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취재기 ⑥
거물급 전관부터 젊은 변호사까지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선임계를 낸 국회 측과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숫자를 모두 합하면 30명이 넘는다.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이전부터 윤 전 대통령 측이 법률대리인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기사가 슬그머니 나오기 시작했다. 첫 스타트는 바로 석동현 변호사였다. 석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과 서울대학교 법대 79학번 동기로, 약 40년간 친분을 유지해 온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우리를 포함해 당시 몇몇 기자들이 석 변호사 사무실에 이른바 '뻗치기'를 시작했고, 그 결과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등 윤곽이 나왔고 그때마다 단독 기사가 쏟아졌다. 국회 측 역시 만만치 않았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송두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이광범 법무법인 LKB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아 대응에 나섰다.
드라마 속 법정은 사실과 다르단 게 정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재판장님, 카지노 게임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드라마 속 검사나 변호사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실제 법정에서 그런 장면은 보기 어렵다. 모든 건 서면으로 이뤄지고 정숙한 분위기 속 여러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처리된다.
오히려 이번 탄핵심판에서 그런 드라마 속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증인이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하자, 분을 삭였던 대리인. 증인에게서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당황했던 대리인. 상대방이 증인의 대답을 칼같이 자르고 덤벼들자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던 대리인. 양 측은 지난 1월부터 2월 말까지 11차례의 변론을 거치며 헌재 대심판정에서 팽팽히 맞섰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부터 조지호 경찰청장까지
헌재는 이번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총 16명의 증인을 채택했다. 이들이 변론에 출석할 때마다 대심판정 앞은 질문을 던지려는 취재진으로 장사를 이뤘다.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은 각각 주어진 45분의 신문 시간 동안 매서운 질문을 증인들에게 쏟아냈고, 증인들의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형사재판이 이뤄지고 있어 “답변이 제한된다”며 대부분의 답변을 거절한 증인, “기억이 안 난다”라고 하다가도 윤 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기억이 난다”는 증인. 증언을 했음에도 ‘오염된 진술’이라며 공격을 받은 증인도 있었다. 헌재 브리핑룸과 대강당은 그들의 말과 표정, 행동 하나하나를 기록하려는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로 가득 찼다. 또 그들의 말에 혀를 끌끌 차기도, 탄식을 내뱉기도 하며 기사를 읽을 독자과 시청자들의마음을 떠올렸을 테다.
마감과의 혈투
증인 신문은 하루에 최대 4명까지 진행됐다. 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 오후 5시까지 총 네 타임에 나눠 이뤄졌다. 하지만 재판관들의 직접 질의시간이나 휴정시간까지 더해지다 보니 실제로는 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저녁 7시 뉴스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늦어도 6시 반까지는 기사를 완성해야 했다. 오전 10시나 오후 2시쯤 이뤄지는 증인 신문은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 이뤄지는 증인 신문들은 굉장히 난감했다. 언제 중요한 말을 할지도 모르고,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인신문이 그랬다. 그는 두 번이나 증인으로 채택돼 헌재를 찾았지만, 모두 오후 늦게 신문이 이뤄져 기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기억이 난다. 꾸역꾸역 기사를 썼지만 더빙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헌재 내에는 더빙에 특화된 부스대신 전화 부스를 이용했는데, 방음시설이 굉장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음질이 안 좋았을 뿐만 아니라 부스가 2개밖에 없다 보니 수많은 기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마감시간을 20분 남기고 자리가 나지 않아, 헌재 도서관 구석에서 옷을 뒤집어쓰고 더빙을 하다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려 포기했던 기억도 난다. 심장 쫄깃한 하루하루를 뒤로하고 윤 전 대통령의 최후 진술까지 11차례의 변론이 모두 마무리 됐다.
이제 남은 건 선고 뿐이었다.
* 해당 글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 회사와 관계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