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막내며느리
망나니 막내며느리였던 나는 결혼 후 첫 명절날 시댁에 가지 않았다. 시카지노 게임께서는 딱히 시집살이라 부를 만한 걸 시키지도 않으시는 분이었다. 다만 이미 사랑과 전쟁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으로 사회화되어버린 며느리로서는 시댁을 방문해 살갑게 구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을 붙어보려 애썼지만 당장 친정집에서마저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전화 한 번을 안 하냐’는 구박을 받는 성정이 쉽게 변할 리 없었다. 다정하면서도 여우 같아야 할 포지션의 막내며느리 자리에 곰, 그것도 러시아 불곰 같은 애가 들어앉았다. 아들이 가정을 이룬 것은 고맙고 감사하나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불편함은 며느리의 몫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카지노 게임가 아니라 고모님들 등쌀에 혼을 쏙 빼고 준비했던 첫제사 이후, 남편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찍었다. 여자가 일할 동안 누워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남자를 기어코 내가 만났구나. 전을 부치고 야채를 다듬으며 종종거리는 내 발에 채인 건 남편의 굴러다니는 팔뚝이었다. 불곰의 얼굴로 구미호의 눈초리를 하였지만 남편은 끝내 알아채지 못했다. 결혼 전 친정에서도 무수히 많은 제사를 겪었지만 역시 내 피가 섞인 조상님들을 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달까. 대충 해도 되었던 우리 집 제사와는 달리 혹시라도 꼬투리 잡힐 일이 생길까 겁이 나 정신 바짝 차리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밤 12시가 다 되어 시작된 제사에서 여자들은 절 한 자락 올리지 못했다.
이 경험 이후, 치기 어린 마음에 처음 맞이한 9월의 추석 명절엔 나쁜 며느리가 되어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게 버릇없고 황당한 처세였지만 그때 나는 많이 어렸으니까... 라기에도 꽤 개념 없는 행동이었다. 당시 내 정신상태를 눈치챈 남편은 시댁에 어찌어찌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었다. 남편도 없는 신혼집에서 나는 혼자 벌렁 드러누워 TV를 무자비하게 시청했다. 가끔 카페에서 그림도 그리며 차를 마셨다. 마트에서 약간의 전을 사다가 집에서 데워먹기도 했다. 미뤄두었던 영화를 실컷 보고 늦잠을 늘어지게 잤다. 그렇게 첫 명절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나에 대한 시카지노 게임의 기대는 바스러졌던 것 같다. 얘 하는 꼴 보니까 애도 안 낳을 것 같애. 더 이상의 기대는 무리야. 어머니의 무너져 내리는 표정을 가끔의 방문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설날,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자각했는지, 아니면 갓 부친 따끈한 전이 그리웠는지 전날 미리 시댁에 가서 일을 도왔다. 추석 때 왜 안 갔는지 나조차도 아리송지만 설날엔 왜 간 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어쨌든 평생 정기적으로 해야 할 노동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여기며 맞지 않는 여우의 탈을 뒤집어써본다. 살가운 며느리 그런 건 모르겠고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해야지. 이번 명절엔 먼저 가자고 한 데다가 내친김에 우리, 애까지 빨리 갖자고 하는 아내를 보고 남편은 더럭 겁이 났다. 네이트판에서 뭘 보고 온 거야 또. 이런 애가 아닌데. 하는 눈빛. 그저 마음을 먹으면 추진력이 대단할 뿐이었다.
코가 무척 예민해 시댁의 공기를 버텨내기 힘들었다. 오래된 목조주택에서는 모든 것의 묵은 냄새가 났다. 어딘가 한 구석이 늘 젖어있는 듯한 화장실에는 환풍기가 없었다. 지극히 옛날에 지어진 주택이었다. 산처럼 쌓인 솜이불에서 말할 수 없는 먼지가 일었다.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여기에 기름칠을 해버리겠다! 하는 심정으로 식용유를 두르고 미친 듯이 전을 부치기 시작카지노 게임. 아직 미혼인 시누이, 그리고 형님과 함께 셋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 부치기에 돌입카지노 게임.
사실 지난 추석 때 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더 뻔뻔하게 행동했다. 어머나, 카지노 게임 이거 너무 맛있어요. 카지노 게임 이것도 싸주세요. 가지고 갈게요. 카지노 게임 그건 어떻게 만들어요? 평소의 불곰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 그렇지만 고부간의 관계도 하나의 작은 사회활동이다! 나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다짐 아래 부지런히 카지노 게임 옆에서 심부름을 도왔다. 물론 성에 하나도 안 차셨겠지만.
다른 집의 명절 분위기를 느끼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자라면서 맞이한 명절마다 우리 집에서는 돼지고기 완자전을 꼭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아니다. 재료가 있으면 닥치는 대로 부쳤다. 새송이 버섯, 표고버섯, 애호박부터 감자, 고구마까지 얇게 썰어낼 수 있는 식재료라면 모두 썰었다. 일정한 두께가 되어야 했지만 칼질이 아직 서툰 막내며느리는 두터운 전을 만들기 바빴다. 썰어낸 재료에 부침가루를 타닥타닥 고루 펴 바르고 달걀물을 입혀 기름 위로 치지직 부친다. 달걀물에도 어머니만의 비법이 있었다. 다진 마늘을 넣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 숟가락 양껏 떠서 넣고 휘저으셨다. 기겁한 나와 달리 모두가 태연했다. 역시 마늘의 민족. 막상 그렇게 부친 전을 맛보니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맛있었기 때문이다.
버섯을 한 대접 부치고 나면 애호박이 푸지게 나온다. 그걸 다 부쳐내면 또 다른 재료가,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재료가... 계란은 이미 한 판을 모두 풀었고 새로운 판을 풀어야 했다. 간신히 모든 전을 다 부친 뒤 달걀물이 조금 남게 되자 카지노 게임는 여기에 또 무언가를 양껏 담아 오셨다.
“남은 것에 파랑 이것저것 넣고 잡카지노 게임 부쳐야제.”
잡전은 짬처리였다. 차례상에 올리지 않는 것으로 우리가 먹어 치워야 할 음식이다. 눈 한 번 감았다 떴는데 짬처리 해야 할 반죽이 한 양동이가 되어 나타났다. 이걸 부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기름을 두르고 뒤집개를 잡았다. 전을 부친 지 4시간이 지났을 무렵, 마지막 반죽이 팬에 펼쳐졌다. 이제 기름 냄새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코팅되어 있었다. 기름과 내가 한 몸이 되던 그 시점, 카지노 게임께서는 튀김용 냄비를 내어오셨다.
“튀김. 튀김이 맛있제. 이거 해서 상에 쫌만 올리고 나머지는 느이들끼리 먹어라.”
카지노 게임, 튀김이라뇨...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다. 시누이에 형님까지 조금씩 열린 입은 닫히질 않았다. 새어 나오는 한숨과 함께 각종 오징어며 새우가 한 양푼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굉장한 재료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춘권’.
춘권? 그게 왜 여기서 나와?
“이거는 맛있은께. 튀겨서 먹어라.”
... 부치는 김에 이것도, 튀기는 김에 저것도. 모든 것이 과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카지노 게임의 큰 손일까, 따스하고 푸근한 정일까. 유증기에 어지러운 마당에 재료가 자꾸 추가되었다. 심지어 전과 달리 튀김은 두 번씩 튀겨야 바삭해진다. 물론 첫 튀김의 영광은 노동을 한 자들에게 돌아갔다. 바삭! 소리와 함께 퍼지는 고소한 맛은 힘듦을 싹 가시게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6시간째가 되자 무릎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마치니 집의 한편에 엄청난 양의 부침개와 튀김이 쌓였다. 가족끼리 소화해 내기 힘든 전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나로서는 얼굴도 모르는 남의 조상님이 드실 음식을 6시간 동안 차려내었다. 비록 가장 맛있는 부분은 내가 다 먹어버렸지만 그간의 정성을 살펴보아 부디 저에게 은덕을 내려주시라며 간절히 소망했다. 이튿날 망나니 막내며느리는 살뜰하게 부쳐낸 전을 집까지 싸 들고 갔다. 조상님 은덕이 덕지덕지 붙어있기에 집으로 돌아가 얼른 데워 술안주로 먹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