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오프] 쉰다는 것은 삶에 여유를 주는 것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편이다. 아니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정시보다 일찍 가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늦는 것보다 일찍 가는 게 마음이 편해서다.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은 늘 늦는다. 알면서도 나는 일찍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날도 약속이 있었던가. 맞다. 점심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중간에 시간이 좀 붕 떴다.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하다가 합정 근처에 있는 알라딘 중고 서점을 찾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만화 코너에서 질문을 잔뜩 얻었다. 나에게 질문을 마구 던져준 작가는 바로 마스다 미리다.
마스다 미리를 좋아한다. 그의 만화에는 다정함이 물씬 묻어 있어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말인데도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게 한다. 아래 글귀처럼. 책을 보면서 틈틈이 질문들을 메모했다. 적을 데가 따로 없어서 카드 영수증에 옮겨 적은 것을 다시 이렇게 적어본다. 아마도 쿵 하고 심장이 반응하는 문장들이, 시선을 붙드는 문장들이 한두 개는 꼭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번 해 본 생각들과 고민들. 마스다 미리는 마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하고 알아주는 것같다. 그게 내 마음을 붙든다.
- 사람에게 가장 좋은 나이가 있다면 몇 살일까?
-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생각이 아닐지도 몰라.
-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들려주는 작은 목소리. 엄마는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하는 사람.
- 내가 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 따위로 일해도 되는 걸까.
- 열심히 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느낌.
- 내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내 인생의 의미는 뭘까.
- (큰아버지 병문안을 마치고 와서) 아이 역할을 연기했구나. 잘한 걸까. 그렇게 하길 잘한 거겠지? 아니면 난 위선자인 걸까?
- 언젠가는 끝날 나의 인생은 지나가는 수많은 하루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 후회무료 카지노 게임 싶지 않은 마음과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갈등하는 마음.
- 합격한 인생이란 어떤 걸까? 합격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누가 매기는 거지?
- 내 인생은 한 번 뿐이며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뿐. 누구 인생보다 나은 인생 같은 것이 아니라.
- 인생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찾을 필요가 없다. 알 필요가 없다.
-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언제까지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비슷하다.
- 내가 나의 집으로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은 하룻밤을 자고 다시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 한 번뿐인 인생인데 소소하더라도 매일 즐거운 일을 찾고 싶다.
- 좋은 삶의 방식이란 어떤 방식일까.
언젠가 나도 '열심히 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느낌'을 무료 카지노 게임 적 있고,'아무 말하지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기대'하며 혼자 서운함을 쌓은 적도 있고, 집과 회사만을 오갔던 시간에 '내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내 인생의 의미는 뭘까' 하고 한숨 내쉰 적도 많았다.
'후회무료 카지노 게임 싶지 않은 마음과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갈등하는 마음'은 지금도 무시로 찾아오고, '한 번뿐인인생인데 소소하더라도 매일 즐거운 일을 찾고' 싶은 것도 매일의 내 마음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나도 '내 인생은 한 번 뿐이며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뿐. 누구 인생보다 나은 인생 같은 것이 아니라'라는 문장을 쓰고 싶었음을, 별표를 치고 밑줄을 긋고 싶은 마음으로 대신했다.
오늘 다시 보는 그의 질문에서 가장 크게 공감한 문장은 바로,
사람에게 가장 좋은 나이가 있다면 몇 살일까?
나는 이 질문의 정답을 안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 좋은 날이다. 그런데 사실 그걸 모른 채 사는 날이 더 많다.
주말에 일무료 카지노 게임 평일에 쉬는 날이면 밖에서 무얼 무료 카지노 게임 누굴 만날까 늘 고민하는 편이다. 혼자 보내는 계획을 세울 때도 많다.그래야 하루를 잘 보내는 것 같아서다. 집에만 있는 것은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달까.
그러다 이 말이 떠올랐다. 호학심사.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는 말이다. 책 <여덟 단어에서 읽은 사자성어다. 이 책에서 저자 박웅현 선생은 말했다. '이 말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심사'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고 하지 말고 본 것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라고. 쉬는 날마다 어디론가 떠날 궁리만 하는 나에게, '거 좀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있는 걸 좀 잘 숙성시킬 시간도 좀 가져'라고 타이르는 것 같았다.
뜨끔했다. 사실 오랜만에 소설도 두 권이나 읽었고, 최근 혼자 영화도 두 편이나 봤다. '엄마의 루트'도 하나 짜둔 게 있었고. 다 나중에 글로 쓸 것들이라고 여겼다. 쉬는 날의 인풋은 결국 글이라는 아웃풋으로 나올 테니 나가는 것을 당연시했다.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생각을 숙성시킬 시간이 없었다. 써야 할 글을 한 글자도 못 쓴 게 그 증거다. 그래서다. 쉬는 날인데도 오늘 하루는 그냥 집에 있어볼까, 결심한 것은. 마음은그랬지만 낮 12시까지는 불안했다. 이러다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가 갈까 봐. 오후가 되어서야 이런 날도 '괜찮네'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늦잠을 자고, 점심으로 떡볶이를 시켜 먹으면서 OTT 드라마 <트리거를 봤다. 방문 닫고 들어간 고3, 중2 아이들이 잠깐 거실로 나와 햇살을 부지런히 받아먹는 걸 보고는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한겨울이면 알록달록한 내복을 입고 거실을 구르며 깔깔 대던 아이들이 시간 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놀랍게성장해있는 걸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련무료 카지노 게임낯선기분.
이렇게 잘 자라주고 있는데 괜한욕심을 부리고 아쉬움과 조급함에 아이들을 다그치고 상처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도 했다. 그저 뭔가를 빨리빨리 쳐내려무료 카지노 게임, 하나라도 더 해보려고 했던 시간 속에 있을 때는 결코 하지 않았을 생각들이었다.
평소였다면 오후 5시에 학원 가는 둘째 이른 저녁을 차려주고 저녁에 고3 아이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귀한 하루가 다 갔네' 했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밥만 먹고 땡 무료 카지노 게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평일과 달리 여유 있게 아이들 하나하나를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서둘러서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동안 짧게 메모하고 말았던 글들을 다듬고, 한 주간에 생각했던 일들을 다시 메모하고 정리하면서 앞으로 써야 할 글들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매일이 오늘 같을 수는 없겠지만, 잠깐의 쉼으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날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지금보다더나은 하루보다 만족할 수 있는 하루를 사는 것. 그게 가장 좋은 나이,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