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틀렸고 내가 옳았다는 생각도 희미해졌다.
골드는 사고당시의 찌그러진 상태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정비공업사의 가장 구석진 곳에 주차돼있었다. 부딪힌 부위는 도색이 벗겨져 검은 칠이 드러나 있었다. 운전석 문을 열고 골드에 탑승했다. 혹여 골드가 내게 어떤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한참동안 기다렸다. 골드는 힘에 겨운지 아무 말이 없었다.
시동을 걸었다. 평상시처럼 시동은 금방 걸렸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엑셀을 밟았다. 쇳소리가 심하게 났다. 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후진 기어를 넣고 다시 엑셀을 밟았다. 끽끽 소리가 나면서도 골드는 움직였다. 다시 전진 기어를 넣었다. 덜커덩거리기는 했지만 골드를 운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로로 나서기 전 물티슈로 골드의 구석구석을 닦았다. 먼지가 시커멓게 묻어났다.
어디로 가면 골드를 골드답게 재생할 수 있을까. 그런 곳이 있기는 할까. 그래도 지금은 앞으로 가야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도로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골드의 휘어진 바퀴에서는 연신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쇳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사거리에 접어들자 신호등이 녹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며 깜박거렸다. 나는 엑셀을 밟으려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골드가 아무래도 사거리를 안전하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골드가 정지선을 밟고 멈춰선 순간 덜커덕 하며 앞 범퍼 한쪽이 떨어져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때 가영대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감사팀에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올린 직후였다.
“자기가 황금색 세단을 좋아해서 자기도 나와 같은 부류인 줄 알았어. 모든 게 다 순간인데, 그냥 즐겁게 살고 싶었어. 십자가 펜던트 있잖아, 그거 가짜 아니야. 진짜 금이거든. 그걸 사면서 나도 어쩌면 다른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어. 자기가 너무 완강하게 거부해서 그런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만 나는 자기가 더 걱정돼. 아마 오래도록 외롭거나 힘들지 않을까하고……”
관리하기 힘든 골드를 왜 그동안 그렇게 애지중지 아꼈을까. 새 차를 사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을 것인데도, 나는 골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어쩌면 가영대리의 예언을 빗나가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금은방에서 세척한 십자가 펜던트를 다시 룸미러에 걸었다. 차 안이 훤해졌다. 나는 지금 외롭거나 힘든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어쨌든 골드가 있어서 나는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틀렸고 내가 옳았다는 생각도 희미해졌다. 2002년이 주었던 안정감과 들뜸. 그리고 선택, 그 시간이 내게 있었음으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나를 다독였다.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엑셀을 밟았다.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카지노 게임는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