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슈타트
이른 아침, 간단히 과일과 요거트로 요기를 한 뒤 호텔을 나섰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할슈타트를 거쳐 빈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우리, 할슈타트도 가?"
오스트리아 여행 계획을 한참 세우던 무렵, '아무 데나 네가 알아서 정해라, 다 상관없다'며 결코 관여하지 않으시던 엄마가, 세부 계획을 세우려는데 뒤늦게 조심스레 물어보셨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조금만 찾아보면, 빈이나 잘츠부르크나 인스브루크 보다도 할슈타트에 더 관심이 생기기 마련인지도 모른다.
"거봐, 내가 가고 싶은 곳들 미리 찾아보라고 했지? 할슈타트는 당연히 가야지!"
사실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나는 다시 안 갔을지도 모른다.할슈타트가 예쁜 마을임은 분명하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여름 휴가철에 가서 그런지 관광객이 너무너무너무 많았던 탓이다. 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가득 찬 인파를 피할 길이 없었다. 심지어 식당에서는 자리가 없어 강제로 합석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에게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꽃이다. 오스트리아를 처음 방문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당연히 할슈타트를 건너뛸 수는 없었다.
호텔 앞에서 미리 예약해 둔 프라이빗 투어 운전기사님을 만나 트렁크에 짐을 싣고 곧장 출발했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는 대중교통으로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행하고, 나 역시도 그렇게 다녀왔었다. 하지만 버스와 기차와 유람선을 갈아타야 하는 꽤 불편한 여정임을 생각하면, 그리고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돌아가는 기차 티켓 값까지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프라이빗 투어가 시간적, 경제적, 체력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었다. 투어라고 해봐야 운전기사가 태워주는 정도이고, 관광은 어차피 우리끼리 원하는 시간만큼 하는 거라 불편할 일도 없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서 만난 모든 운전자들은 꽤나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기사님은 친절했지만 이 분 역시 미친 듯이 속력을 내서 가끔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도심을 벗어나 길이 좁아지면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속력이 줄어들어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 산속 숲길들을 따라 달리자, 주변에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덕분에 할슈타트에 대한 기대감이 비로소 생겨난 것도 잠시, 호숫가에 다다르니 아침 안개가 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안 그래도 이날 비가 드문드문 올 수 있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신경 쓰이던 차였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에이, 이 정도면 비 안 오는 거네!"
그래도 다행히 할슈타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조금 흐리긴 해도 먹구름으로 뒤덮인 정도는 아니었고, 빗방울도 아주 조금 떨어질 뿐이었다. 여행 초반에 너무 강렬한 날씨를 만나서 그런가, 이제 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사님이 우리를 내려준 주차장은 할슈타트 중심가에서는 좀 떨어져 있어서, 덕분에 조금 먼발치에서도 한가롭게 마을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예전에 다녀왔을 때는 유람선을 타고 들어와 중심가 근처만 구경하다가 되돌아나갔는데, 그때보다는 인파에 덜 시달리기를 바라며 여유롭게 일정을 시작했다.
마을 안쪽을 먼저 걷고, 구름이 걷히면 푸니쿨라를 타고 산 위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마을은내가기억하던것처럼 여전히아기자기하고 예뻤다.골목마다 시선을 끌어당기는 집들이 있었고, 그런 집들이 모여있으니 동화책 삽화 같았다. 앞에는 너른 호수가, 뒤에는 저 멀리 작은 폭포도 보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할슈타트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파노라믹 뷰 포인트까지 다다랐다.
"옆으로 좀 비켜 서 주지."
10시쯤 되자 갑자기 카지노 게임 추천이 많아졌고,그만큼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점차 많아졌다. '주민들을 위해 조용히 해달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무색하게 떠드는 사람들도 많았고, 인기 있는 포토존을 홀로 차지해 30장이고 50장이고 사진을 끝도 없이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누구나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겠지만, 혼자만 보는 풍경이 아닌데.
우리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 관광객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예닐곱 장 정도 열심히 찍어주고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내렸는데, 또 다른 포즈를 취하길래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대여섯 장 찍어주었다.
다시 휴대폰을 내리니,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이 조심스레 그쪽으로 가서 포즈를 취했다. 나는 그만 찍겠다는 의미로 휴대폰을 둘려주려는 시늉을 했는데, 그는 옆에 와서 선 그 사람한테 비켜달라고 하고 있었다.내 일행도 아닌데 찍어주는 내가 다 창피해졌다. 나는 서둘러 몇 장만 더 찍어주고는 곧장 앞으로 달려가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우리 가족도 빠르게 사진을 몇 장 남긴 뒤, 점점 사람이 더 많아지는 뷰포인트를 뒤로한 채 다시 온 길을 되돌아나갔다. (우리가 사진을 다 찍고, 경치를 좀 더 구경하고 돌아가기까지, 내가 사진을 찍어줬던 그분은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더 찍고 있었다.)
관광객이 더 많아지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아서 푸니쿨라를 타러 갔다.15분에 한 대씩 운행하는 줄 알았는데 카지노 게임 추천이 쉴 틈 없이 와서 그런지 푸니쿨라도 거의 연달아운행하고 있어서 바로 탑승할 수 있었다.
아래에 보이는 마을이 점점 작아질수록, 위의 산은 점점 가까워졌다.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는 소금광산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할슈타트가 있는 잘츠캄머굿 지역은 소금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거기까지구경할건 아니었기에 전망대 방향으로곧장향했다.
과연 전망대답게,이곳에도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있었다. 뾰족하게 튀어나와 한 팀씩만 번갈아가며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줄 서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애초에 기념사진용으로 만들어진 전망대여서 그런지, 그곳을 피해 다른 데서 찍어도 그 포인트가 계속 사진 속에 애매하게 걸렸다. 이럴 거면 그냥 뷰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줄을 섰는데, 이번에는 어떤 부부가 한참을 찍으며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함께 찍고, 각자 찍고, 그다음에 선글라스를 벗고 또 각자 찍고, 또 같이 찍고…
인내심에 한계가 올 무렵, 드디어 그분들이 가고 혼자 온 젊은 남자가 앞에 가서 섰다. 직전의 부부가 자신들이 찍은 만큼 그 남자의 사진을 또 한참 찍어주었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부부가 그 남자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이제 가나 싶었는데, 그 남자는 또 셀카를 엄청 찍더니 동영상까지 찍기 시작했다.
"Hello??"
우리 바로 앞 순서의 나이 든 아저씨 한 분이 기다리다 지쳐 열받았는지 큰 소리를 냈다. 욕을 한 건 아니었고, 다소 짜증을 내며 '이보세요'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상을 찍고 또 찍은 남자는,
"Your mouth is at your ass."
적반하장으로 그분에게 저질스러운 멘트를 하나 남기고 갔다. 그 멘트에 그 아저씨를 비롯, 주변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분개했다. 그래도 그 아저씨 덕분인지, 다음 순서 사람들은 각자 적당히만 찍고 갔다. 우리도 두세 장씩만 남기고 카지노 게임 추천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서 더 찍었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사람이 많은 것 그 자체보다도, 그중에 꼭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더 피곤한 것 같다. 여행지를 자신들이 전세 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에서 ‘인생샷’을 찍고자 하는 마음은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좋을 텐데. 조금씩만 배려하면 좋으련만, 관광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 보고 안 만날 사람들이라고 여겨서인지 더 예의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험한 말이 오간 전망대를 뒤로하고 소금광산 길을 조금 걸어보다가, 할슈타트를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갔다.
구름이 사라진 맑은 날씨에, 오전 내내 걸어 다닌 곳을 빠르게 다시 한번 훑고 지나갔다. 손에는 점심으로 산 현지식 핫도그인 borsa를 들고, (소시지도 맛있고 빵도 바삭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멀어지는 할슈타트 마을을 아쉬운 마음에 계속 돌아봤다.
다음에 할슈타트를 또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1박을 하며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만 돌아다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에게도 항상 예의 바른 관광객인지, 부끄럽지 않은 카지노 게임 추천자인지, 수시로 돌아봐야지.예쁜 할슈타트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운 장소들에서, 지우고 싶은 흔적이 될 일은 만들고 싶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