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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딱 한 달이 지난 12월 5일, 외할머니도 하늘의 별이 되었다.
분주했던 아침을 뒤로한 채 검진센터에 갔다. 시간대를 잘 선택했는지 기다림 없이 건강검진 목차가 하나씩 지워져 신이 났다. 마지막 수면 위내시경 차례가 왔다. 수면 마취약이 통증을 동반하며 손등에서 팔로 서서히 퍼질 때쯤 간호사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하는구나!' 생각을 하던 찰나, 위내시경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깨어났음을 인지했다. 내가 캄캄한 세상에 있을 때 외할머니는 칠흑같이 컴컴한 세상으로 서서히 떠났다. 정신을 차리고 바구니 속 내 소지품을 살폈다. 엄마한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할머니 돌아가실 것 같다' 번개가 치듯 정신이 들었다.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중심을 잡고 설 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현재 병원에서 심폐소생술 하는 중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 돌아가셨어." 수화기 너머로 아빠의 흐느낌이 전달되었다. "할머니......" 외마디 외침과 눈물만이 흘렀다.
1931년생 이재순
1931년 일제강점기(1910-1945)에 태어나 십 대 후반 광복(1945)을 맞이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십 대 초반 한국 전쟁(1950-1953)을 겪었다. 나라 안에서는 4.19 혁명(1960), 5.16 군사 정변(1961) 나라 밖에서는 베트남 전쟁(1960-1975)으로 혼란했던 시기를 거치며, 12.12 군사 반란(1979) 후 5.18(1980, 광주민주화운동)을 아주 가까이 목격했다. 6월 민주 항쟁(1987)까지 민주화를 향한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 새마을운동(1971년-1980년 후반)으로 발전해 나가는 대한민국에서 살았다. 1999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혼자 맞이했다. 외할아버지 없이도 삶의 터전을 묵묵히 지켰다. 명절이면 외갓집은 가족들로 북적북적했다. 많이 노후화된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외갓집이었던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인생이자 추억이 가득한 집을 떠나야 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품고 살아온 외할머니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알츠하이머병,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망상과 의심이 시작되었고, 차츰차츰 몸과 마음이 시들어갔다. 엄마는 2년 정도 2-3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외할머니의 거처를 마련하고 아침, 저녁으로 함께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을까? 2021년 추석 무렵, 119 대원을 출동시켜야 할 만큼 외할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 어른들은 회의 끝에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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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할머니 모시면 안 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한 어른들의 결정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여동생, 남동생, 남편, 제부, 올케까지 모두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싫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엄마를 설득했다. "외할머니 계시는 동안, 우리도 도울게. 명절 때나 친정 올 때 다른 어른들 계셔도 불편해하지 않을게." 우리들의 요청과 엄마의 결정에 막내 외삼촌이 한마디 하셨다. "너희들이 우리를 불효자 만들었다." 어른들도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 거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은 옳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기 시작한 외할머니는 건강 상태부터 급격하게 좋아졌다. 우선 뼈밖에 없던 몸에 살이 붙고, 대소변도 제대로 못 보던 외할머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 엄마만 없으면 엄마를 찾으며 울던 외할머니는 아빠와도 제법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과 눈을 마주치며 누구인지 알아맞히기도 하고, 간단한 대화도 했다. 옛날이야기를 물으면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함께 공기놀이도 하고, 숫자 세기 놀이도 했다. 증손주에게 "학교 다녀왔냐?" "공부 열심히 해라." 덕담도 전했다. "노래를 잘하지?" 하면, 아이는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고 외할머니는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모시며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땄다.
94세 엄마와 70살 딸은 바늘과 실처럼 꼭 붙어 다녔다.
올해 증손녀 초등학교 입학하던 3월 초에 한 번, 장미가 예쁘게 피었던 5월에 한 번! ㅇ엄마는 노모와 함께 두 번의 장거리 여행도 무리 없이 했다. 난 엄마와 외할머니를 수원시립미술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전시에 초대를 했다. '우리 미술관에 94세 할머니는 처음이었겠지?' 휠체어에 앉아 미술관을 경험한 외할머니는 무얼 봤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관람객으로 마주한 엄마와 외할머니, 가족 앞에서 처음 하는 도슨트 전시해설은 설레면서 무척 뿌듯한 시간이었다.
지난 추석 무렵 외할머니는 걷기를 힘들어했다. 외할머니를 뒤에서 부축하며 이동하던 엄마가 결국 허리를 다쳤다. 외할머니는 그 이후 침대 생활을 했다. 12월 5일 아침도 여느 날과 같았다. 전날 외삼촌이 가져다준 무로 물김치를 담고, 아침을 준비했다. 평소와 같이 엄마는 아침밥(죽)과 새콤달콤한 귤 즙을 떠먹였고, 소화가 됐을 무렵 약 먹는 것을 도왔다. 평소와 달랐다. 물을 삼키지 않고 머금고 있었다. "물 삼켜." 말을 건네자 외할머니는 엄마를 한 번 보고 난 후 서서히 힘이 엄마는 바로 심폐소생술을 진행했고, 아빠는 119에 전화를 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엄마 밥을 먹고, 엄마 손길 안에서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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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할머니에게 쏟은 정성에
할머니가 우리 곁에 더 오래 계셨던 거야.
정말 고생 많았어.
이젠 우리가 더 많이 엄마에게 정성 쏟을게.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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