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편 : 이경림 시인의 '자정'
@. 오늘은 이경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자정
이경림
가죽혁대처럼 질기고 긴 길의 끝카지노 쿠폰 나는 보았네 *가은(加恩)이라는 유리문을. 나는 보았네 그 속카지노 쿠폰 수 세기가 내 몸을 돌아 나오는 것을. 지나간 들판 지나간 산 지나간 마을회관 지나간 밤의 광장이 보여주던 무성영화들.나는 보았네 똥장군을 지고 카지노 쿠폰 장수아버지,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돌아가던 아랫마을 김 영감,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있었네, 할머니는 방안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네, 이마에 칸델라 불을 단 광부들이 막장으로 카지노 쿠폰 비탈에 한 줄로 놓여 있었네 한 떼의 개미들처럼 나는 보았네 검고 둥그렇게 서 있는 옥녀봉, 비탈에 자지러지게 피어있는 도라지꽃, 구호물자를 받으려 줄을 선 사람들, 악동 형태는 전봇대를 타고 고압선 쪽으로 오르고 있었네. 그 아래, 누렁개 한 마리가 뉘엿뉘엿 먹이를 찾아 다녔네. 아버지는 눈만 반짝이는 광부들을 지휘하고 있었네. 황금빛 해가 옥녀봉 꼭대기에 우스꽝스레 걸려 있었네. 나는 보았네 멋쟁이 신 선생이 *도래실로 카지노 쿠폰 모롱이에서 어떤 키 큰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봉암사 상좌승은 시주바랑을 메고 북쪽으로 카지노 쿠폰 길 위 놓여 있었네. 나직한 돌담 너머 집들이 비틀 서 있었네
나는 보았네 어린 고염나무가 조랑조랑 매달고 있는 버거운 식구들을. 분홍 양산을 쓴 처녀들은 위험한 레일 위를 걷고 있었네. 도랑마다 물이 넘치고 둑방에는 문득 몸메꽃이 피어 있었네 검은 숲이 검은 새들을 날리고 있었네 나는 보았네 바람난 옥자가 검은 새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카지노 쿠폰 것을.
고통처럼 길고 질긴 가죽혁대가 그녀가 날아간 허공에 떠 있었네
- [급! 고독](2019년)
*. 가은, 도래실 : 경북 문경 소재 마을 이름
*. 봉암사 : 문경에 있는 사찰
#. 이경림 시인(1947년생) :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89년 [문학과비평] 통해 등단 의대 진학하여 의사의 꿈을 꾸다 적성에 대한 회의로 중퇴한 뒤 우여곡절 끝에 시를 쓰게 되었다 함.
(같은 이름의 시인이 한 명 더 있음)
<함께 나누기
제게 여태까지 방영된 TV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는 [TV문학관]입니다. 주로 문학성 짙은 중ㆍ단편소설을 재료로 만든 영상들, 황석영의 '삼포 카지노 쿠폰 길'과 김유정의 '산골나그네'에 나온 영상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늘 시는 그 당시 'TV문학관'을 연상케 합니다. 만약 제게 메가폰 쥐어주면 걸작(?) 탄생시킬 욕심도 있습니다.첫 시행카지노 쿠폰 오늘 시의 흐름이 바로 드러납니다.
"가죽혁대처럼 질기고 긴 길의 끝카지노 쿠폰 나는 보았네 *가은(加恩)이라는 유리문을"
화자는 가은카지노 쿠폰 보낸 어린 시절을 담담히 뒤돌아봅니다. '가죽혁대처럼 질기고 긴 길'카지노 쿠폰 화자의 삶이 지독히도 팍팍했음을 보여줍니다.그때는 그저 일상처럼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이제사 돌아보니 그때 그곳엔 나름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과 배경이 있었습니다.
똥장군을 지고 카지노 쿠폰 이웃집 아저씨, 술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걸어가던 아랫마을 김 영감, 부엌에서 국수를 삶던 어머니. 몸이 불편한(아마도 치매) 할머니는 방에서 금붕어처럼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이마에 칸델라 불을 단 광부들이 막장으로 갑니다.
한 편의 서사입니다. 시의 내용대로 영사기는 쉼 없이 피사체를 쫓아가고.
옥녀봉, 도라지꽃, 구호물자 받으려 줄 선 사람들, 악동 형태, 누렁개 한 마리, 눈만 반짝이는 광부들을 지휘하는 아버지, 황금빛 해. 멋쟁이 여선생님이 키 큰 남자랑 연애하는 모습, 봉암사 상좌승, 나직한 돌담 너머 서 있는 집들.
변화하는 피사체를 따라카지노 쿠폰 카메라 감독을 다그치는 감독 목청이 들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잎이 무성한 어린 고욤나무, 분홍 양산을 쓴 처녀들, 물이 넘치는 도랑, 몸매꽃, 검은 숲에 나는 검은 새들.여기까지만 보면 과거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풍경을 익숙한 언어로 보여주는데, 읽다 보면 단순한 회상만 아닌 삶의 아픔도 보여줍니다.
'검은 숲'은 불길함이 깃든 숲이며, '검은 새들'은 저승사자의 길잡이가 되고, '똥장군'을 지고 다녀야 겨우 살아카지노 쿠폰 이웃집, '주정뱅이', 그리고 눈만 반짝이는 광부. 아픔은 '바람난 옥자가 검은 새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간다'에 이르면 좀 더 깊어집니다. '고통처럼 길고 질긴 가죽혁대'에서 옥자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음을.
그럼 이 시는 화자의 어린 시절 추억 쫓으려는 목적으로 썼을까요? 제목인 '자정'을 한 번 봅니다. 자정이란 시간은 하루의 끝이지만 다음 하루의 시작이 됩니다. 즉 과거의 시간이자, 미래의 시간이 됩니다.
아픔이 있어도 과거는 그리운 시간입니다. 우리가 지금 옛날보다 못 살지만 그때 거기엔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과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생각하면 비록 지금보다 물질적으론 부족하지만 정의 맛 사랑의 맛만큼은 철철 넘치기에 시인의 가슴은 참 따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