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상처가 된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
어렸을 적 제 엄마 아빠의 예쁜 곳만을 닮아 인형같이 예쁜 아이가 있었다.
나에게는 첫 조카이고, 우리 집의 둘째 아들의 딸이다.
나의 형제들은 맏이인 나와 밑으로 네 명의 남동생들이 있다. 나보다 두 살 밑에 큰 아들, 그 밑으로 두 살 아래로 둘째 동생이다.
그리고 막내로 쌍둥이 남동생이 71년생이다. 그러니까 모두 5남매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착하고 순한(68년생 원숭이띠) 둘째 남동생은 형제 중 제일 처음으로 스물아홉에 스물두 살(여고를 갓 졸업한) 앳되고 순진한 올케와 결혼을 했다. 그렇게 예쁘고 어린 올케가 너무 예쁜 조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우리 집의 소중하고 귀한 첫아이가 되었다.
우리 형제는 특히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내 동생이 낳은 그 조카아이가 특별했다.
그 당시 홈패션 바느질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취미로 배우고 있을 때에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첫 조카를 위한 아기 이불 세트를 직접 동대문시장에 가서 원단을 고르고 작은 집을 온통 먼지로 뒤집어쓰면서 정성껏 만들어서 보내 주었다.
고모가 만든 이불을 덮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기도와 더불어서(내가 만들어 보냈던 이불로 둘째 조카까지 다 키우고 애착이 불이 되어서 헤어질 때까지 사용했노라고 나중에 올케에서 들었다)
그뿐 아니라 직접 대바늘 뜨게로 예쁜 원피스를 공들여 떠서 보내기도 했으니, 나의 첫 번째 조카 사랑은 유별나기까지 했다. 백일 때 원피스 드레스와 머리띠에 양말과 산발 등 온통 핑크빛의 공주를 만들어 주곤 했다.
이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는 시골의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교에서도, 그리고 스쿨버스 아저씨에게까지 너무 귀여워서 외국 아이같이 사랑스럽다고 하여 누구에게나 예쁨을 받는 아이였다. 엄마의 쌍꺼풀과 아빠의 오뚝한 콧날을 닮아 언뜻 보면 외국 아이처럼 생겨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 더 쳐다보고는 하는 그런 아이였다.
내가 그토록 예뻐하던 그 아이는 그러나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홀로 자라나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한참을 지나고 나서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원인은 12살 차이가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막내 고모 때문이었다.
새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낳은 아빠의 막내딸이 원인이 되어 아이는 지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고 있었다.
그 특별한 할머니가 나은 딸은 지 부모와 오빠인 아이의 아빠에게 모든 관심을 받고 자라고 있었고, 내 조카의 엄마인 어린 올케는 극성스러운 시어머니의 호된 시집살이에 집안일보다는 밖에 농사일을 하는 것으로 밤늦게까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방황하듯이 피하여 쉬지 않고 농사일에만 매달렸다.
아이의 아빠인 내 동생은 엄마 아빠의 막내딸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과 일념 하에 자신의 자녀인 조카는 '보이지 않았다'라고 '그래서 막내를 망친 것도 자신이라'라고 새엄마가 돌아가시고 고해성사하듯이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아이인 내 조카는 그 사이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급기야 할머니로부터 술주정으로 빰까지 맞았다고, 그것도 최근에서야(지금은 서른 살이 되었다) 지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지 엄마는 그 소리를 딸에게서 듣고 가슴이 찢어지고 평생 못 잊을 거라며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초등학생이었던 그 아이, 내 사랑스러운 조카는 그렇게 할머니로부터 어린 나이에 구박까지 받으면서 지 고모와 최근까지도(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비교당하면서도 한마디 말도 없이 참아내면서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홀로 견디면서 왜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도대체 엄마 아빠에게 투정조차 하지 않은 채 지내온 것일까?그 아이도 엄마와 아빠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집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아이 아래로 두 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나의 두 번째 조카이다.
아이는 아들이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엄마 아빠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과 올케는 새엄마의 하루에도 열두 번이 넘게 변덕을 부리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걸 참아 내느라 밤이 늦도록 농사일에만 매달렸다되도록이면 덜 마주치기 위해서, 볼 때마다 사람을 힘들게 하고 할퀴고 상처 입히는 그런 어머니이며, 시어머니인 그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자녀들은 떨어져 살아서 가끔씩 집안 행사나 명절 때에만 부딪히는 새엄마인데, 날마다 365일을 상처 속에서 자신들을 지키려고 죽도록 노력하는 사이 그 아이들, 내 어린 조카들은 그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상처가 되어 정신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 조카인 그 아이의 동생은 엄마 아빠의 돌봄으로부터 , 방치되어 홀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숫자를 익히고, 글을 익히면서 ADHD 증후군으로 과잉행동과 집중력 저하를 겪고 있었고, 어떤 한 부분에서는 천재적인 집중력과 실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 부분을 아이의 할아버지는 자랑하고 다니시기도 했다.
이 조카도 어려서부터 눈치를 보았고 특히, 할머니에게 잘하려고 하고 칭찬을 받기 위한 행동을 스스로 배워 간 거 같다.
누구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지극정성 사랑과 애정을 보였다. 누가 보면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할머니는 손녀딸은 미워했으나 손자는 귀여워하고 예뻐하며 심하게 편애했다.
이제 서른 살이 된 나의 조카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하나씩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어려서 할머니에게 구박받고 빰까지 맞기도 했던 일, 지 아버지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하던 때도 '저는 막내 고모 다음으로 작은 딸로 생각하면서 자랐노라고 지금은 다 괜찮다'라고 이런 말들을 아빠보다 좋다고 말하는지 작은 아버지와 막내 고모와 함께 맥주 한잔하면서 술김에 말하는 조카가 안쓰럽고 아프다.
'어찌 어린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의 엄마에게조차 말을 하지 않고 지금껏 견뎌 왔을까?'
언젠가 조카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 제 아빠에게 '학교 근처에 따로 방을 얻어달라고, 나가서 살게 해 달라'라고 했다가 묵살을 당하였고, 힘들어하던 딸아이를 올케는 결국 자신의 친정 여동생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보내어 고등학교를 다니게 하여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조카는 지금 자기의 엄마를 얼마나 지극히 챙기고 사랑하는지 부러울 지경이다. 그런 딸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조카가 안쓰럽다고 올케는 말한다.
자신의 막냇동생에게는 모든 걸 다 해주고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만 보였던 동생은 어찌하여 자신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의 아픔은 보지 못하였을까?
아님 스스로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자기의 아버지를 위해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노라고 고백하던 그 동생이, 이제는 지금은 다 자라서 스스로의 아픔을 숨기면서 살아온 조카에게 더없는 사랑을 표현해 주고 지금이라도 돌봐주기를 바란다. 이제 와서 그런다고 어렸을 때에 아빠가 필요했을 때의 그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을지라도 아빠에 대한 깊숙한 원망이 조금이라도 희미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랑하는 나의 조카도 이제는 엄마와 아빠에게 어렸을 적 해보지 못한 어리광도 부리면서 회복하기를 바라본다.
효자 효부로 주면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내 동생들도 자신의 아픔을 서로 긍휼히 여기면서 아껴주면서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부터라도 서로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마음껏 표현하며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걸 무엇이든 해주면서 말이다.
한 집안의 폭군으로부터 모두들 죽을힘을 다해서 참았노라고 고백하는 아빠와 나의 동생들과 올케들과 모두는 이제야 평화를 느끼고 행복해지고 있다. 이제야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아픔으로 인하여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모두에게 감사한다.
사랑하는 나의 동생들과 고마운 올케들과 조카들에게 이제는 내려놓고 조금씩 서로서로의 상처받은 마음들과 부부간의 벽들도 조금씩 깨트리면서 노력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나부터 말이다.
멋지게 자라준 사랑하는 나의 첫 조카딸 **아 사랑한다. 고맙다. 멋진 너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