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해 질 녘 바람이 맵다. 이왕 인심 쓴 거 봄볕을 푸지게 풀어놓으면 좋으련만 계절의 순환이 내 마음 같지 않게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매일 볕을 늘려준다. 얼었다 풀렸다 하던 땅이 들떠서 뿌리가 상할까 꼭꼭 밟아줘야 하는 보리밭의 보리들이 제법 물기를 힘껏 빨아 당길 즈음이다. 겨우내 긴 잎을 좌우로 풀어헤치고 바짝 구부려 추위와 맞선 6월 마늘도 자존심을 세우듯 툭툭 털고 긴 잎을 곧추세우는 때가 지금이다.
벌써 아버지는 지난 늦가을부터 휴지기에 들어갔던 텃밭에 거름 포대를 나르고 밭 일굴준비를 시작하셨다. 양지볕 돌담밑에 봄까치꽃이 올핸 유난히 지각이다. 푸른 잎은 준비되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꽃망울이 뵈지 않는다. 겨울이 늦게까지 추운 탓이리라.
그렇다면 냉이도 지금이 한창 일 터. 봄 음식 시작이 냉이 아니던가. 흙냄새 같고도 달큼하고 맵쌀 하면서도 향긋한 뿌리째 캐낸 냉이 한 줌만 있어도 봄동 겉절이와 어머니표 들기름 구운 김과 계란부침이 전부인 저녁 식탁에 천군만마 진입하듯 든든하다. 들깻가루 듬뿍 넣어 먹는 냉잇국은 며칠 정성을 들인 사골국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 겨우내 찬바람과 얼음땅을 견딘 내공이 자줏빛 톱니 같은 잎사귀에 오롯이 배어있는 기품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영접하는 자의 기본자세다. 봄날 같은 비닐하우스 물 댄 땅에서겨우내곱게 자란 싱그런 미나리와 견주지 마라. 그것은 냉이를 선발 주자로 내세운 봄나물들에 대한 모독이니까.
내일 오후엔 지인 동네에 냉이천지 밭이 있다니 과도를 좀 챙겨 들고 거길 가보자고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냉이 도둑이라고 쫓아오려나??
상촌 똑 단발 아이는 보름에 달집 태우기 했던 논두렁의 그을음 흔적이 어지간히 희미해져 갈 때쯤 봄과 맞닥뜨렸다. 겨우내 바깥놀이에 손등은 물론이고 볼 살까지도 입도가 굵은 400방 사포면처럼 거칠어져 있던 게 점차 높은 입도의 사포면으로 부드럽게 바뀌어가던 때다. 동네 앞 들녘 건너편에서부터 어슴프레 어둠이 몰려오면 야무지던 노을이 산산이 부서져 방황하다 급기야 4B연필 스케치처럼 굵은 선이 다정했던 이름 모를 먼 데 산 너머로 꼴딱 넘어갔다. 집 앞 골목길에서 내리닫는 길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너 또 들판 건너 그 풍경이 펼쳐질 때마다 어린 내 입에서는'아, 봄이네.'하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 말은 추위가 질병 수준인 내게 겨울 한 고비 잘 넘겼다는 스스로 대견함과 안도감, 그리고 해야 할 일을 곧 하자는 다짐이기도 했다.
내겐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언제나 오빠와의 놀이 접점은 아득하기만 했고 언니는 실과 바늘, 실체와 그림자 같은 놀이 친구였다. 나는 밥숟가락 놓기 바쁘게 언니를 따라다녔는데 학교 다녀와서도 마루 끝에 앉아서 허공에 발그네질을 하면서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언니는 용케도 '아, 봄이네.' 그 말이 튀어나오고 나서 수 일 내에 내 손을 잡아끌고 해야 할 그 일을 하러 갔다. 봄이 되어 농부가 밭의 검불을 모아 불을 놓고 농사 준비를 하듯 언니와 나의 봄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일이었으니 둘 다 채취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이다.
한 가지는 동네 앞 들판을 가로지르는 탑천까지 걸어가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물밤)을 따오는 일이었다. 탑천까지 어린 걸음으로는 한참이었다. 걷는 거야 2km쯤 학교 걸어 다니던 이력이 있고 게다가 언니랑 함께였기에 지루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언니와 함께여도 조금쯤 무섭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한 여인과 소문 때문이었다.
면내에는 누더기 같은 옷을 겹겹이 입고 머리를 새집처럼 헝클어뜨린 차림새의 실성한 '개나리댁'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이 유독 봄이 시작될 즈음에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며 들판을 헤집고 다녔다. 때로는 하굣길에서도 마주쳤는데 기습공격을 하기도 해서 깜짝 놀라 악~~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야 했다. 이 여인을 한 낮이라도 동네를 벗어난 탑천 가는 길에 만날까 봐 어린 우리는 조마조마했다.
탑천은 여름이면 제법 큰 물이 내려 면소재지 내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영하러 드나들곤 했는데 급기야 익사사고가 생기기도 했던 곳이다. 그래서 동네에서도 계절에 상관없이 어른들이 탑천까지는 가지 못하게 단속을 했었는데 꾸러기들이 그 단속을 지킬 리 만무했다. 어른들도 물이 말라서 익사사고 염려가 크지 않은 계절에는 잔소리가 느슨해졌으나 탑천에 가면 물에 빠져 죽은 원혼이 물속으로 다리를 자꾸 잡아 끌어당긴다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서 흉흉하게 돌았다.
진짜 그런지 궁금해서
"엄마, 한 갯뚝(탑천) 가면 진짜 어린애들 다리 잡아당기는 귀신이 있어?"
"그러니까 한 갯뚝 가지 말라는 말이지."
이렇게 대답하실 뿐 진위 여부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될 무렵의 탑천바닥은 가운데 부분만 물이 흐르고 가장자리는 물이 거의 말라있었다. 건조한 계절엔 어린 우리가 걸어도 뻘이 움푹 패지 않을 만큼 제법 단단했다. 탑천 가장자리에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풀이 자랐는데 봄이 올 즈음이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열매가 말라비틀어진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까맣고 뾰족한 가시가 돋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열매는 가시 때문에 맨손으로 따기에는 번거로웠는데 우린 장갑을 챙기지 못하고 찌그러진 양은 양동이만 챙겨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마름을 따러 갔다. 소문과 개나리댁이 무서워 삼삼오오 모여 함께 갔는데 그러다 보니 경쟁이 붙어 마름을 빨리 따느라 가시에 손이 찔리기도 했다. 피가 조금 나도 입으로 쭈욱 하고 빨아내어 뱉고 툴툴 털었다. 그렇게 마름을 제법 양동이에 채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집 엄마들은 따온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깨끗이 씻어서 가마솥에 쪄서 심심풀이 간식으로 내주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따오면 야단부터 하셨다.
"거기 사람이 빠져 죽은 곳에서 자란 것을 왜 자꾸 따와? 당장 갖다 버려."
무슨 연유에서인지 탑천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싫어하셨다. 낚시로 건져 올린 민물고기를 동네 어른이 갖다 주어도 받아 놓기만 할 뿐 안 보이는 곳에다 몰래 버렸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욕심껏 많이 따와도 칭찬은커녕 오히려 야단만 맞았고 손 찔려가며 힘들게 딴 게 아까워서 친구네 집에 갖다 주고 거기서 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얻어먹곤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이름대로 밤과 같은 맛이 났는데 작고 가시까지 붙은 열매가 뭐 그리 맛있을까 싶지만 해빙기에 간식이 부족한 우리 꾸러기들에게는 심심풀이 간식이 되었다. 야단맞고 나서 그런 줄 알면 그만 따와야 하는데도 다음엔 괜찮을까 싶어 다시 따오면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당장 갖다 버려."
우리 엄마만 왜 그래? 하면서 들리지 않게 볼멘소리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뻘 흙이 덕지덕지 묻은 신발이며 바짓단을 세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이 종종거리고 바쁜 어머니 일과에 반가울 리 없었겠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따왔다는 자랑에 칭찬은커녕 동심을 몰라주는 깔끔한 어머니에게 섭섭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학교 오가는 길 우리 동네와 기차역 중간지점에 새마을마크와 농협마크가 크게 찍힌 정부양곡보관창고가 있다. 이 건물의 남쪽으로는 논인데 창고건물이 들어선 대지와 논은 높낮이 차이가 있어서 비탈 경사면이 길게 나 있다. 이곳은 흙이 메마르지도 않고 부드러운 데다 종일 햇볕이 들어 봄 풀들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곳이다. 상촌 꾸러기들이 쏘다니는 곳을 가리지 않으니 봄 나물이 어디에서 잘 자라는지 이 정도의 토질 파악은 기본이었다. 거긴 주로 냉이와 쑥, 벌금자리가 잘 자랐다. 게다가 논가에는 돌미나리도 자라고 있으니 주인이 따로 없는 나물은 먼저 캐는 손이 주인이다.
나물 캐러 가는 것도 어쩐지 언니와 함께여야 재미있다. 친구와 갈 수도 있지만 두 집안이 경쟁 붙으면 나물 캐는 좋은 기분을 만끽할 수 없으니 언니랑 함께 느긋하게 이야기하면서 캐는 게 좋았다. 언니랑 경쟁 붙어도 항상 이기지 못하지만 결국 우리 집 나물이니까 기분이야 살짝 나쁘더라도 손이 빠른 언니를 따라가는 게 좋았다. 손잡이 망가져서 검정 테이프로 칭칭 손잡이를 감아 고쳐놓은, 아무 일에라도 약방 감초처럼 쓸 수 있는 과도가 딱 한 개라서 그건 언니 차지다. 그렇다고 큰 식칼이나 멀쩡한 과도를 챙겨가기엔 겁이 나고 번거롭다. 나물 캐다가 놀다 보면 잃어버리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내 손엔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을 접었다 펼쳤다 하는 검정 손잡이의 녹슨 문구용 칼이다.
칼에서부터 수준 차이가 나니 언니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게다가 언니는 뱀이 나올지 모르니 다듬지 말고 빨리 캐서 소쿠리에 담고 집에 가서 다듬자 하고 나는 뿌리에 흙이 묻은 상태가 싫어서 뿌리도 떼고 마른 겉잎도 다 떼어 바구니에 넣다 보니 더디고 언니 바구니에 비해 훨씬 양이 적었다.
머리와 등과 나물 캐는 손에 쏟아지는 봄볕은 간질간질 따사롭고 뿌리를 잘라낼 때 나는 냉이 냄새는 어린 코에도 향긋하니 참 좋았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허리를 펴고 기차에 손을 흔들기도 하면서 이른 봄날의 오후가 저물어 갔다.
말끔하게 다듬어 놓은 나물은 엄마가 좋아하셨다. 갖다 내버리라는 말씀도 없고 더구나 벌금자리가 섞여 들어오는 나물바구니는 반기기까지 하셨다. 그런 날엔 저녁상에 대파 송송 냉이 듬뿍 향긋하고 고소한 된장국이 올랐다. 따로 칭찬은 없었지만 작은 손으로 캐 온 냉이로 온 식구를 먹였다는 스스로 대견하고 그래서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했던마음도 함께 먹으니 더 배불렀다.
식구 누구의 칭찬이라도 듣고 싶은 어린 마음에 빈 국그릇을 엄마에게 내밀며 한마디를 기어이 건넸다.
"엄마, 국 한 그릇 더 먹을래. 오늘 냉이 다른 날보다 많았지 언니?"
오늘은 엄마의 만 80세 생신이었다. 팔순기념은 작년에 했고 오늘은 조촐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생신 기념은 다음 달 초에 온 식구가 함께 남도여행 가기로 했다.
함께 나물 캐던 언니는 서울에서 대학병원 근무하느라 엄마 생신에 함께 하지 못했다. 바쁜 일정 탓에 다른 해에도 당일로 내려왔다 고속도로 차가 밀리지 않는 늦은 밤에 올라가곤 한다. 엄마 생신 즈음이 딱 냉이 캐기에 좋을 계절이고 언니는 여전히 나물 캐는 것을 좋아하는데 고향 동네에서 한 번을 캐지 못했다.
작년 섬진강 따라 벚꽃길 남도여행을 갔다가 남해 어느 바닷가 마을 개울물 둔치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는 고운 쑥을 욕심껏 뜯어 왔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그동안 미뤄 두었던 숙제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듯, 아껴 둔 그 일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처럼 신나서 말이다. 그 쑥은 초여름 아버지 생신 때 쑥절편이 되었다.
다음 달 초 강진, 고흥에서도 새 바람에 조용히 졸고 있는 쑥님을 자매가 다정히 모셔올 수 있을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연못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며 가느다란 줄기가 물 속에서 길게 자라 물 위에 뜬다. 잎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모꼴의 삼각형으로 빽빽하게 나와있는데, 잎자루에는 공기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있어서 물 위에 뜰 수 있게 되어 있다. 열매는 핵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라고 하는데, 물 속에서 아래를 향해 달리며, 2~4개의 뿔이 있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주로 연못이나 늪 등에서 볼 수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모라는 도형도 여기에서 나왔다.
사진출처-블로그 미소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