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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pr 20. 2025

카지노 게임 선택할 수 있다면?

한강(2011). 카지노 게임 시간. 문학동네

카지노 게임

불행을 카지노 게임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주어지는 것 아닐까? 빛을 잃어가는 남자가 언어를 잃어가는 여자에게 난 다행입니다. 말할 수 있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어를 잃어가는 여자가 빛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난 행복합니다. 볼 수가 있어서,라고 말한다면? 불행만큼은 카지노 게임된 것이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행복은 불행과 달라서 카지노 게임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불행은 말이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이게 덜 불행하니 난 덜 불행한 걸 카지노 게임할래요,라고 말하자니 불행이 불행 같지 않을 것 같다. 불행은 작든 크든 누가 선뜻 그걸 받아들이고 싶을까? 그것도 눈을 먼다는 것과 말을 잃는다는 거라면.


희랍어라고 하니 낯설었다. 헬라어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다. 그럼 그리스어라고 하면 익숙할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고? 언젠가 그리스에 가본 적이 있던 그때도 희랍어, 헬라어, 그리스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고 갔던 것 같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언어에 관한 한 젬병이라서 말이다. 그런 언어를 배우는 이가 있다. 그건 말을 되찾기 위한 방법이다. 열일곱 살 때였던가 말을 못 하는, 실어증을 알았는데 수업 중 배운 불어 단어로 말을 다시 하게 되었었다. 그걸 기억한 것이다. 말을 잃었지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서. 그래서 배우기 시작한 희랍어. 그 사이 그녀는 남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학도 졸업하고 출판사와 편집 일을 하다 강의도 하고 시집도 내고. 그사이 결혼도 했던가? 그러니 이혼도 했고 그러나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긴 충격들이 컸던지 다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걸 되찾는 방법으로 찾은 것이 희랍어 배우기였다. 이러면 누군가의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거겠지? 그런 그녀가 아카데미에서 카지노 게임를 만나는데 그가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그 또한 그저 평범하지 않으니. 그건 열다섯 때였다. 가족이 독일로 이민을 갔고 수십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것도 혼자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친다. 몇 안 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기까지 평범한 얘기다. 그런데 그가 시력을 잃어간다면??


여자가 말을 처음 잃었을 때는 우연이었더라도 다시 말을 잃었을 때는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카지노 게임는 아버지로부터 물여 받은 열성유전자 때문이다. 이건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둘 다 40대라는 나이 언저리 어딘가에서 여자와 카지노 게임 모두 시력을 잃어가거나 말을 잃었다. 카지노 게임는 시력을 잃어가고 여자는 말을 어떻게든 다시 되찾고자 한다. 그런 남녀라니. 출발 자체가 평범을 넘어도 한참 넘어선다.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던 빛마저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그녀였다. 그럴 수밖에.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는 여자라니.


그런 어느 날 카지노 게임 각각 마주한 남녀가 실제로 서로의 카지노 게임 직접 재보는 일이 벌어진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건 학원에 날라든 박새 때문. 여자가 박새를 밖으로 내보려고 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다 남자는 계단에서 굴러 상처를 입고 안경마저 부서져버린다. 그러니 더더욱 앞을 볼 수가 없다. 그렇게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몰라도 되었을 그 경계. 누가 더 불행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불행이 서로 아는 체를 한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여자는 남자를 도와 병원까지 집까지 간 것이다. 그때 불행이 서로 포옹을 했을까? 반갑다고? 서로 재 봤을까? 내가 더 크다고, 불행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점차 사그라드는 남자에겐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자가 필요했을 테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생각을 내뱉을 수 없는 여자에겐 말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남자가 있으니 서로 보완관계? 이런 건 상리공생? 그런 것일까? 이렇게 적어놓고도 아마 난 두 사람 앞에 닥친 그 운명이란 걸 앞으로도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아니, 그랬다면 받아들이기 싫어 뭔 짓인들 못했을까? 살면 살아지지만...... 그런 거지만. 불행을 카지노 게임할 수 없기에, 난 그 두 사람이 겪는 상실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읽다 보면 남자 얘기인지 여자 얘기인지, 과거인지 현재인지, 현실인지 아닌지 난해하지만. 난 행복을 '카지노 게임' 할 것 같다. 둘 중에 하나 고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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