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의 도둑질
자신의 잘못을 대면하고 인정하는 것은 분명 불쾌한 일이다.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창피함, 수치스러움의 감정은 분명 만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피하기만 한다면, 그것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큰 불행을 만날 수밖에 없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가는 길 중간쯤에는문구점이 하나 있었다. 그 문구점 주인은 흰머리가 살짝 비치고 얼굴에는 까만 점이여기저기 핀,아직은 자글자글하지않은젊은 주름을 가진배 나온동네 카지노 게임였다. 그 카지노 게임는 학교가시작하고끝나는시간에 언제나 문구점앞에 서서지나다니는 아이들에게 농담도 많이 하고 잘 놀아주었기에 '까불이 카지노 게임'라고 불렸다. 그 문구점 역시 간판이붙어있지 않은 채로아이들 사이에서그냥 '까불이네'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까불이네는 80년대 문구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용품들은 가게 안쪽 깊숙이 숨어 있고, 각종 장난감과 불량식품 그리고 뽑기 기계들이 문구점의 대표 선수인 양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 쪽에떡하니 놓여있었다. 그때야 알지 못했지만 그러한 배치는 문구점 주인카지노 게임들이 체득한 훌륭한 마케팅 기법이었고, 그런 작전을 알 리 없는 꼬맹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언제나 문구점 앞에 모여 북적북적하게 소란을 만들었다.그리고까불이 카지노 게임는당연스레그 소란에 동참하여 아이들과함께웃고 떠들곤 했다.
그 기억 속, 당시의 소란 속에 있던 나는 용돈은커녕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하는가난한 꼬맹이였기에 그러한매일의소란 속에서 주인공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용돈을 탈탈 털어 불량 식품을 사서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나눠주거나, 갖고 싶은 장난감을 품에 안고당당하게 계산하는 식으로는 그곳에 모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본적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슬쩍 옆에 서서 구경하다가 친구들이 사 먹는 불량식품을 얻어먹거나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 박스들을 만지작거리며 갖고 싶다는 헛된 희망만을 키우곤 했던 축에 속한 아이였다. 그때는 아마도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곳에있던여러종류의 장난감중에서 특히 본드로 붙여 조립하는 군인 장난감이 갖고 싶었다. 연탄불구멍에 하나씩 넣고 구워 먹는 쫀득이나 달디달고달디단 달고나 같은 것들을 사 먹는 친구들을 보면 물론 부럽기도 했으나,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나와 함께 전쟁놀이를 즐겨줄 작은 조립식 군인 장난감만큼 나를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물론 마음이야 커다란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을 만들고야 싶었지만 그런 것들은 꿈도 꾸지 못할 한 큼 거금이 필요한, 그리고 꼬맹이가품기엔 너무 커 보이는 크기의 박스였다. 나는 그저 몇 백 원쯤 하는 손가락크기만 한 군인 카지노 게임들이 가장 탐이 났다.
나는 매일 하교할 때마다 문구점 앞 소란스러운 아이들 사이를파고들어 가 장난감 상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어느 날은 아브라함 탱크가 사라지고, 어느 날은 아파치 헬기가 사라지면 그 장난감을 사간 것은 누구일까? 지금쯤 조립을 완성해서 가지고 놀고 있을까?라고 상상하며 부러워했다. 가질 수 없었기에 '나도 갖고 싶다.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국민학교 1학년의 어느 봄날,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한 창 정신없었을 문구점에서 나는 그만 나쁜 짓을 하고 말았다.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미군 카지노 게임 4명이 들어있는 장난감 상자를 몰래 실내화 가방에 담은 것이다. 갖고 싶다는 마음이 꽉 차 있던 순간,연탄불에 쫀득이를 구워주고 있던 까불이 카지노 게임의 눈을 피해순간적으로도둑질을 하고만 것이다. 그때 내 얼굴색이 어땠는지 알 수 없으나 심장은 쿵쾅쿵쾅 거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휩싸 안아, 나는 주변도 살피지 않고 앞만 보며 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너무나도 티가나는 이상한 행동이었을 테지만 아무도 나를 불러 세우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떨리는가슴을 안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여 문을 잠그고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나는, 내 마음은 방금 나쁜 짓 한 사실은 싹 잊고는 얼른 장난감 군인 카지노 게임들을조립해서 완성시키고싶을뿐이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몸통, 팔, 다리를 본드로 이어 붙이고 코딱지만한손바닥에는 바늘보다 얇은 총을 쥐어주고 등뒤에 가방, 허리춤에 수류탄을 챙겨주고는 함께한참 동안전쟁놀이를 즐겼다.
내 안에는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까마득히 잊힌 채 갖고 싶던 장난감을 가질 수 있었던 만족감만 남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감정의 상태는계속해서 나를 유혹했다. 미군이 있으니 이제 독일군도 있어야 하고, 영국군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욕심이 다시 내 안을가득 채우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욕심을 참지 못하고 일주일 후 또 몰래 독일군 장난감을 도둑질했다. 이번에도 걸리지 않았고 나는 집에서 2차 세계대전을 찍으며 묘한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구나!'
얼마 후나는 내 안에서 훨씬 옅어진 죄책감을 품고 마지막 영국군을 슬쩍 담기 위해 또다시 까불이네를 찾았다. 여느 때처럼 장난감을구경하는 척하며 계속해서 까불이 카지노 게임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카지노 게임가 다른 아이의 학용품을 찾으러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재빠르게 그 장난감 상자를 실내화 주머니에 담고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번에는 까불이 카지노 게임가 내 목덜미를 탁하고 낚아채버렸다. 나는 너무 놀라고 '큰일 났구나' 싶은 마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카지노 게임는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내 팔을 잡아끌고는 가게 뒤쪽 골목길로 향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 도착하자 까불이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무어라 무어라 말을 했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제 정말 큰일 났구나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도둑질한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곳에서 언제나 눈물이 많은 울보였던 나는 참으로 많이도 울었다. 아마 잘못했다고 두 손 모아 빌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카지노 게임는 울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는 한 동안 내 울음이 자자들 때까지 내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나는 그저 카지노 게임의 두 다리와 신발만을 그리고 그 사이로 노랗게 햇빛을 반사하는 길바닥만을 바라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양이 앞에 쥐처럼 눈물을 흘리고 또 훔쳤다.
어느 정도 내 울음이 진정되자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골목 가장자리를 가리키며 잠깐앉아있으라 하고는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나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앉아 계속 훌쩍거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을 걸렸으니 학교에서 도둑놈이라고 소문이 나면 어쩌지', '당장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지?' 가만히 골목에 앉아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나는 내가 한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그리고 벌어질 일들을 생각했더랬다. 모든 결과물들이 내가 감당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쭈그려 앉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처음에 놀라고 무서웠던 감정은 작아지고 실컷 울고 났을 때의 약간 개운한 감정과 차분해진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는 가만히 내 팔과 다리를 비추고 있는 노란 빛깔의 따사로운 햇빛을 보고 또 느끼며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있다는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멍하니 차분해진 채로 '앉아있으라' 말한 카지노 게임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까불이 카지노 게임는 휴지와 쫀드기 몇 개를 들고는다시내 앞에나타났다. 나는 스스로가 너무도 창피해서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카지노 게임는 그런 나의 눈물을닦아주고 내 코를 쌩하고 풀어주고는 괜찮다고 이제 안 그러면 된다고 말하며 챙겨 온 먹을거리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왠지 그걸 받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을 확인한 카지노 게임는 그만 집에 가보라고 말하고는 가게로다시돌아갔고, 나는 아직 훌쩍임을 멈추지 못한 채 집으로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앞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몇 년간 난 까불이네 앞을 지나는 것이 부끄러워 다른 골목으로 빙 둘러 집에 가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재빨리 지나쳐가곤 했다. 괜히 나쁜 짓은 내가 해놓고 잘못한 것이 없는 까불이 카지노 게임가 미운 마음도 들었더랬다.
그러다가 며칠 전 퇴근하는 길에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 혼자서피식 웃으며 당시를 되돌아보니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 보이는 것도 같다. 카지노 게임는 나쁜 짓을 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부득이하게 혼을 내야만 했을 것이다. 또 다른 아이들이 그런 일을 모르게 하기 위해 나를 아무도 없는 뒷골목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너무도 많이 우는 아이가 결국은 안쓰러워져 용서하며 간식을 챙겨주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혼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보다 더 나이가 먹었을 때, 그보다 더 나쁜 행동의 결과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내가 그곳에 모여있던 아이들 앞에서 혼이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나는 아직은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놀림을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 카지노 게임가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는 어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아마 그날의 따스한 봄볕이 전해주는 위로따위는 기억하지 못한 채 영글지 못한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대면하고 인정하는 것은 분명 불쾌한 일이다.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창피함, 수치스러움의 감정은 분명 만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하지만그것들을피하기만 한다면, 그것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큰 불행을 만날 수밖에 없다.
부디 불행을 만나지 않는 삶이 아닌 불행을 극복함으로 더 큰 자신이 되는 삶이 되기를...
부디 잘못을 하지 않는 삶이 아닌 잘못한 일을 반성함으로 더 나은 자신이 되는 삶이 되기를 조용히바래본다.
그리고 그 바램보다 조금은더 큰 마음으로어린아이들과여린 사람들에게'까불이 카지노 게임'처럼 대할 수 있는어른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