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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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r 23. 2025

아픈 섬들과 함께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 2016년 OO고 시절 담임했던 아이들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 이 아이들도 나이 26세들인데 몇몇은 연락이 되는 아이들도 있다. 대부분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어디서든 건강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기를 빌어 본다.


“아픈 섬들과 함께 - OO고 1학년 O반 담임 일기”


통영으로 전학을 간다던 그 아이는 아직 전학을 가지 못했다. 어쩌면 가지 못하는 상황인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그 아이의 어머니는 곧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월요일 결석을 하더니 오늘은 술 냄새를 풍기며 1교시를 넘겨 학교에 왔다. 졸린 모습으로 학교에 온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1 교시를 보내더니 2 교시 음악 선생님의 배려로 뜨거운 커피까지 얻어 마시는 듯 보였다.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문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어제 어머니가 문자를 보냈는데 머리가 아팠다고 했지만 사실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것을 아이 입으로 들으니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왜 자식이 이렇게 되도록 두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이런 꼴을 보여주지 않고 잘 자라준 우리 아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이 아이가 이렇게 된 과정에서 이 아이의 부모의 역할이 못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아무 문제 없이 보이는 우리 반의 다른 몇몇 아이들도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단적으로 교사의 말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입생이기 때문에 사진을 가지고 오라는 이야기가 벌써 21일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3명이 사진을 내지 않고 있다. 왜 가지고 오지 않았냐고 다그치면 능청스럽게 “내일”만을 그저 외친다. 이들에게 교사의 말은 그저 아득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도 그저 한 없이 멍청하게 있거나 띤 짓을 한다. 머리를 만지거나 손톱을 물어뜯고, 교과서에 낙서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엎드려 잔다. 이런저런 말을 시켜 보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고 이야기해도 그저 피식피식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겨우 “모릅니다” 정도의 이야기가 전부다. 한계를 느끼지만 동시에 도전의 지도 생긴다. 이 아이들을 말하게 하고 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면 나는 교사로서 제법 큰 선물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들은 말이 너무 많다.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데 특히 여교사들 시간에 더 심하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지적을 하면 더 신이 나서 떠들어대니 여선생님들은 대책이 없다. 교무실로 데리고 와 주의를 주면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그 상황이 반복된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 내내 이런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해 왔는지도 모른다. 일단 주의를 주고 혼을 내 보지만 사실은 뚜렷한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학교의 그 어떤 것도 재미가 없다. 아니 재미를 느끼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난 9년간 철저하게 학교와 교사에게 배제되어 온 그들이 아닌가? 단지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관심과 그들의 흥미는 그저 불순해지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또 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의 집은 화목과 거리가 멀다. 우리 반 16명 중 부모와 같이 사는 아이들은 단 5명뿐이다. 나머지는 이혼이거나 별거 중인데 그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다. 아이들이 돌아가 쉬는 곳이 더 전쟁 같은 상황이라면 학교에서 교사가 하는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일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 또 그런 가정을 이룰 가능성이 높고 또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또 지금의 우리 반 아이들처럼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사회적 비용의 문제에 앞서 한 명의 인간이 누려야 할 인간적 행복이 없는 이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예전에도 이런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을 담임한 적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들의 마음은 지금 이 아이들만큼 이렇게 푸석하지 않았다. 정말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일 뿐, 다른 것들은 오히려 공부가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나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은 마음조차 열등하다. 아니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바꿀 동기나 의지가 없어 보인다. 교사의 노력이 가 닿을 수 있는 곳에 그들의 마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20일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길을 잃고 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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