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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Feb 20. 2025

개인의 인생이 카지노 게임가 되었을 때

박사라의 『가족의 카지노 게임를 씁니다』

『가족의 카지노 게임를 씁니다』는 재일코리안 3세 사회학자 박사라가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 네 명의 친척들의 생애를 기록한 가족사다. 저자는 자신의 둘째 고모부, 둘째 고모, 셋째 큰아버지, 넷째 고모의 삶을 따라가며 4·3 사건과 일본으로의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 재일코리안의 카지노 게임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구술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카지노 게임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가족의 카지노 게임’는 단순한 개인의 삶의 기록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의 공백을 채우고 국가 중심의 서사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다. 재일코리안 3세이자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저자의 위치는 “나는 내가 왜 일본에 있는지”, “왜 이런 이름으로 이런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라는 실존적 물음으로 이어지며, 이는 연구의 동기이자 방법론이 된다.


저자는 생활사와 구술에 대해 “개인이 살아온 삶에 흥미가 있느냐, 개인이 체험한 사건에 흥미가 있느냐의 차이”라며 구술을 통한 카지노 게임 쓰기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는 “듣는 이(쓰는 이)의 영향 때문에 회상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구술의 특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억에 의해 서술이 가능해지는 카지노 게임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밝히면서도, 저자는 “공백이라는 문제도 있다. (...) 과거의 기억은 늘 일면적이고 아무리 해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카지노 게임 서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성 자체를 카지노 게임적 진실의 일부로 포착하려는 시도다. 박사라는 가족의 삶을 재구성하며 카지노 게임적 사실과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분석하고 복잡한 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카지노 게임는 보통 집단적 기억과 국가적 기록을 통해 구성되지만, 저자는 재일조선인 가족의 구술을 통해 카지노 게임의 주변부에 놓인 개인의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4·3 사건 당시 둘째 고모부 이연규는 남로당원으로 활동했으나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 저자는 “밀항은 단순히 개인의 불법 행위가 아니”라며, 밀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카지노 게임적, 사회적 조건을 분석해야 함을 강조한다. 제주 4·3 사건 이후 많은 제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들의 선택은 투쟁의 서사에서 보면 ‘도망’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이는 한 개인의 결정이 카지노 게임적으로 어떻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둘째 고모 박정희는 오무라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퍽 재미있고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오무라 수용소는 강제수용과 비인간적 처우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카지노 게임적 기록과 개인적 기억이 충돌하는 이 지점에서, 저자는 ‘기억의 부재’ 혹은 ‘기억의 선택적 구성’을 고민한다. 구술이 카지노 게임적 사실을 담을 수 있지만, 동시에 누락되는 것들도 있음을 강조한다. 개인이 기억하는 방식은 카지노 게임적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그 기억을 말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넷째 고모 박준자는 일본에서의 삶보다 “글자를 못 읽는” 고통이 가장 컸으며, ‘무서운 일'이 4.3과 같은 카지노 게임적 사건이 아니라 “가족이 행사한 구체적인 폭력”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개인이 기억하는 중요한 사건과 카지노 게임적으로 강조되는 사건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구술사가 카지노 게임적 사실을 단순히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선택되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셋째 큰아버지 박성규는 일본에서 금속 공장, 파친코, 다방, 산업폐기물 처리 공장 등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는 전형적인 재일조선인 1세대 남성의 삶을 살았지만, 동시에 가족의 중심이 되어 동생과 조카들을 지원했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이 살아남기 위해 형성한 독특한 가족 구조와 경제적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카지노 게임는 필연적으로 특정한 시각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그 과정에서 많은 개인의 이야기는 공백으로 남는다. 박사라는 자신의 가족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카지노 게임적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동시에 그 공백을 완전히 채울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나는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되지 못한 이유를 검토한 뒤, 그렇다면 그가 그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고자 했다.” 즉, 이 책은 단순히 카지노 게임적 사실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구성되는 방식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가족의 카지노 게임를 씁니다』는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카지노 게임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을 통해 카지노 게임의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의 경험을 복원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억의 한계와 공백을 마주한다.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카지노 게임적 사실을 넘어 기억을 구성하는 방식과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 자체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누구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듣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p.88
그러니까 그런 골칫거리를 다 쓸어 냈으니까 아름다운 제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
p.132
누군가의 생활사를 듣고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것은 때때로 어떤 질문을 품고 인터뷰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p.280
4ㆍ3사건에 대한 '기억의 부재'는 누구에게 또는 어떤 경우에 문제가 될까? 물론 4ㆍ3 사건의 증언을 모으고 싶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오무라 수용소가 즐거웠다'는 발화는 오무라 수용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사람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다른 문맥은 고려하지 않고 특정한 발언만 떼어 내서 '실증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말이다.
p.283
나는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되지 못한 이유를 검토한 뒤, 그렇다면 그가 그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고자 했다. 다시 말해 고모들, 내가 만나 온 재일조선인 1세 여성들이 종종 사용하는 어구-"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리했던 것이다.
그들의 과거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p.286
카지노 게임 속에는 내가 모르는 숱한 공백들이 있을 것이다. 패전 후 오늘날까지로 시간을 한정하면, 식민지에서 귀환한 일본인이나 장애인, 피차별 부락 출신자가 살아온 전후의 세계나 지금의 세계는 내게 공백이다.
p.287
다양한 기록은 분명히 여러 공백을 메울 것이다.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공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 주리라.
카지노 게임
가족의 카지노 게임를 씁니다

박사라 지음 | 원더박스, 2023
사회학 | 316쪽
#재일코리안 #가족사 #기억

책계정 | Insta @boi_w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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