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즐넛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몇 년 전.
엄마가 수술 후병원에입원 중이었다.
아직 회복 기간도멀었는데, 병실 내 환자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려 집단으로 감염되었다.
당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온 세상이 떨었다.
같이 입원 중이었던 환자 모두 강제 퇴원되었단다.병원의 병동은 과별로순차적으로 폐쇄했다.
멀리서 내가 걱정할까 말을 안 한 것에 한숨만 나왔지만,문제는엄마에게도미각장애가 온 것이다.
회복을 위해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데 입맛이 아예 사라졌었다고 한다.
산해진미가 향과 맛이 없고무취, 무미, 고무를 씹는 것 같다고 했다.
입안에서 음식이 주는 특유의 식감까지 잃어버린 것이었다.
세상에서 맛난 것은 엄마 손끝에서 창조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미각은대략 2주정도 주기로수명이 다하면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고한다.이 과정은 평생 반복된다고한다.
혀에 약 7,000개 정도 있는 ‘미뢰(味蕾)’라는 수용체가맛을느끼게하는데,그 단어 자체가 참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맛의 꽃봉오리’라니…
그 7,000개의 미뢰가 다시 꽃 피웠으면 좋겠다고생각했다.
밥그릇 앞에서 피어오르는 밥 냄새와 맛있어 보이는 반찬.
"와, 향이 엄청나~!"
감격하면서 밥그릇을 들고 밥을 한입 먹고.
온몸으로 맛을 음미하면서 "밥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이렇게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걸 기대했는데...
엄마의 회복 기간은 길었다.
2주 정도 지나면 미각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아주 사소한 감각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고....
하지만, 한 달을 거의 맛을 즐기는 기쁨보다 약을 먹기 위한 보조 역할 같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고 했다.
작년에 한국에 들어가 엄마와 자주 음식을 먹었다.
먹고 싶었던 것 같이 먹으며 계속 수다 떨었다.
"엄마, 코로나 때 뭐가 제일 먹고 싶었어? 아니 어떤 맛이 제일 그리웠어?"
"음.. 맛있는 커피....헤이즐넛커피."
내심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음식 리스트가 나오길 상상했었다.
헤이즐넛향 커피...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니까 이해는 간다.
"향도 맛도 기억은 나는데.....그 향이 생각나더라.
사람 수명 100 세라지만,그건 욕심이고.
주어진 생명에 감사해야지.
그런데 한 모금 맛있게 마시고 싶더라."
아플 때 그리운 음식, 당기는 음식을 먹으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더라.
미각은 잃었어도, 커피 한 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그건 아마 몸보다 먼저 회복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일 거다.
그 마음이 먼저 일어설 수 있다면, 몸도 천천히 따라오겠지.
'이 맛, 기억해.'
혀끝은 배신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