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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땀을 흘리지. 땀을 흘리지 않는 인간은 없네.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개들은 땀을 흘리지 않지. 혀로 체온을 조절할 뿐이야. 그런데 장군이는 땀을 흘리네. 인간과 흡사한 땀을 흘린다네. 자 보게.”
주인은 장군이의 배를 만져 보게 했다. 만져보니 축축했다. 땀방울이 배에 가득했다.
“기이하지 않나? 장군이는 마치 사람 같네. 내 개라서 하는 말이 아닐세. 자네는 땀을 전혀 흘리지 않고 장군이는 땀을 흘리고 말이야.”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장군이를 보거나 만져 보려고 장군이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나 아빠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내려가던 아이들은 장군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군이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고 지나갔고 장군이와 주인은 늘 있는 일인 듯 그들을 보고 웃었다. 이미 아이와 아이의 엄마는 장군이를 아는지 그 큰 그레이트데인을 겁내지도 않고 만지며 장군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장군이의 눈은 아이의 눈빛도 어른의 눈빛도 아니었다. 장군이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엄마는 그만 가자고 했고 아이는 장군이에게서 떨어지기 싫은 듯 떼를 썼지만 장군이의 주인도 장군이를 데리고 일어났다.
“자, 이제 뛰어가지.”
주인은 마동에게 가자며 장군이와 함께 달렸다. 마동은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땀을 흘리는 대형견. 마동은 어제 자신에게 의식을 전달을 해 준 이는 장군이라는 확신이 섰다.
내가 변이를 하듯 장군이도 변이를 한 모습이다. 개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나 눈빛이 달랐다. 밤 11시를 향해 가는 해안가는 해무가 점령을 시작했다. 바다의 저 먼 곳에서 이곳으로 해무는 영역을 넓혀오고 있었다. 선량함이라는 조금도 없고 해무에 젖으면 슬픔에 목이 잠길 것 같았다. 등대는 해무에 대비하라는 하울링을 정박해 놓은 배를 향해 토해냈다. 계단의 끝에 올라서니 송림으로 몰려온 해무가 뿌옇게 모든 광경을 잡아먹었다. 해무가 몸에 닿자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동은 팔뚝을 보았다. 해무가 팔뚝에 와닿았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된 기억이 몰고 온 소용돌이처럼 마음에서 한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는개와 손끝이 닿았을 때 들었던 느낌과 비슷하다. 팔뚝이 닿은 해무가 정말 습한 것인지 습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이 몰고 온 감촉인지 마동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해무는 송림의 저쪽에서 차차 몰려와 그들이 움직이는 곳까지 순식간에 덮쳤다. 마동과 장군이와 장군이 주인의 몸을 에워쌌다. 해무가 구름처럼 몰려와 마동의 몸을 감돌았을 때 마동의 집적된 기억이 해무를 타고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변기 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이 나왔던 소용돌이처럼, 는개의 손끝이 닿았을 때처럼.
마동은 오래되고 압축률이 강한 기억의 시작이 어딘지 몰라 답답했다. 여름밤이면 해안가에 해무가 늘 밀려들어왔지만 다른 날에 비해 유독 질척이고 습한 기운이 가득했고 해무에 자줏빛이 감돌았다. 송림 사이를 뚫고 만들어 놓은 조깅코스를 따라서 죽 들어가면 하얗고 큰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송림공원은 이곳 주민들이 산책이나 조깅을 위해 해안가에서부터 이곳까지 조성을 잘해놓았다. 해변을 찾는 타지의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산책코스가 되어서 오래 머물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시와 정부는 개발계획 하에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다고 선출된 구청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때 전 구청장은 자신의 숙원사업이었던 시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한 개인의 일생을 걸었다고 했다. 구청장은 전폭적인 구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구청장은 소외된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 하지만 구청장은 뇌물수수로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고 구민들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외로움을 지닌 사람들이나 타인에게 받은 상처의 결이 깊은 사람들은 멘토를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지지를 하다 그 정치인이 타락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정치인을 지지하면 되지만 이미 기대기 시작한 사람들의 마음은 종교화되어서 믿어버린 정치인에게 흡수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타락하고 무너지면 사람들은 같이 무너지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