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저녁이다.
명절 당일 시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보통 친정에 간다. 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 차가 막히면 머나먼 여정이 된다. 몇 번을 자다 깨도 여전히 고속도로 한가운데인 머나먼 여정...
우리가 도착하기 1시간 전 즈음 여지없이 엄마가 전화를 한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이다.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정오 즈음에 출발하면 저녁이 거의 다 되어서야 친정에 도착한다. 이미 처가로 출발한 남동생과는 얼굴을 보지 못해 전화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러나 친정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니들과 형부, 그리고 조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반겨준다. 가방을 미처 놓아둘 새도 없이 여기저기 인사하고, 조카들 얼굴 보면서 안아주느라 바쁘다.
차례를 지내느라 엄마가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나물, 남동생과 올케가 만들었을 전과 튀김들로 한가득인 저녁상을 먹고 나면 배가 두둑해진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때로는 온 식구가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타짜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허당인 우리 엄마와 재밌게 놀거리 중의 하나이다. 제법 다 큰 아이들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자기들끼리 논다. 고스톱을 치고 나서는 푼돈을 모아 아이들에게 쥐어준다. 가게 가서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말이다.
일찍 주무시는 엄마를 제외하고 형제들끼리는 2차로 조촐한 술자리를 갖는다. 마시는 맥주보다 먹는 안주가 더 많다. 술자리를 빙자한 야식타임이라고 할까. 맥주와 안주를 곁들어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12시가 넘어가면 가끔 말소리에 얕은 잠이 깬 엄마가 거실로 나와보고는 한다.
"아직도 안 자냐? 밤늦었는데 얼른 자라"
"응, 엄마. 금방 잘게요"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느지막이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보글보글 엄마가 밥 짓는 소리에 잠을 깨서 부스스 아침 밥상에 앉는다.
명절에 해외카지노 쿠폰 가는 친구나 동료들이 부러웠다. 올해처럼 명절 연휴가 길 때면 휴가를 붙여서 동남아, 가끔은 유럽으로 카지노 쿠폰 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 주위에서 명절 때 해외카지노 쿠폰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은 직장여성이었다.
취직한 후 결혼을 일찍 한 편인 나는 명절 때 여유롭게 해외카지노 쿠폰을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명절에 엄마 혼자 차례 준비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아마 혼자 카지노 쿠폰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명절 때 해외카지노 쿠폰을 간다는 것은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그러니까 막연히 먼 미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요양원 들어가신 후 명절 때는 엄마를 모시고 나와서 1박 2일로 언니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언니에게 사정이 생겨서 모이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날씨도 너무 추워서 당일치기로 엄마 면회만 하고 오기로 했다.
설날에 엄마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예전에는 부모님 댁에서 온 식구가 와글와글 모여서 떠들며 놀았을 시간인데, 명절 당일에 내 집에서 조용히 보내려니 마음이 허전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로 돌아가 하루를
지낼 수 있다면, 온 가족이 모여 전 부치고 차례 준비하느라 떠들썩했던 그 날로 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