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 철야 집회에 나는 없었다.
눈 위에 쓴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아 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두꺼운 방한복에 모자 위에 후드까지 쓰고 집을 나섰다. 1월 5일 아침 6시 50분은 싸락눈으로 하얀 시간이었다. 동네길도 공기도 모두 희뿌연 새벽길이었다. 시내버스를 잠시 타고 차창으로 바라본 서울시내도 눈세상이었다. 신라면세점 쪽에서 버스를 내려모녀가 다산성곽길 데크를 오르기 시작했을 때 7시 15분이었다.
한양 성곽을 따라 걷는 눈 쌓인 새벽길은 고요했다. 숲길을 지날 땐 앞이 안 보이도록 어두웠다. 눈이 사락사락 내려 쌓이는 오르막을 모녀는 보드득보드득 걸었다. 가로등에 비친 눈송이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시험까지 이제 일요일 2개 남겨둔 수험생 딸,무료 카지노 게임 눈길을 힘차게 잘 걷는다. 부디시험뜻을 이루어 올핸 사회로 복귀하길.
반얀트리호텔까지 올라가서 내리막길걸어 국립극장 쪽으로건너남산공원으로 들어섰다. 수없이 걸은 곳인데 낯선 장면. 미명에 자잘한 전구로 감겨빛을 발하는 나무들이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풍경 속을걷자니 잠들지 못하는 나무들이 안쓰러워 걸음소리를 죽이게 됐다. 사람 보기 좋자고 나무들에겐 못 할 짓임에 틀림없겠다.
남산둘레길 따라 점점 숲길을 걸었다. 눈 쌓인 산길이라 고요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남동에서 밤을 새우는 집회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유튜브로 아직 실시간 집회 중인 젊은이들과 명사회자 내 친구 박범수의 목소리를 또렷이 확인하며 잠시 눈밭에 누워 있었다. 집회 현장 소리를점점 더 가까이느끼며 남산예술원 웨딩홀 쪽으로 내려와한남대로를 따라 걸었다.
한남동 집회 현장을 향해 경찰차 대열을 지날 때가 아침 8시 25분이었다.집나설 때보다 더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눈 눈. 그 은빛 세상에 은박담요를 뒤집어쓰고 줄지어 오는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낯설고도 웅장한 풍경이었다. 저런 복장으로 눈을 맞으며속에 철야를 하고 언 몸을 녹이러 돌아가는 길이겠다. 붙들고 인터뷰라도 하고 싶지만 언 몸 녹이러 가도록 지나쳤다.한남동 공관에 꼭꼭 숨어서 저렇게 국민들을 한데로 나가게 하는 대통령이란 작자에게 화가났다.젊은이들께고마움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가슴이 더 후끈거렸다.
육교 위에 올라가 '키세스 시위대' 집회 현장을 한참 내려다 보았다.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몇 백 명은 돼 보였다. 차도도 인도도 육교도 온통 하얀 눈밭인데, 그 언 바닥 위에서 밤을 샌 사람들. 한남대로 위에눈 뒤집어쓴 교통표지판이 빛을 내며 "집회" "부분통제"로도드라져 보였다. 하얗게 은박담요 위에 눈을 뒤집어쓰며 밤을 새운 사람들에게 감사와 지지의 마음을보내며 서 있었다. 얼마나 추웠을까. 그러나 얼마나 뜨거운 밤이었을까. 아, 간밤에 나는 저들 중에 없었다. 어제 토요일 오후 광화문에도 없었고 밤에 한남동에도 없었다. 너 거기 있었는가 그 때에....
육교에서 내려와 건너편을 바라보다 모녀는 8시 40분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육교에대형 현수막이 외치고 있었다.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 구속!"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모녀는 순천향대병원까지 가서 대사관로 따라 이태원로를 걸었다. 이태원역에서 전철을 탔을 때가 9시였다. 그날 오후안산 가는 길에 한남대로를 이번엔 차로 달렸다.아침의눈이 깨끗이 녹아 사라지고 없는 넓은 아프팔트길 위 대형 현수막만 그대로 있무료 카지노 게임. 그래,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 구속! 아침에 거기서11, 155보였던 내 걸음수는 그밤에는15,660보였다. 아, 키세스 시위대의 기억은 눈 위에 쓴 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