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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Apr 20. 2020

카지노 게임

여자 친구가 배탈이 났다. 설사를 몇 번 했고 힘없이 하루를 보냈다며 연락이 왔다. 죽을 쒀 달라고 해서 참치 죽 레시피를 보고 준비물을 차려놨더니, 기름기 있다고 흰죽으로 해 달란다. 다시 흰죽 레시피를 검색하고 맞춰서 재료를 준비했더니 통증이 사라져서 죽으론 안될 거 같다며 다른 걸 먹자고 한다. 우리가 며칠 전에 갈비탕 카지노 게임를 했었는데 결국 따뜻한 국물이 있는 갈비탕 집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까진 별문제가 없는 패턴이지만 초반에 내가 했던 말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오빠 오늘 설사를 계속하네.]

[그럴 땐 금식해야지. 음식 먹다가 장이 자극받을 수 있거든]


철저히 간호사의 입장에서 금식 이야기를 당연히 꺼냈다. 각종 검사와 치료를 위해 금식은 필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빠가 단호하게 금식이라고 카지노 게임하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하루 내내 굶고 고생했는데, 그렇게 카지노 게임하면 안 되지.]

[난, 걱정돼서 그런 거야. 금식은 당연히 장염일 땐 필수고.]

[아니, 그럼 이렇게 이야기했어야지. 오늘 아프고 힘들었는데, 좀만 더 힘내자. 같이 오늘은 밥 먹지 말고 쉬자. 나중에 죽 끓여줄게. 이 정도 카지노 게임는 있어야지.]


난 카지노 게임가 없는 놈이었다. 눈치도 없는 편이긴 했지만, 과격한 표현과 카지노 게임 없는 말투는 수시로 지적을 받았다. 더 이야기를 끌어봤자 궁지로 내 몰릴 것이기 때문에 들려준 대로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갱 아프고 힘들었지. 오늘 그럼 밥 먹지 말고 장을 쉬게 하고 괜찮아지면 죽을 먹자.]

[됐어. 내가 다 카지노 게임했는데 무슨. 삐졌어.]

내 첫 번째 잘못은 그녀가 아프고 힘들었음을 먼저 공감했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것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여자라는 생물이지만, 공대, 군대, 간호대를 나온 정통 이과 남자에게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공감은 쉽지 않았다. 그녀가 사소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공감을 원하는 대상과 내용이 너무 사소하고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서다. 내 여자 친구가 하는 것들이 사소한 게 어딨냐 만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거나 시시콜콜을 넘어서 아주 하찮은 일들도 많았다. 이러한 삐짐과 상처받음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우선 그녀가 하는 말들을 전부 기억한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나중에 그 이야기를 꺼내거나 화제로 올리면 그녀는 표현하지 않아도 내심 기뻐한다.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점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는 이미지는 어느 사랑꾼 못지않다. 물론 그녀의 모든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선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둘째, 우선 공감하고 본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 우선 공감해야 한다. 그다음에 대화는 알아서 나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이치에 맞는지, 옳은지, 그른지 따지는 것이 남자의 특성이자 본능이다. 태초부터 생존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발달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그녀의 말에 대한 무조건 적인 공감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난 아직도 매번 혼나고 지적받지만 이 공감 여부가 앞으로의 내 인생의 분위기와 직결되어 있다. 셋째, 내가 한 말들은 그녀는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내가 지나가면서 뱉은 말들이나 이야기들은 100%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할 바엔 기억이 안 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마냥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그거대로 혼날 수 있으니 했던 말들은 최대한 기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녀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거나 비슷하게라도 방향을 맞춰야 한다. 여자 친구는 시기와 장소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남자친구가 언제 그것을 지킬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보니 여자친구가 슈퍼컴퓨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랴. 연애에 관해선 내 남자에 관한 기억은 슈퍼컴퓨터 이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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