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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Dec 29. 2024

결국엔 카지노 가입 쿠폰든 죽지만!

최진영(2023). 단 한 사람.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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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해 보자. 한 가족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데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게 되었다. 할머니, 아빠와 엄마, 누나, 형, 동생, 나 이렇게 일곱 명이 할아버지 7주년 기일을 맞아 여행을 떠난 거였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아주 풍족하게 살게 된 걸 감사하느라 매년 할아버지 기일에는 전날 밤 제사를 마치고 추억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재작년인가 동생이 아파 딱 한 번 빼고 매년 이어오는 행사를 이어오다 사고를 만난 것이다. 이때 오직 한 사람만 살 수 있다면, 한 사람만 살려야 한다면? 누가 누굴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목화다. 언니 금화가 눈앞에서 실종됨으로 해서 목화도 상처를 받지만 엄마 또한 상처를 받는다. 목화는 언니를 잃은 고통뿐만 아니라 딸을 상실한 엄마의 슬픔까지 감내야 한다. 그런 목화가 어느 날 꿈속에서 생사를 오가는 사람 중에 누군가 단 한 명을 구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중개인. 그때부터 수명 중개인이 된 것이다. 수명을 중개한다? 중개인이란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대리 내지 매개하는 것인데, 얻는 건 돈은 아니고 심적 고통(?)을 얻는 직업이다. 의뢰를 하는이야 인간보다 오래 살고 세상의 이치를 알 것 같은 나무(신!)라고 치고. 중개를 하는 나는 실상 중개라기보다 누군가 한 명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이건 아니다. 난, 선택할 수가 없다. 죽는 이들 중 그 누군가를 선택할 수 없는 중개? 그러니 중개가 맞는 것도 같은데 굳이 중개가 필요한 건지.


누구를 살릴지 결정할 수는 없은데 누군가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중개인 역할을 한다? 많은 소설과 영화를 통해 죽은 자를 보는 역할은 아주 익숙하지만 누군가를 살도록 중개하는 역할은 처음인 것 같다. 우선, 이 점에서 작가의 시각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 아무나 하겠는가? 그런 작가가 만든 주인공은 앞에서 언급한 목화다. 아내 장미수와 아빠 신복일이 아이들 다섯을 낳았는데 그들 이름이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이 중개 일이란 것이 소위 말하는 중개인(broker)과는 당연히 다르다. 부동산 등과 같은 중개인 일은 중개가 안 돼도 그만이지만, 이 중개는 중개를 그만두면 살아야 할 누군가 단 한 명을 살리지 못한다. 그러니 중개 일이란 피곤하고 힘들다. 더 안타깝고 더 애달픈 이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


이 일은 주로 꿈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러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기 마련. 꿈을 통해 현실에 관여한다. 그것도 무수히 많은 죽음을. 자살, 사고사, 살해, 자연사 등등. 온갖 죽음과 관련된 일에 소환이 되는 삶. 이 피곤한 운명은 대를 이어온 숙명이었다. 할머니 임천자는 이를 기적이라 했으며, 엄마 장미수는 이걸 악마라고 칭했고, 난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 죽는 걸 목격하는 것도 힘든데, 다 살릴 수도 없이 그들 중 오직 한 명만 살려야 한다니. 당연히 소설이라서 이런 구상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쉽게 누굴 선택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가족 여행 중에 사고가 났다. 다들 죽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중 누군가 한 명만 산다면 누굴 살릴까 혹은 누가 살아야 할까? 오직 한 명. 누가 그 카지노 가입 쿠폰를 결정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사는 거야 그렇다고 치고 죽음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나 한 것인지. 종국엔 좀 더 살고 못 살고의 차이지만, 이건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 놓으면 소설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인간이 지금까지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야 일상이었으니 자연보호하자고 했을까?


누군가 죽는다. 누군가 이를 지켜본다. 누군가 죽는 현장에서 죽는 누군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뭘까? 나 더 살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 죽는 마당에 원수진 놈들 너희들도 다 죽으라고 할 강심장도 있지만. 아마도 가장 많이 죽는 사람들에게 하거나 하고픈 말은 그 흔해빠진 단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남녀 간에 육체를 섞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이생에 마지막 듣고 싶은 말 혹은 죽는 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랑이란 단어. 그럼 소설의 주인공은 사랑 얘기일까?


목화는 수명 중개인이라서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누군가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 죽는 현장에서 오직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의 일이다. 그렇지만,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p. 233). 단 한 명을 살리는 건 기적일 수도 겨우 한 명만을 살리는 일일 수도. 그럼에도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리는 일이라서. 결국 누구나 죽는데, 그럼에도 단 한 사람 살린다면 그것도 사랑이 아닐는지. 이렇게 밖에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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