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동화
소녀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단 한 번 만이라도 해후를 하고 싶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녀석이 와서 바람을 넣을 때부터 소녀는 빠르게 나를 잊어갔다. 2월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입춘이니 어쩌니 했을 때도 소녀의 마음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봄이 오고 있다거나 얼음이 녹고 있다거나 해도날 향한 마음이변함없어보였다.
“난 겨울이 제일 좋아. 매서운 찬 공기도. 팡팡 내리는 눈발도.”
나는 소녀의 그 마음을 철썩 같이 믿었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되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온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며 새 주인을맞으려고 들썩인다. 소녀도 동요하는 것 같았다. 경칩이 되니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며 야단법석이고. 아직 어떤 녀석도 깨나지 않았다고 말해줘도 아무도 들은 척 안 했다. 남도의 산수유와 홍매화 사진이 떠돌아다니질 않나.
소녀가 아지랑이 감도는 들판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나무들의 꽃눈을 매만질 때,사람들은 봄을 고대하느냐고 묻지만. 하지만 난 그 마음을 안다. 나, 겨울을 그리워하는 손짓인 것을.
봄은 詩 세상까지도 손을 뻗쳐 조금씩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여차하면 소녀는 날 영영 잊을 것 같다. 마음이 달아 날씨 요정을 찾아갔다.
“딱 하루만 제 시간을 주십시오.”
“그 건 너무 길어요. 밤과 낮 각각 세 시간 정도 가능합니다. 이마저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중순 이후엔 안 돼요.”
친구들은 내 계약이 어리석다고 했다.
“그까짓 일에 가진 것을 전부 줬어?”
“사람들이 분위기 파악 못 한다고 할걸?.”
“생뚱맞다고 할 거야.”
소녀에 대한 나의 은밀한 사랑을 알고 있던 베푸는 조심스레 한마디 했다.
“미련을 버리면 안 될까? 여러모로 헤어질 수순이잖아.”
친구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조그만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사랑의 반전이라는. <냉정과 열정의 마지막 장면처럼 헤어진 줄 알았지만 뜻밖에 다시 만나는. 그 장면은 결국 재결합을 암시하지 않는가?
아파트 창밖으로 밤새 쌓인 눈을 바라보며 소녀는 탄성을 질렀다.
“어머 겨울 왕국이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함박눈이라니!”
소녀는 우산을 챙기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나 소중한 눈인데요? 온몸으로 맞아야 해요.”
교문까지 이어진 아파트 도보길에서 우리는진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이리 올 수가 있었니?”
소녀는 뺨이 발개져서 싱글벙글 속삭였다.
"사실 좀 힘들긴 했죠.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함박눈 만들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
날씨 요정에게 재산을 모두 바쳤다느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 우리는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시점 봄비의 침략이 있었다.
봄비는 날씨 요정을 찾아가 거칠게 항의를 한 모양이다. 너무 큰 특혜라며. 상식을 어긴 반칙이라며.
계약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건만 봄비가 퇴장을 요구했다. 꽃샘바람까지 동원하여 쌓인 눈을 거둬가 버리고 사람들 마음까지 앗아 갔다.
"질퍽거려 혼났네."
"비로 변해 다행이다. 봄비는 뭔가 낭만이야."
오직 소녀만 여전히 허공을 헤맨다. 아스라한 낯빛으로 나의 흔적을 찾는 듯.
"조금 더 내리지 않고…."
봄비의 등장으로 쫄딱 망해 둥지로 돌아오니 친구들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러니까 뭐랬어. 망신당할 거라 했잖아. 출근길에 사람들이 얼마나 투덜댔는데.”
“…”
이제 다시는 공적으로 외출할 기력도 밑천도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함박눈 차려입은 나를 반기던 소녀의 모습, 환해진 얼굴, 꿈꾸는 듯한 눈, 환호성.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의 순수한 환대,그것만이 나의 존재 의미다. 그 힘으로 내가 일 년을, 아니 영원을 버틴다는 것을 친구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