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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숙 Apr 15. 2025

큰딸 이야기

여염집 K장녀 도벽에 물들다

친정카지노 게임 이름이 '김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어린 마음에 참 부끄러웠다.

이모들 이름은 안 그런데 왜 카지노 게임 이름만 그렇게 희한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의 이름이 작명된 사연을 듣고 난 이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고 가슴 졸이는 그 긴긴 시간들을 보냈을,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카지노 게임는 어릴 적부터 비공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김영미'라고 주위에 이야기해서 주변에 많은 이들이 카지노 게임의 이름을 '김영미'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 결혼식장에도 가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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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카지노 게임 이름을 써야 하는 모든 곳에 '김영미'라고 적어 넣었다(내가판사가 된 이후에 내손으로 개명신청서를 작성하고 법원에 신청하여 개명시켜 드렸다)


카지노 게임의 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그저 묵묵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둘만 낳아 잘 키우자" 표어가 온 사방천지 나붙어 다니던 그 시절에 아들 욕심 낸 카지노 게임는 셋째를 낳았으나 딸이었다.

셋째는 딸이었지만 막내라 그런지 카지노 게임는 막내를 이뻐했다.

아들은 아들이어서, 막내는 막내여서 사랑받았다.

반면에, 나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종종 카지노 게임한테 혼나고 빗자루로 두들겨 맞았다.

가난하고 못 배워 모든 것이 힘겨웠던 젊은 시절의 카지노 게임 김돌이의 감정쓰레기통 역할도 담당하였지 싶다.


카지노 게임는 억척스러웠다. 한번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절대 헛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월세 전세를 전전하며 억척같이 아끼고 아껴 결혼 10년 만인 1985년에 2,500만 원짜리 단독주택을 샀다.

4칸인데 2칸씩 좌우로 수도와 연탄아궁이가 있어 우측 편 방 2개를 사글세를 놓았다. 그래도 주인집이라고 거실은 우리 차지였다.

푸세식 화장실이 바깥에 있어서 두 가구가 함께 써야 했다.

지하실이 있었고 카지노 게임는 그곳에다가 미싱을 하나 들여놓고 밤낮으로 미싱을 밟았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미싱 앞으로 초록색의 이태리타월이 미역 줄기마냥 쏟아져내렸다.

학교를 다녀오면 지하실로 내려가 아무리 없애려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곰팡이처럼 여기저기 퍼져있는 이태리타월을 쪽가위로 잘라냈다.

카지노 게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그리 했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카지노 게임의 일은 늦게 끝날터이고 피곤에 절은 카지노 게임의 짜증은 또 내가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집을 산 이후 카지노 게임는 더 돈돈거리며 그악스러워졌다.

나의 도시락 반찬은 김치와 콩자반이 주를 이루었다. 김을싸주었는데 랩이나 호일을 살 돈이 아까웠던 카지노 게임는 아빠가 회사에서 우리에게 공부할 때 이면지로 쓰라고 가져온, 뭔가가 잔뜩 프린트된 종이에다 싸주셨다(아빠는 그 당시에 전화국을 다니셨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상한 부호가 써진 줄줄이 연결된 종이를 한 박스씩 집으로 가지고 오곤 하셨다). 친구들은 아무도 내 반찬을 먹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어느 친구가 내 김반찬을 몰래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사실을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가난을 강요하는 카지노 게임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맘때였을 것 같다. 나에게 도벽이 생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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