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모가 주는 사랑이 물질이 다가 아님을 이른 새벽 나가 늦은 밤 지친 몸으로 들어오는 카지노 게임를 통해 느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재잘거리며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옆 눈으로 흘깃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기억은 카지노 게임가 된 지금, 다시 떠오른다.
내가 목말랐기에 너희는 목마르지 말라고 부어주고 또 부어주고 싶었다. 물질이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부러움을 떨칠 수 없었듯이, 집착도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카지노 게임 이제 그만"
아이의 눈빛이 이야기한다.
카지노 게임가 부어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잘 채워지고 있다고. 나만의 이유로 빛 나고 있다고. 그러니 이제 카지노 게임가 믿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튼 카지노 게임가 되어 무엇이 되어간다.
모난 육각형 별도, 뭉툭한 사각형 별도, 저마다의 별이라는 것을 너를 통해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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