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어차피 없었다는 거
바람은 언제나 문을 두드린다. 믿음이라는 이름의 문도 예외는 아니다.
홈플러스- 이름이 주던 무게는, 오랜 시간 우리 일상에 스며든 안도감이었다. 장바구니에 담긴 건 식료품만이 아니었다. 카지노 쿠폰였다.
하지만 2025년 봄, 그 카지노 쿠폰는 조용히 금이 갔다. 보이지 않는 균열은 속삭임처럼 퍼졌고, 결국 산산이 부서졌다.
6,000억 원이라는 숫자는 차갑다. 그러나 그 안엔 따뜻한 꿈들이 갇혀 있었다.
퇴직 후 평온한 삶을 꿈꾸던 노인의 노후, 아이의 결혼식을 기다리던 부모의 손길, 작은 희망을 키우던 이들의 내일이 있었다.
전자단기사채- 그 복잡한 이름 뒤에 숨겨진 것은 기업의 비밀스러운 침묵이었다.
신용등급이 무너지는 순간조차, 그들은 말이 없었다. 마치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채권을 팔았다.
투명해야 할 유리는 왜 이토록 흐려졌을까.
사모펀드라는 이름 아래 쌓인 욕망은, 결국 소비자들의 등을 밟고서야 제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레버리지라는 낯선 말, 구조조정이라는 차가운 칼날 앞에, 따뜻한 삶은 너무 쉽게 베어졌다.
피해자들은 외친다. 그러나 그 외침은 마치 빈 골목길에 메아리처럼 되돌아올 뿐이다.
누군가는 법을 말하고, 누군가는 시장 논리를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 속엔 사람이 없다. 오직 숫자와 책임 회피만이 떠돈다.
검찰은 움직였고, 금융당국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정의라는 단어가 이토록 늦게 오는 법인지, 우린 또 배운다.
그러나 정의가 늦더라도, 반드시 도착하길 바란다.
닳아버린 카지노 쿠폰의 밑창 위에 다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투명한 눈과 무거운 책임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시장이란 무엇인가.
사람 없는 경제는 존재할 수 있는가.
카지노 쿠폰 사태는 단순한 금융 사건으로 보아 넘길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사회가 카지노 쿠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서글픈 자화상이다.
흐릿하고 깨진유리창 너머로 다시 빛이 들어오기를, 우리는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