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데 정말 힘든 곳
신림동 고시촌에는 '월수금 법칙'이란 것이 있었다.
아주 대단한 법규범적 규칙과는 전~혀 상관없는, 월요일에는 소고기, 수요일에는 돼지고기, 금요일에는 닭고기가 나오는신림동 고시촌의식단 규칙을 말한다.
아무래도 장시간 공부하는 수험생들이다 보니 양질의 단백질 공급을위한 특단의 방식이었으리라.
신림동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월수금 중 어느 요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여하튼 어떤 고기를 먹고 된통 체해버렸다.
그때까지 한 번도 집 떠나 멀리서 장기간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낯선 시공간이 주는 생경함에 초왕성했던 소화력마저도 버텨내질 못했던 듯하다.
얼마나 제대로 체했던지 명치가 아플지경이었다. 어떤 약도 듣질 않았다.
제대로 먹질 못해 배는 고픈데, 명치가 꽉 막혀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특이한 신체상태가 되었다.
신림동 방에 누웠는데 아프고 외롭고 배고프고 서러워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지금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섬 같았다.
그 누구의 위로와 조력을 받을 수 없는 곳.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깨우치고 처절히 자신과 싸워야 하는 곳.
한 달여간을 고생하다체기가 가셨다.
한 달간 제대로 먹질 못했더니 위가 줄어들었는지 이후부터 본의 아니게 소식을 하게 되었다.
신림동을 떠나올 때는 고등학생이후부터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했던 인생 최저점의 몸무게를 찍었다.
고향친구들이 공부는 안 하고 다이어트하고 왔냐고 하길래 살 빼고 싶다면 신림동 가서 고시공부를 하라고 흰소리를 했다.
그렇게 애증의 신림동을 떠나 꿈에도 그리던 카지노 쿠폰연수원에 입성했다.
그런데 세상에...
사법카지노 쿠폰 공부는 사시공부와 또 차원이 달랐다.
카지노 쿠폰시험은시험 자체가 1년에 한 번뿐이고 1차 시험을 합격해야 2번의 2차 시험 기회가 있으니, 장기간 플랜을 두고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는데 연수원 공부는폭풍우가 휩쓸고 가듯이 휘몰아치는 공부를 해야 했다.
이전 글에서도 썼다시피 나는 긴 호흡으로 꾸준히 성실히 공부해서 실력을 쌓는 스타일인데, 카지노 쿠폰연수원에서는 두 달 동안 엄청난 양의 공부를 시키고 막바로 시험을 쳤다.
그렇다고 고시생 때처럼 주야장천 공부만 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5급 공무원 신분으로 엄연히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인이었다.
회식도 있었고 연애도 해야 하고, 각종 행사가 끊이질 않았다.
잘하고 싶었는데 잘하기가 힘들었다.
너무나 어려웠다.
첫 시험을 치렀는데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가거의 없어서 개발새발로 적어냈다.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조회식이 있었는데 교수님 얼굴 뵙기가 넘사스러워 호수공원으로 냅다 달려갔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너무나 어려운 내용과 숨 막히도록 방대한 분량을 생각하면 그렇게 좌절할 일인가 싶긴 하지만, 내겐 그 의미가 달랐다.
사실 감사하게도 나는 카지노 쿠폰시험 성적이 꽤 좋았다.
999명 동기들 중 43등의 성적으로 카지노 쿠폰에 들어갔다.
나 스스로도 정말 놀랐었다. 좀 잘 본 것 같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 정도까지 일 줄은 상상을 못 했었다.
신림동에서 그 수많은 무림의 고수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는데 내가 이렇게나 잘했다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 성적이었다.
지방대의 비법대 출신 별 볼 일 없는 여자라는, 스스로를 옥죄었던 핸디캡에서 해방감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랬는데 연수원 첫 시험으로 다시 알량하기 그지없는 내 본질이 까발려졌다는 자괴감이 나를 압도했다.
호수는 잔잔했지만 내 맘엔 가눌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회식에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자, 교수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부끄러워서 못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단호히 한마디 하셨다.
까불지 말고 얼른 튀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