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목,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자, 이 책 제목만 보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라고, 묻고 싶다.
해외문학을 자주 읽는 분들에게는 머릿속에 단단히 들어앉은 몇 분의 번역가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나만 해도 믿고 찾는 이름들이 있고, 이 책을 쓰신 정영목 번역가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안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한 사람의 번역가가 이력이 쌓이다 보면 그와 유달리 결이 잘 맞는 것 같은 작가를 알 것 같은(같다고 쓰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에 불과하기 때문...) 느낌적 느낌이 덮쳐올 때가 있다. 유난히 좋은 시너지를 일으키는 파트너랄까. 물론 결과물이 작업과정과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씁쓸한 현실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으나 결과물로 볼 때 그렇다는 의미.
나는 이분의 번역서 중에서도 알랭 드 보통과 윌리엄 트레버의 글을 읽었을 때 이분과 맞는스타일을 알 것 같다... 하고 근거 없이 막연한 생각을 했다. 느낌이란 게 원래 막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건 그 글의 정동에 잠겨 이게 뭘까 하고 헤매는 것에선 빠져나와서 이걸 무어라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정돈됐으나 이름표를 붙이지 못한' 감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사실 알랭 드 보통에게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든 또 한 가지 요소가 있었다. 앞의 이야기와도 연결이 되지만, 이 사람이 의외로 글을 쉽게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작가라면 흔히 말하는 대로 '흡인력' 있는 글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읽는 사람을 -물론 번역하는 사람도- 편하게 해주는 글을 쓰지는 않는다. (...) 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이런 점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쪽이다. 좋은 의미에서 작가다운 고집을 부리는 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11쪽
"내 글은 모두 일종의 자서전이죠. 심지어 건축이나 지위의 불안에 대한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늘 독자들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련을 맺는 것,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120쪽
사실 『비 온 뒤』를 처음 읽으면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작가의 가혹함이었다. 아마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나가면서도 그 인물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166쪽
트레버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당장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적당한 화해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상황이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공존의 기초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어느새 트레버에게 설득당하여, 그가 가혹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라 정확하다고 인정했다. -168쪽
대단한 드라마도, 반전도 없으나 깊고 섬세한 통찰이 살아 있는 글. 내가 짐작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주 틀리지는 않겠다는 짐작은 <내가 통과한 작가들을 거쳐 <내가 읽은 세상에 가 닿는 순간 기분 좋은 확신이 된다. 이런 것 또한 책 읽기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이미 읽은 작가들도 있지만, 처음 듣는 이름과 들어보지 못했던 작품들도 발견할 수 있어서 그 또한 깜짝 선물이었다.
픽션이든, 에세이든 책을 여는 순간 이것은 이런 글일 것이다, 이 화자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 또는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내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약간의 스릴감을 갖고 끝까지 가 보는 일.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기분 좋은 만족감이 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혹은 상쾌하게 당했다, 하고 승복하는 기분이 든대도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번역가들의 에세이도 꽤 읽은 편인데, 아마 이런 이야기를 쓰셨겠거니 생각하고 다 읽었다가 오, 예상과는 좀 다른걸? 하는 경우는 퍽 많았는데, 이 책만큼은 아마도 이건 이런 책일 것이리라 짐작한 대로 흘러간 에세이였다는 사실을 꼭 언급해 두어야겠다.그러니까 굉장히 정직하고 진솔한 글을 만나보게 될 거라는 것을. 제목 그대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 독자에게 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번역가는 어떤 생각을 했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그의 작품에 대해 무엇을 끝까지 전달하려 애쓰는지가 궁금한 이에게 기꺼이 추천하고 싶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