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땅 미끌거리는 땅
처음 법서를 펼쳐보았을 때 무척이나 놀랐다.
국문과 출신이라 나름 한자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한자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기본서 옆에 옥편을 펼쳐 들고 한자를 한 자한자 찾아가며 읽어나가야 했다.
참칭상속인! 참칭?
소훼한 자! 소훼??
이게 뭔 소리여???
이번에는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그 뜻을 찾아 뒤적였다.
어이쿠... 이렇게 해서 언제 이 두꺼운 법서를 1 회독하고 언제 이 많은 수험서를 다 읽을까...
1999년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2000년도에 군법무관 1차 시험을 합격했고, 2001년에 사법시험 1차를 합격했다.
사법시험 1차를 합격하자마자 짐을 싸들고 카지노 쿠폰 고시촌으로 스며들었다.
카지노 쿠폰 고시촌이라고 하면 창문 하나 없이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을 상상하기 쉬운데 그 당시 카지노 쿠폰에는 미니원룸 신축이 한창 붐이었다.
자그마한 창문도 있고 개별 욕실이 딸려있는 그런 깨끗한 방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원룸에서 취사시설만 빼고 조금 면적을 줄인 형태였다.
미니원룸은 카지노 쿠폰에서 최초로 나온 주거형태가 아니었을까 싶다(아님 말고^^;;).
그 당시에 월세가 40만 원이었으니 꽤 비싼 편이었다. 많이 부담되는 금액이기는 했지만 10개월만 하고 카지노 쿠폰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고 계약했다.
그 당시에도 카지노 쿠폰 위쪽으로 올라가면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고시원도 수두룩했다.평지와 학원가와는 멀어지는 곳이었다.
대구에서는 좀처럼 눈을 보기 어려웠는데 서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내 마음속의 눈은 순백의 가볍고 깨끗함의 이미지였는데 카지노 쿠폰에서 맞이하는 눈은 회색빛에 가까운 무거운 것이었다.
고시생들의 발에 밟혀 카지노 쿠폰 거리에 시커멓고 단단하게 얼어붙은 눈은 내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얼어붙은 땅, 그 미끌거림이 참 싫었다.
카지노 쿠폰 고시촌은 그런 곳이었다.
조금만 정신을 팔면 미끄러질 것만 같은 곳...
지금은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스터디그룹에도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할수록 멤버들의 해박한 법학지식에 놀랐고, 내 지식의 짦음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차 시험이 다가오자 두 명의 남정네가 전혀 전조증상도 없다가 갑자기 순차적으로 돌직구 고백을 했다.
엥? 이건 또 무슨 시츄이에이션??
내게 경국지색의 미모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싶어 어리둥절해하다가, 혹시 내 미모가 그래도 카지노 쿠폰에선 먹어주는 건가라며 혼자 입꼬리를 씰룩거리기도 하였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시험이 다가오자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아무 여자한테나 막 고백을 해댔던 것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궁디를 마 주차뿔수도 없고...
제발 어머니 생각하면서 정신 챙기라고 욕을 한 바가지씩 해 주곤 돌려보냈다.
그해 나는 사시 2차를 합격하고 바람대로 카지노 쿠폰을 떠났고 그들은 낙방하였다.
카지노 쿠폰은 그런 곳이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살짝 맛이 가게 만드는 그런 곳.
휘청거리게 하는 곳...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르던 그 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전 국민이 가장 대동단결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한일 월드컵이 개최되던 그해,2002년.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
두 손이 자동으로 반응하며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거리로 거리로 모여들 때 카지노 쿠폰 고시촌도 그 여파를 비켜갈 수 없었다.
부부젤라가 카지노 쿠폰 일대를 시끄럽게 울리며 돌아다녔고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조차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2차 시험을 치기 2주 전에 한미전이 치러졌는데 그 넓은 독서실에 나와 남자 수험생 한 명만이 앉아 있었다.
참 희한했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시험 1주 전에 16강전, 8강전이 치러졌으며, 독일과의 준결승전은 무려 2차 시험 중간에 치러졌다.
축구를 좋아하는 수험생들에게는정말 최악의 해였을 것이다.
흥분으로 들썩이는 그 시간들을 지나며,
모두가 붉은데 나 혼자 회색 상자에 갇힌 느낌이었다.
나도 붉어지고 싶었다.
미끌거리는 땅을 벗어나 마른땅에 단단히 다리를 짚고 서서 목청껏 외쳐대는 붉은 젊음이고 싶었다.
간절한 소망대로 다행히 10개월 만에 그곳을 벗어났다.
함께 회색빛 상자에 갇혀 휘청거리던 삶을 살던 카지노 쿠폰 동지들은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들로 살고 있을까...
붉음으로 물들었다 잘 정의된 성숙한 보랏빛으로 내려앉아 견고한 삶을어디선가살아가고들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