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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Feb 12. 2025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청카지노 게임


삼촌을 생각하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삼촌이 경기도 지역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을 때 의정부어느 극장에서 보여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영화가 떠오른다. 너무 오래전이라 어느 극장이었는지, 영화가 실사영화였는지 애니메이션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류의 영화였던 것은 아스라이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다. 삼촌이 결혼하지 않아서였을까? 큰형의 어린 조카를 데리고 영화 구경을 시켜주었다. 생각해 보면 삼촌과 다닌 곳이 많다. 삼촌은 어린 조카를 남산의 어린이 과학전시관에도 데리고 가고, 우편, 교통 사정이 좋지 않던 당시에 할머니 심부름이었는지 어쩐 일로 삼촌이 선생님으로 일하던 연천, 곤지암의 학교까지 가보았다. 연천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피어있던 키 작은 꽃들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팬지꽃 종류일듯하고, 칸나도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갔다. 곤지암의 학교는 기억나지 않고 삼촌의 하숙집 마당에 탐스럽게 열려있던 연두색 청포도 덩굴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그 포도덩굴은 내가 여태까지 본 포도덩굴 중 가장 탐스럽고 달던 청포도 덩굴이다. 나중에 교과서에서 이육사의 청포도를 배울 때도 청포도가 민족 독립을 은유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그 여름날 반짝이던 연둣빛 청포도 알갱이가 한 알 한 알 생각났다.


카지노 게임 돌아가시고 집, 유품을 정리하면서 내게는 없는 삼촌의 대학졸업식 사진을 발견했다. 전쟁 때문이었는지 군대 다녀오고 서른도 넘어 대학졸업식을 한 1933년생 삼촌. 온 식구가 다 출동했다. 두루마기 떨쳐 입고 보자기까지 든 할머니, 안경 쓴 작은아버지, 사진 찍는 게 어색한지 인상 쓰고 서 있는 아버지, 학사모를 쓰고 2-3세의 나를 무릎에 안은 카지노 게임 오래된 흑백 사진 저편에 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은 카지노 게임 나를 안고 서서 찍은, 요즘 말로 투 샷 사진, 배경으로는 졸업식답게 학교 건물 앞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삼촌 대학졸업식에서 나를 안고 있지 않았던 아버지는 내 대학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대학졸업식 전에 병환으로 돌아가셨다.방송국 시험, 기자 시험에 떨어지고 교사 임용시험에도 떨어진 후 취업준비생이던 내게 남은 건 아버지와 세 자매가 함께 살던 오백만 원짜리 전셋집과 두 동생이었다. 카지노 게임 얼마씩 보태주던 생활비 아니었으면 그 몇 개월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해 여름 취직이 되어 두 동생과 나를 부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촌은 나를 딸처럼 여기고 우리는 삼촌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살았다. 할머니를 돌보고, 나와 동생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은 삼촌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우리는 할머니를 돌봤으며 그렇게 여느 가족처럼 돌보며 사랑하고 미워하며 지냈다. 나는 내 가족을 돌보느라, 일하고 내 삶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삼촌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등학교 교사로 퇴직 후 혼자 살았다. 이웃 동네 차로 15분 거리에 살면서 가끔 가족여행도 함께 하고 아이들이 좀 큰 후에는 매주 한 번 온 식구가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삼촌과 함께 다닌 수많은 음식점, 여행지, 카지노 게임 돌아가신 후 식당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이 식당의 간장게장을 삼촌은 아주 좋아하셨는데, 여기 설렁탕을 카지노 게임 진짜 좋아하셨는데. 여기 순댓국은. 작년에 로마 갔을 때도 삼촌과 아이들과 함께 갔던 십수 년 전의 로마 여행이 떠올랐다. 봄에는 교토 여행계획이 있는데 삼촌과 했던 교토 여행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아니고 나를 안고 있던 삼촌, 글쎄 그 이후의 우리 삶을 예고한 사진이었을까. 내가 어릴 때는 삼촌이 나를 안아주고, 삼촌이 나이 들었을 때 내가 그를 돌본 이야기를 이제 하려 한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던 책 이야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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