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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Jul 29. 2020

나 배고픈데 카지노 게임 싶은 건 없어

그녀가 종종 하는 말 중에 당황스러운 말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이거다.


'나 배고픈데 카지노 게임 싶은 건 없어.'


문장 그대로 '배가 고프지만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어'로 해석하면 그날의 분위기는 싸해진다. 말 그대로 '배는 비록 고파도 입맛이 없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문장 내에 배가 고프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고, 먹고 싶은 게 없다는 뜻은 정말로 먹고 싶은 게 없다는 게 아니라 당장 내가 먹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이다. 당장 내가 먹고 싶은 게 없다니? 그럼 시간이 지나면 먹고픈 게 생기거나 정해질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먹고 싶은 게 없는 그녀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기를 채울만한 식사를 찾으라는 그녀의 고차원적인 질문인 것이다. 집에 있는 음식과 반찬, 과자들은 당연히 먹고 싶지 않으며 외식을 하더라도 맘에 드는 걸 찾아야 한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분명 먹고 싶은 건 없다 해놓고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수많은 반찬들과 냉동식품, 조리된 음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혼자 방치하면 할수록 점점 사나워진다. 자신의 배고픔을 알아달라는 듯이 배고프다며 칭얼거리는 횟수도 잦아지고 더 틱틱 거리며 짜증을 내기 일수였다. 몇 번의 짜증과 괴롭힘을 겪고 나서야 저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배가 너무 고파서 힘이 없어. 하지만 집에 있는 시시콜콜하고 매번 먹던 음식은 먹기 싫어. 그렇다고 내가 확 땡기는 음식이 있는 건 아니야. 시간이 갈수록 배는 고파지고 있어. 그러니 우선 내가 예전부터 먹고 싶었다던 음식들을 생각해 봐. 아니라면 유명한 맛집이나 사진 이쁘게 나오는 집이 좋겠지? 무엇보다 맛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부족하다면 분위기라도 좋아야 해. 내가 이렇게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아? 나 오늘 너무너무 힘들어서 오빠한테 위로받고 싶어서야. 그런데 김밥이나 라면, 집 밥 따위로 되겠어? 배고프다고 강조해서 이야기했고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대충 먹기 싫고 제대로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니까 최대한 빨리 맛있고 만족스러운 음식과 식당을 찾아내길 바래.]


이 뜻이 아니라면 정말로 여자에 대해서, 그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다. 저런 멘트와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맛있는 고깃집은 80% 이상의 확률로 좋은 대답과 결과를 얻었다. 상대적으로 파스타는 크게 선호되지 않았는데 느끼함에서 감점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에 이야기했었던 음식들은 몇 번의 패스를 거친 후 초이스 되지만 생각보다 식후 평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상대적으로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들이 결과가 좋았는데 그날의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려는 그녀의 의지였던 것 같다.


그녀와의 간격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겠지? 아니 가까워졌어. 그러니까 이렇게 글이라도 끄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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