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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Apr 07. 2025

재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약속을 잡지 못하던 나날들이 계속됐다. 브런치에 연재도 못하며 마음에 부채만 쌓아갔다. 최소한의 사람만 만났고, 가급적 외출을 피했다. 생존과 직결된 행동이 아니면 계속 미룰 정도였다.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초창기 알게 된 작가님이 마포 인디북페스타 각양각책에 참여하신다고 하셔서 용기를 냈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니. 하지만 두려움보다 설렘이 나를 재촉했다. 선물로 무엇을 들고 갈까 2주 전부터 고민했고, 어떤 엽서에 내 마음을 전할까 걱정했다.


작가님은 첫눈에 나를 알아보셨다고 한다. 딱히 내 얼굴을 알려드린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틀이나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푹 쉬고 출근한 날, 서로 다른 사람에게 '얼굴이 왜 그러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못난이가 되어버린 요즘이지만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소중하고 짧은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공간에 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글을 읽는 사람이었다. 이어 책을 비추는 따뜻한 불빛 하나하나가 살아서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잘 왔어, 여기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이야."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열정 가득하던 나는 어디로 숨어버렸던가. 아니 꼭 그때만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되고, ‘흔한 단어’라는 에세이를 시작할 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조금씩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열정이 식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글을 쓰고 싶어 했고,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메모하고, 구상했다. 그리고 계속 읽었다. 꿈에서 '이 장면을 써야겠다'며 글을 썼다. 다만 생업을 지속하며 꿈을 써 나아가기엔 내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나에게는 훈장처럼 진단명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게 내가 원한 삶이 맞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던 차에 같이 '나는 솔로'라는 예능을 보던 중 MC의 멘트를 듣고 남편이 내게 물었다. '선영아, 너는 결혼하면서 포기한 게 뭐야?' 나는 잠시 고민하고 대답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결혼하면서 가장 먼저 나에게 들어가는 돈을 미용실 빼고 다 줄였어. 네일아트, 페디큐어, 속눈썹연장, 왁싱 등 그것만 해도 월에 몇십만 원은 들어가니까.'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 라며 웃었다. 내가 한 말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길 바랐다. 남편은 내게 나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럴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줄였기 때문에 그가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무료 카지노 게임.


남편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내게 말무료 카지노 게임. '선영아, 너 일 그만두고 네가 좋아하는 거 해. 글 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무료 카지노 게임. 그는 내가 여태껏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남편 네가 돈을 더 많이 벌어오면 나는 일을 그만두고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며 볼멘소리를 할 때마다 '그만두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일을 그만두고, 심지어 글을 쓰라니. '오빠는 내가 일 그만두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글 쓰는 거 하고 싶으면 그걸로 지금만큼의 월급을 벌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그만두라고 했잖아.'라며 남편에게 그간 듣던 말로 반박을 해봤다.


'오예, 감사합니다.'하고 바로 절을 하고 받아들여도 모자랄 판에 남편에게 반박한다는 게 말도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갑자기, 왜?'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너무도 크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대답무료 카지노 게임. '그때는 계속 버티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넌 충분히 버텼어. 잘했어.'


남편은 굉장히 생각이 없는 것처럼 굴다가도 가끔 이렇게 진지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의 깊이는 오랜 시간 묵혀둔 장처럼 묵직하다. 그는 내가 일로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했을 때도 아무 말하지 않았고, 그 말도 깊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냐며 물었더니 기억하지 못한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두어 달 전의 일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이틀 전 일이라도 그는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남편이 내게 퇴사를 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에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생각해 보겠다'라고 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답을 내 안에서 찾아야만 했다. 다만 내 마음의 작은 창문이 하나 생겼다. 그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가족의 지지를 얻어, 회사에서의 업무와 책임을 벗어던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퇴사를 외치기엔 내가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챙기고 싶은 귀여운 친구들이 있다. 이런 이유를 대면 '끝까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던데,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단지 마무리를 잘 지어서 내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결국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남은 생을 살 것이다.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속에 생긴 창을 통해서 나는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고, 그 준비를 위해서 다시 힘내어 일어나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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