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누군가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할 힘이 없을 때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그룹 '시인과 촌장'의 노래이지만 '조성모'의 리메이크 음원으로 더 유명한 이 곡은 요즘 내 마음을 후벼 판다. 아이들의 긴 겨울방학이 지속되고 있다. 무려 12월부터 3월 초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은 엄마의 한숨과 아이들의 성장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학원이라곤 하루에 50분짜리 태권도 학원 한 곳만 다니는 초5 진학을 앞둔 첫째는 나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며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아이들이 입을 닫고 잠들 때까지 기나긴 육아 전쟁의 분투가 이어진다. 특히 '사줘', '해줘', '안아줘' 3종 세트의 떼쟁이 진수성찬을 차리는 만 6세의 둘째는 가슴 저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육두문자의 분노에 활활 기름을 붓는다.기껏 소불고기를 해놨더니 간장 계란밥을 해달라, 형아처럼 달걀 3개 넣어 달라, 왜 엄마가 비볐냐 내가 할 거다 다시 만들어라, 간장 넣지 말고 참기름만 넣어라, 혼자 옷 입기 싫다 엄마가 입혀줘라, 이 양말 불편하다 다른 걸로 줘라, 양치질하기 싫다 가글만 하겠다, 기껏 달걀 프라이 3개 해줬더니 밥 다섯 숟갈 먹고 그만 먹겠다....... 나는 도저히 그의 비위를 맞출 자신이 없다.
그의 요구를 거부하면 어느새 눈 밑이 빨갛게 변하고 얼굴 근육이 밑으로 축 늘어져 구석진 곳으로 숨어 들어가 버린다. 한시가 급한 아침 등원 시간에 급한 건 내 마음뿐이다. 그는 문짝을 발로 툭툭 치면서 온몸으로 목소리 없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불러대는 시위를 한다. 문 틈으로 내가 오나 안 오나 감시하면서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낸다. 그의 들끓는 변덕은 아침부터 내 가슴에 불화살을 당기고 여유롭고 우아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나의 바람은 공상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5분이면 될 거리를 그와 함께면 30분은 잡아야 한다. 그는 도통 앞으로 나가질 않고 내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엄마가 밖에서 화를 낼 수 있나 없나 시험하는 듯하다. 이제 마음속으로 해방을 외칠 유치원 입구에 도착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엄마 빨리 와야 해, 아빠 빨리 오라고 해"하며 정해진 하원 절차대로 늘 진행해 오는 일정을 몇 번이나 재확인한다.
만 5세에도, 만 6세에도 뭐가 달라졌나 모르겠어서 눈만 치켜뜨게 되는 둘째를 보내고 나면 집에 남은 첫째에게 영상통화가 걸려 온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언제 와? 오늘 점심은 뭐야? 저녁엔 뭐 먹을 거야?"
둘째 등원을 위해 집을 나선 지 체감상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첫째는 무섭다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호출하기 시작하고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할 때면 10 통이고 20 통이고 쉬지 않고 부재중 통화를 남겨놓는다. 이쯤 되면 전화기가 아니라 포승줄 같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잡아 대령하라! 저 멀리서 보이지 않는 호통으로 전자파라는 긴 줄을 이용해 나를 옭아매려 달려오는 무서운 신종 포승줄.
첫째는 하루 종일 내 옆에 붙어있고 싶어 한다. 난 그의 감시망을 벗어나질 못한다.
"무슨 책 읽어? 엄마가 쓰는 글 나도 읽어 보고 싶어. 누구랑 문자 해? 뭐라고 하는데? 오늘 운동은 언제 갈 거야? 가서 무슨 옷 입고 운동해? 얼마나 걸려? 영상통화해도 되지?"
나를 너무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는 그의 질문은 고마우면서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시도 이런 고약한 가시가 없다. 하루종일 나만을 바라보며 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갈구하고 나의 관심과 애정과 돌봄을 요구한다. 하나라도 엇나가면 '엄마는 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지 않나 봐'하는 표정으로 갯벌 속에 움츠러든 게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기가 확 죽어버리고 만다. 갑자기 온 세상이 자길 버린 것 같은 처참한 표정을 하고선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끝난 것처럼 소리 없는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다.
나를 닮아 민감한 그의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져주는데 또다시 반나절이 간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랑 얘기하고 싶어. 내 방으로 와 봐."
그는 꺼이꺼이 울고, 내 품에 안기고 애처로운 고양이 같은 눈망울을 하며 오늘 있었던 일, 전에 있었던 일, 먼 옛날 있었던 일까지 끄집어내어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확인하고 담금질하고 당부한다.
아, 내 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없다. 그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품고 나아갈 여력이 없다. 개인 운동도 챙기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내 진로도 고민해보고 싶은데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한여름 오이 자라듯 쑥쑥 자라는 것 같으면서도 해 질 녘 금세 저버리는 나팔꽃처럼 영 크질 않는다. 내 모든 골수와 시간과 감정을 빨아먹으면서도 더 달라 아우성치는 둥지 속 아기새들 같다. 끊임없이 벌레를 잡아다 바쳐도 모자라다, 배고프다 외치며 쉬지 않고 날갯짓하라 요구하는 작은 아기새들.
왜 나는 전심으로 너희들을 품지 못할까? 왜 나는 너희들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는 게 이토록 힘이 들까? 어쩔 땐 숨이 확 막혀 정신이 돌아버리는 심정이다. 눈물이 맺히고 머리가 깨질듯하고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 아닐까, 깊은 회한마저 밀려온다.
어쩔 땐 남편 또한먼 이국땅 낯선 이방인처럼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회사에서 그가 지고 있는 가장의 무게와 고생을 이해하고 함께 짊어지고 싶으면서도, 그가 퇴근한 이후 육아와 가사라는 찐득한 올가미를벗어던지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에 시달린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오래되고 막중한 임무들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길 바랄 때, 그도 역시 그 임무와 한 편이라는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시기가 오면, 내 나이테가 어느 곡선을 돌며 주름을 늘리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빠르게 늘어가는 아이들의 나이를 따라 분명 내 시간표도 바뀌고 있을 텐데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둥지가 비어 버리는그때를바라야 하는 건지 아닌지 조차 모르겠다.
내 속에 내가 많아서가 아니라 내 속에 내가 없어서 텅 비어 버린 공간이 있다. 내가 나일 수도, 나를 벗어날 수도 없는 미지근한 영역에 발을 담근 채 물속에 비친 내 꼬락서니가 꼴 보기 싫어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내가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간밤에 내린 눈이 녹아 처마 끝에 고드름이 달렸다. 베란다 창틀 아래로 녹은 눈이 또독 또독 떨어지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기다란 물길을 따라 얼음이 생겨 버렸다. 하늘의 수증기가 눈이 되고 비가 되고 얼음이 된다. 언 길을 녹이는 경비원의 고생 물질이 되었다가 쉴 새 없이 학원차를 타고 다니던 아이들의 쉴 곳이 되기도 한다. 해맑은 가슴의 설렘이자 노련한 손길의 원한, 눈! 눈이 꼭 내 인생을 닮은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둘째가 하원할 시간에 맞춰 썰매를 챙겨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