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식사 한 끼: 새로운 환경에 도전엔 취기가 필요하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다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말 힘든 일이다. 근데 그런 환경에 내던져지는 게 30대인 나에게는 꽤 자주 일어났다. 새로운 나라 그리고 도시에 3개월 이상 터를 잡고 살아가야 하는 생활을 무려 8번이나 했다. 나는 내 인생에 확실히 역마살이 끼었다고 확신한다. 결혼을 하고 난 후 또 한 번에 역마살이 제대로 발동이 되었다. 결혼 1년 차 신혼인 우리에게 해외생활을 해야 하는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한창 신혼이고 함께 알콩달콩 한국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일상에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던 우리는 내가 먼저 해외로 나가 생활을 해야 해서 4개월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도 아내는 나를 응원해 주고 함께 가자고 결정을 내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정을 할 시간이 많지도 않았고 그 짧은 순간에도 냉정하게 결정을 내려줘서 고마운 마음이었다. 결정을 내릴 때즈음 해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목적지는 바로 스페인이었다.스페인은 내가 대학생 때 용돈을 모아 다녀왔던 곳인데 어쩌다 보니 딱 10년 만에 다시 찾게 된 여행지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스페인은 정말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했고 골목골목 그리고 유명 관광지는 10년 전 그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굉장히 여러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다. 하지만 음료는 거의 시원한 맥주 혹은 상그리아였다. 시원한 상그리아가 스페인 음식과도 잘 어울렸고, 달콤한 상그리아를 한 잔 하면 더위도 싹 가셨다. 시원한 상그리아 한 잔에는 여러 효과가 있었다. 음식을 더 오래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줬고 하루 종일 더위를 견디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간 그리고 하루를 마치면서 시원하게 한 잔을 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하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여행 막바지에는 어디의 상그리아가 더 맛있었는지 비교군이 생길 지경이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이런 소소한 대화거리도 너무 재밌었고 이게 다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니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억들이다.
카지노 쿠폰를 식당마다 시켜서 마시는 건 소소한 기억일지라도 이 카지노 쿠폰를 마시면서 했던 대화는 꽤나 중대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앞으로의 우리의 거처가 해외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정에 가정이 더해지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는 미래에 대한 의심과 걱정들은 상그리아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걱정을 지울만한 용기가 생겼고 긍정의 힘이 팍팍 생겼던 것 같다. 나도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들이 정말 말 그대로 걱정일 뿐이라 생각되었고, 여행 당시 주변에 한국인도 많이 없었고 한국에서 연락도 많이 오지 않아서 그런지 외딴섬에 우리 부부 둘만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고 둘이서 이렇게 해외생활을 신혼 때 해보는 것도 너무 좋은 경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내도 해외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 (단지 내 생각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해외생활을 하기로 결심을 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는 먼저 혼자 멕시코에 나와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길지는 모르지만 멕시코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힘들 때도 있고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땐 아내와 함께 상큼하고 시원한 상그리아 한 잔을 할 때가 됐다 생각하고 상그리아 한 잔 하자고 권해봐야겠다.
그리고 그때도 취기를 빌려 이번엔 내가 말해야겠다. '그래도 믿고 와줘서 고맙다고, 같이 또 재밌게 그리고 맛있게 우리 좋아하는 요리 해 먹으며 재밌게 살아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